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リトル・フォレスト

실제로 토호쿠 지방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했던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경험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작품.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의 소박한 식생활을 보여주는 일종의 요리만화이면서 동시에 슬로우 라이프를 웅변하는 이야기다. 배경은 일본 토호쿠 산간 지방에 자리한 농촌마을 코모리. 도시에서 생활하다 다시금 이곳으로 귀향한 소녀 이치코는 모든 먹거리를 직접 만들며 평온한 농촌생활을 영유한다. 도시와 완전히 대치된 시골의 따스한 풍경과 계절마다 부과되는 농촌의 노동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가운데 주인공 이치코의 크고 작은 고민과 추억이 음식과 직조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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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틀 포레스트』의 음식은 곧 인생
  2. 자연에서 찾아낸 ‘자립’의 진정한 의미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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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는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다. 『마녀』 , 『해수의 아이』 , 『SARU』 등 매 작품 이색적인 판타지를 전매특허로 내세우던 작가가 자신의 주특기를 쏙 걷어낸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에는 그 어떤 판타지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일본 토호쿠 지방에서 생활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소박한 식생활을 통해 슬로우 라이프에 담긴 진의를 담담히 전달할 따름이다. 무대는 토호쿠 산간 지방에 자리한 농촌 마을 코모리(小森, 즉 제목인 ‘리틀 포레스트’). 이야기는 도시에서 귀향한 이치코가 자연이 선물한 재료를 먹음직스러운 요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전부다. 얼핏 심심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 심심한 맛이 꽤나 오묘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도시와 완전히 대치된 시골의 평온한 풍경에 이치코의 옛 추억과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엮이면 매 에피소드마다 맛깔스러운 이야기 한 편이 완성된다. 재료나 요리법에 대한 소개를 곁들인 대목에선 얼핏 기존 요리만화 같은 익숙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화법은 다른 요리만화 장르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투박하고 진솔하다. 우선 요리 대결을 벌이거나 숨겨진 해답을 찾기 일쑤였던 요리만화의 상투적 내러티브에 천착하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요리하는 마음이나 감동 같은 키워드를 부러 내세우지 않는 것 역시도.

어떤 날 이치코는 밭에서 자라는 온갖 야채로 조림이나 볶음, 튀김을 해먹는다. 수확할 채소가 없을 때는 주변에서 자라는 산채가 식탁의 주역이 된다. 두릅과 민트를 튀겨내고 갓 따온 크레송을 마요네즈와 곁들여 어제 구운 바게트에 끼어먹는 식이다. 호두를 주워 새참으로 먹을 호두밥을 준비하는가 하면, 정성들여 식혜를 발효해 더위를 달래기도 한다. 여기에는 일부러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담담히 묻어난다. 마치 돈을 벌기보다는 맛있는 먹거리를 ‘벌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삶 또한 훌륭하지 않느냐고 되묻는 듯하다.

『리틀 포레스트』의 음식은 곧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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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가 만드는 음식은 일본 가정의 일상에서 맛볼 수 있는 보통의 생활음식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레스토랑 전문 요리사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요리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말린 고구마를 숯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내장을 발라낸 곤들매기를 소금간만 해서 구워 여기에 곤들매기를 넣은 된장국을 곁들인다. 그러나 이 과정 하나하나는 결코 허투루 볼 수 없다.

같은 푸성귀 볶음이라도 엄마가 볶으면 맛있고 이치코 자신이 볶으면 어째 좀 질기다. 샐러리 껍질을 벗기다 혹시 하는 생각에 푸성귀의 줄기 껍질을 벗겨내니 그제야 엄마가 만들어주던 그 식감이 살아난다. 그 옛날 식탁에 오르던 푸성귀 볶음을 가리켜 정성들인 요리 좀 먹자고 엄마를 힐난했던 이치코는 이내 깨닫는다. 그 단순한 요리 역시 엄마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요리였다는 것을. 그밖에 뱀밥나물 한 줌을 얻기 위해 까다로운 손질을 마다해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갖가지 향신료를 넣어 만든 수제 우스터소스라든지, 수유 열매로 만든 잼, 감주나 케이크 등 어느 하나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먹고 즐기는 것 역시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맛있는 먹거리를 직접 준비하는 것은 인생의 방식이자 또 다른 도락임을 조용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찾아낸 ‘자립’의 진정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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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젊은 이치코에게 귀향이 마냥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분교 2년 후배인 유우타는 “타인에게 죽여 달라고 하고는 죽이는 법에 불평하는 그런 인생 보내기가 싫어”져 이곳 코모리로 돌아왔다. 반면 이치코는 자신이 ‘도망쳐왔다’고 생각한다. 집을 나간 엄마 외에 따로 가족이 없는 이치코는 도시에 정착하려다 실패하고 다시금 귀향한 자신의 현재가 못내 거슬린다. 그래서 그는 비닐하우스도 짓지 않고 비효율적인 노지 재배를 고집한다. 비닐하우스를 지으면 왠지 계속 코모리에서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유우타가 코모리에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과 마주하게 된 반면 그는 여전히 자신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한 듯 보인다. 별다른 걱정이나 위기 없이 평온한 일상이 계속되는 중에도 이치코는 코모리에서의 생활을 결코 완전무결한 정착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덕분에 매 화 안락한 생활을 보여주면서도 귀향의 의미는 계속해서 유예되는 모양새다.

덕분에 『리틀 포레스트』에 담긴 비교적 엷어 보이는 주장은 내내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묵직한 힘마저 품는다. 코모리 사람들에게 있어 코모리는 완벽한 천국처럼 보인다. 그러나 달리 갈 곳이 없어 돌아온 이치코에게 있어 코모리는 완전한 집이 아니다. 마치 도시인에게 있어 시골이 그렇듯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을 마냥 긍정하지는 않는 듯한 태도다. 그렇다고 이치코가 코모리에서 겉도는 것도 아니다. 마을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뿐만 아니라 농사일을 비롯한 모든 시골생활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있을 곳을 ‘적극적으로’ 결정해야겠다며, 그것이 이곳 코모리에 실례가 되지 않는 길이라며 현재의 생활과 자신의 인생에 끊임없이 고민을 입힌다.

덕분에 사계절의 준엄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긴 이곳 사람들의 생활법이 사실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가치관이 아니냐는 메시지는 의뭉스럽게도 내내 동경을 자아내곤 한다. 그리고 자립이란 “좀 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란 이치코의 결론 역시 동경 그 이상의 의미를 더하기 충분해 보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리틀 포레스트>는 모리 준이치 연출, 하시모토 아이 주연으로 ‘여름’ ‘가을’ ‘겨울’ ‘봄’ 4부작으로 만들어졌다. 각 1시간여에 달하는 러닝타임으로, 극장 상영 때는 ‘여름’과 ‘가을’ 편을 묶은 1부와 ‘겨울’과 ‘봄’을 묶은 2부로 나눠 공개됐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원작의 색채를 그대로 유지한다. 특별한 사건을 더하지 않고 원작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음식을 중심에 놓은 채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이치코의 생활을 담담하고 나른하게 이어간다. 원작의 음식들을 완벽히 실연한 것 역시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온통 파란 빛으로 가득한 대자연의 풍광은 가히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흙내음 가득 배인 특별한 그림체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Little Forest: Summer/Autumn
    제작
    201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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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2015,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