슈트의 처음과 끝, 셔츠

슈트의 처음과 끝,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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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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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트보다 셔츠에 투자하라
  2. 드레스셔츠를 잘 고르려면
  3. 화이트 셔츠는 많을수록 좋다
  4. 클래식한 셔츠 맞춤법

직업이 스타일리스트라고 하면 사람들은 바로 자기 스타일이 어떠냐고 묻는다. 어서 쇼핑을 가자고 닦달하기도 하고 지금 바로 어떤 부분을 바꾸면 효과적이겠는지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미지나 스타일을 OX 퀴즈처럼 단답형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자신이 의도했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면 그게 가장 좋다.

이미지 컨설팅 강의를 하다 보면 이 시대 보통 사람들의 표상이 되는 공직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가장 먼저 제안하는 것은 바로 셔츠 바꾸기다. 셔츠는 슈트를 입었을 때 딱 한 뼘 정도의 크기밖에 보이지 않지만 얼굴형을 돋보이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슈트의 격을 살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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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보다 셔츠에 투자하라

나는 고급 슈트 살 돈을 줄여서라도 셔츠만큼은 더 좋은 것으로 사라고, 쓸 만한 셔츠를 하나 더 장만하라고 권한다. 적어도 한국의 남성복 세계에서는 원단이 좋은 고급 슈트보다 잘 갖춰 입은 셔츠가 훨씬 옷맵시를 돋보이게 한다.

셔츠는 슈트 안에 입는 옷이다. 슈트를 걸치고 넥타이까지 매면 남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한 뼘에 불과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셔츠를 입느냐가 슈트의 맵시를 결정한다. 셔츠는 V존의 모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얼굴과 슈트, 넥타이의 바탕색이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슈트의 가치도 셔츠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셔츠를 입느냐에 따라 슈트 가격은 훨씬 비싸거나 반대로 싸 보일 수 있다.

몸의 라인이 보이지 않도록 벙벙하게 상의를 입는 분들이 많지만 실상 클래식 슈트는 마치 피부처럼 몸의 라인을 따라 입체적으로 흐르도록 재단되는 옷이다. 겉에 입는 옷이 그럴진대 속에 입는 셔츠가 몸과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 셔츠는 있는 듯 없는 듯 부드럽게 피부에 밀착되어야 한다. 그렇게 몸에 딱 맞는 셔츠는 ‘맞춤’ 외에는 없다. 맞출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다양한 사이즈를 입어보고 구매하는 것이 좋다.

드레스셔츠를 잘 고르려면

그럼 좋은 드레스셔츠란 어떤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맞는’ 셔츠다. 사이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셔츠를 구입할 때는 목둘레, 어깨 길이, 팔 길이를 기본으로 체크한다.

첫 번째 기준은 목둘레다. 검지 하나를 넣을 수 있는 정도가 적당하다. 실제 목둘레보다 대략 1센티미터 정도 큰 것으로 고른다. 세탁하면 줄어들 것을 미리 걱정하고 너무 큰 것을 고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넥타이를 맸을 때 셔츠의 칼라 깃이 우글거리거나 심하게 남아 겉돌게 되므로 보기에 좋지 않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질감이다. 셔츠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면 실크여야 한다. 좋은 면 실크는 가볍고 얇고 부드럽다. 이런 소재로 만들어진 셔츠는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을 뿐더러 겉옷과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 궁극의 이상적인 셔츠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이는 인용문이 바로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는 셔츠 더미를 끄집어내어 하나씩 우리 앞에 던졌는데, 엷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란넬 셔츠가 떨어질 때마다 개켜졌던 자국이 펴지며 가지각색으로 테이블 위를 덮었다. 우리가 감탄하는 동안 그는 셔츠를 더 많이 가져왔고, 부드럽고 값비싼 셔츠 더미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산호빛과 능금빛 초록색, 보랏빛과 옅은 오렌지색의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 무늬와 바둑판 무늬 셔츠들에는 인디언블루 색으로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데이지가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떨어질 때마다 개켰던 자국이 펴지면서 후드득 떨어지는 셔츠. 이 정도로 부드러운 소재가 값비싼 고급 셔츠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즉, 셔츠는 제2의 피부처럼 몸을 잘 감싸야 한다.

어떤 소재든 가볍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가볍고 얇은 소재의 화이트 드레스셔츠는 보수적인 한국 남자에게는 다소 곤혹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흰색인 데다 얇아서 속살이 비치기 때문이다. 출렁이는 뱃살이야 참는다 해도 젖꼭지가 비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물론 최근의 브랜드 셔츠들은 속이 비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면 선택의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속에 내의를 받쳐 입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머니가 달린 디자인을 고르는 것이다. 굳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후자, 즉 주머니가 달린 쪽을 권한다. 주머니가 달린 것을 고르더라도 부디 한쪽에만 주머니가 있는 것으로 하라고 권한다. 정통 클래식 셔츠에는 주머니를 달지 않는 법이고, 주머니가 두 개 달린 셔츠는 정장용으로 볼 수 없다.

유럽의 정통 레스토랑에 가보면 식사할 때 슈트의 상의를 벗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셔츠는 여전히 ‘내의’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살이 비치는 것이든 아니든 슈트 차림이라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상의를 걸치고 있어야 한다.

좋은 원단은 색이 잘 변하지 않는다. 혼방률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변색도가 달라진다. 광택이 없고 텁텁한 질감일수록 색이 빨리 변한다. 캐주얼 브랜드의 투박한 면 셔츠를 갖고 있다면 실감할 것이다. 몇 번만 세탁해도 금방 누렇게 물이 든다. 광택이 있으면서 살짝 아이보리색이 도는 질감이 변색이 적다.

셔츠를 고를 때는 천을 손으로 힘껏 쥐었다 놓아본다. 주름이 많이 생기는 것은 관리가 어렵고 변형의 우려가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또 라벨이나 바느질 상태, 원단의 품질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다만 본인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판매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좋다. 혼방률이나 섬유의 특성은 전문가가 아니고선 이론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좋은 선택을 하기 쉽지 않다.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얘기하면, 제대로 된 판매자라면 분명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위해 셔츠를 맞추면서, 소매 끝이나 주머니, 혹은 칼라 깃에 이름의 이니셜을 새기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기만의 셔츠를 맞추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니셜을 새기는 것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니셜을 새긴 셔츠가 무언가 귀족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니셜을 박은 셔츠를 입은 사람은 이름표를 달고 나온 고등학생처럼 보여 민망하다. 슈트를 벗을 일이 자주 없다면 셔츠 주머니에 이니셜을 새기는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셔츠 차림을 주로 해야 한다면 이니셜은 피하길 권한다. 이름표를 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화이트 셔츠는 많을수록 좋다

외국 영화에서 옷장 속에 셔츠와 슈트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걸려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럭셔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와 같은 장면에서 옷장에 걸린 옷은 마치 유니폼처럼 모두 똑같다. 화이트 드레스셔츠와 클래식 슈트다.

정통 드레스셔츠의 색은 단연 화이트다. 흔히 쓰는 ‘드레스셔츠’라는 말도 화이트 셔츠가 일본을 거쳐 오면서 변형된 말이다. 화이트 셔츠는 깔끔하고 지적인 느낌을 주며 신뢰감을 준다. 어떤 색상의 슈트와도 잘 어울리며 다양한 색상과 문양의 넥타이를 소화할 수 있다. 블루 셔츠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느낌을 주고, 줄무늬 셔츠는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며 날씬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클래식한 복장으로 공식 석상에 선다면 셔츠는 단연 화이트여야 한다. 불가피하게 컬러 셔츠를 입는다 해도 회색이나 보라색 등의 도드라지는 색은 피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업종에 종사한다면 핑크색 셔츠는 피하는 것이 좋다. 핑크색 셔츠는 동성애자들이 입는 옷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 셔츠지만 칼라에 스티치가 박혀 있거나 자수 장식이 있는 것은 클래식하지 않다. 칼라 끝에 단추가 달려 있는 버튼다운 셔츠도 마찬가지다. 특히 버튼 부분에 보석을 박은 것은 화려해 보이지만 정통은 아니다. 이런 변형된 셔츠들은 클래식 슈트용 셔츠가 아니다. 니트 카디건, 캐주얼한 벨벳 재킷 등과 코디해서 입거나, 청바지 위에 단벌로 걸칠 때 요긴한 아이템이다.

컬러 셔츠로 멋을 내고 싶다면 얇은 스트라이프가 있는 블루 셔츠를 권한다. 코발트블루도 기분 전환에 좋다. 청량감이 있는 블루는 젊고 상큼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중년 남성에게는 더욱 화이트 셔츠를 권한다. 세월과 함께 혈색은 검붉어지고 피부 탄력은 저하된다. 전반적으로 피부색이 탁해진다. 그러니 화이트 셔츠가 더욱 좋다. 젊어 보이기 위해 핑크색 셔츠를 입는 분들도 있지만 붉은 기가 많은 핑크색은 오히려 혈색을 더 붉어 보이게 하고 피부의 잡티를 돋보이게 한다. 굳이 핑크색을 골라야 한다면 파스텔톤 핑크를 고르길 권한다.

그렇다면 남자의 옷장엔 도대체 몇 벌의 드레스셔츠가 있어야 하는 걸까? 먼저 옷장에 팬티가 몇 개 정도 있는지 생각해보자. 매일 드레스셔츠를 입는다면 옷장 속 팬티 숫자만큼 클래식한 화이트 드레스셔츠가 필요하다. 캐주얼한 복장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도 기본적으로 화이트 셔츠 다섯 개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화이트 셔츠는 컬러 셔츠보다 확실히 관리하기 어렵다. 쉽게 때가 타고 변색도 빨리 된다. 수명도 당연히 짧다. 그리고 셔츠는 속옷이다. 많아도 옷장에 붙박이로 박혀 먼지 앉을 틈이 없다. 제대로 된 화이트 셔츠라면 정장 바지, 면바지, 청바지 어디든 훌륭하게 어울리므로 더더욱 옷장에 묵혀둘 틈이 없이 자주 입게 된다. 다른 옷 살 돈 줄여서 최대한 좋은 것으로 충분히 장만해두는 것이 좋다.

클래식한 셔츠 맞춤법

셔츠의 칼라는 깃과 깃의 각도가 90도인 레귤러 칼라가 기본인데, 가장 무난하고 용도도 다양하다. 그밖에 칼라의 종류로는 영국 멋쟁이의 대표 윈저 공이 디자인해 이름이 붙은 윈저 칼라, 깃 사이의 각이 180도까지 벌어지는 윙 칼라, 칼라 끝 부분에 단추를 단 버튼다운 칼라 등이 있다. 각각의 칼라는 얼굴형의 결점을 보안하거나 개성을 살리는 데 응용하면 좋다.

윈저 칼라는 120도로 깃의 각이 벌어지는데, 얼굴형이 뾰족하거나 목이 긴 사람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윙 칼라는 벌어지는 각이 넓기 때문에 얼굴이 둥글고 목이 짧은 사람들에게 좋다. 버튼다운 칼라는 영국 폴로 선수들이 경기할 때 칼라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단추를 달면서 입기 시작했다. 편리하고 캐주얼한 느낌이라 공식석상이나 예의를 갖춰야 할 자리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다.

남성에게 가장 보편적인 레귤러 칼라는 얼굴형이 둥글거나 뾰족하거나 목이 굵거나 짧거나에 개의치 않고 입을 수 있어, 튀지 않으면서 안정감을 준다.

나이가 들수록 목이 두꺼워지면서 얼굴의 살이 하관을 중심으로 분포하게 된다. 그래서 젊을 때보다 칼라의 폭이 넓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이럴 땐 와이드 칼라가 적당하다. 내가 아는 50대의 모 기업 간부는 얼굴이 작은 데 반해 목은 심하게 굵은 체형인데, 맞춤 셔츠로 체형적인 단점을 완벽에 가깝게 보완했다. 그의 신체적 특징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다.

턱밑에 살이 많고 목주름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면 칼라의 높이를 조절해 효과를 볼 수 있다. 클래식 슈트의 셔츠 깃은 3~4센티미터 높이가 표준이다. 슈트를 입었을 때 뒤쪽에서 1.5센티미터 정도 깃이 올라와야 한다. 그런데 목주름이 고민이라면 앞쪽 깃을 살짝 올려서 효과를 볼 수 있다. 칼라의 높이를 0.5~1센티미터 높이고 단추를 하나 더 달아주면 목주름을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다.

칼라의 넓이도 중요하다. 슈트 라펠의 폭이 유행에 따라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므로, 거기에 따라 기성복 셔츠의 칼라 넓이 또한 달라진다. 하지만 중년 이후 두둑해진 턱선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기본보다 0.7센티미터 넓게 맞추는 편이 좋다. 슈트를 입었을 때 칼라 깃이 슈트의 라펠 안쪽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아야 안정된 V존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쏙 드는 맞춤집을 한 번에 찾기란 쉽지 않다. 맞춤 셔츠에 처음 도전할 때는 셔츠 하나를 우선 맞춰보고 디자인이나 사이즈를 수정해가야 한다. 요즘은 저렴하게 셔츠를 맞출 수 있는 전문매장이 많이 생기고 있고, 백화점에 입점한 기성 브랜드에서도 신체 사이즈를 재서 맞춰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몸에 꼭 맞는 편안한 맞춤 셔츠를 입으려면 옷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차례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완성된 옷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완성되면 입을 때마다 편하고, 제대로 된 슈트의 멋을 즐길 수 있다.

잘 맞는 셔츠인지 아닌지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셔츠의 목둘레라는 것을 기억하라. 가장 이상적인 셔츠의 목둘레는 검지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