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하우스

완벽한 곡선의 미학

오페라하우스

Sydney Opera House in Australia
오페라하우스
오페라하우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로 일컫는 시드니에 건설된 건축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오페라하우스는 그 탄생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였다. 1955년 오스트레일리아는 시드니를 상징할 건축물을 건설하겠다면서 오페라하우스 건축을 위한 세계적인 공모전을 발표했다. 이에 32개국에서 232점이 응모했다.

1957년 1월 29일 덴마크 건축가 외른 오베르그 우드손은 당선 소식을 들었는데 뜻밖의 일이었다. 그의 스케치는 1차 심사도 통과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런데 심사위원인 세계적인 건축가 핀란드의 에로 사리넨은 제대로 된 작품이 없자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수 없다며 낙선된 작품들을 다시 검토했다. 이렇게 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우드손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우드손의 작품은 하늘과 땅과 바다 어디에서 보아도 완벽한 곡선을 그린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는 이 아이디어를 부인이 잘라준 오렌지 조각에서 얻었다. 그는 오렌지 조각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바로 이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당선에 반대자들도 많았다. 그의 작품이 ‘교접하는 흰 거북이들’이라거나 ‘공포에 질린 베일 쓴 수녀들’ 같다는 조롱이 쏟아졌다. 그의 설계를 단호히 반대한 어떤 사람은 우드손이 ‘저질 취향’을 갖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우드손의 스케치는 건축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건축상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복잡한 오렌지 껍질 모양의 지붕 구조를 구현할 구조방식과 토대의 과중함이 문제였다. 그러나 우드손의 동향인 오베 아루프가 지붕 구조를 조립식으로 변형함으로써 누구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구조 문제를 해결했다. 그의 해법은 조개껍질(셸)의 각 부분을 하나의 구면(球面)에서 그대로 잘라내는 것이었다.

근본적인 기하학적 문제가 해결되자 미리 제작한 리브에서 조개껍질들을 만들 수 있었다 조개껍질의 모든 부분은 현장에서 성형했다. 사전에 성형한 리브들을 케이블로 꿰어 압력을 가해서 아치를 만드는 식이었다. 완성된 아치는 부채꼴로 펴서 조개껍질의 각 면으로 만들었다.

건설 기간과 공사비도 시빗거리였다. 원래 2년으로 예정되었던 건설기간이 16년으로 연장되었고 건축비용은 원래 350만 달러였지만 최종적으로 5700만 달러가 예상되었다. 공사비가 증가한 것은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지붕을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어서 현실적인 공사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각계의 기부금과 오페라하우스 복권을 발행하여 추가 예산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 공사비보다 15배가 추가되었음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964년 정부가 바뀐 후 새 정부는 우드손에게 실내 공사비를 줄일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우드손이 한마디로 이를 거부하자 건축주인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우드손을 건설에서 제외하고 세 명의 젊은 오스트레일리아 건축가 홀 · 토드 · 리틀모어사에게 작업을 맡겼던 것이다. 우드손은 시드니를 떠나면서 다시는 자신이 설계한 오페라하우스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공사는 엄청난 파문으로 일그러졌지만 우드손이 당선 소식을 들은 날부터 16년이 흐른 후 서로 다른 높이의 하얀 조개껍질 열 개(가장 높은 것은 68미터)가 시드니 하늘에 솟아올랐다. 지붕은 무게가 15만 8000톤이고 곰팡이가 슬지 않아 닦을 필요가 없는 스웨덴 타일 100만여 개로 덮여 있다.

스웨덴 타일로 뒤덮인 오페라하우스의 조개껍질 모양 지붕
스웨덴 타일로 뒤덮인 오페라하우스의 조개껍질 모양 지붕

조개껍질 지붕 아래에는 2679석을 갖춘 콘서트홀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기계식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1973년 10월 20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이 거행되어 더욱 명성을 높였다. 그러나 우드손은 자신이 공언한 대로 준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도 논란이 무척 많았지만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4000여 년 동안이나 세계의 경이로 남아 있습니다. 나는 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도 그러하리라고 믿습니다.”

오페라하스의 콘서트홀
오페라하스의 콘서트홀

엄밀한 의미에서 문화센터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파라마타강으로 튀어나온 베넬롱곶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축물은 1만 8000평방미터 대지 위에 세워졌고 4만 5000평방미터의 화강암 포장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이 건축물은 정면부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도달하려면 100미터나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창문과 지붕이 벽의 기능을 떠맡고 있는데 지붕을 의미하는 투구들은 여러 층의 거대한 토대 위에 놓였고 토대 안에는 여러 개의 공연장과 부속시설이 들어서 있다.

오페라하우스는 준공 후에도 구설이 끝이지 않았다. 우드손이 퇴출된 뒤 새로 만든 계획안의 기조는 겉모습은 당초 계획대로 하되 내부는 우드손의 계획을 철저하게 변경하여 예산을 절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콘서트홀은 오페라홀이, 오페라홀은 콘서트홀이 되었고 연극무대는 영화관이 되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우드손의 계획을 줄이고 생략하고 단순하게 만든 것인데 방문객과 오페라하우스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장소의 협소함, 너무 높은 계단, 너무 작은 홀, 형편없는 음향시설 등을 불평했다. 특히 이 건축물은 당초 오페라하우스가 목표였으나 오페라하우스에 걸맞은 적정시설을 갖추지 못해, 록콘서트 · 영화상영 · 집회와 실내악연주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고전 오페라를 올리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서 근래 우드손의 원래 설계대로 오페라하우스의 내부 건축을 되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오페라하우스 내부 구조
오페라하우스 내부 구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준공된 지 35년도 채 지나지 않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물론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의 후보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으며 오스트레일리아대륙 전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소금기가 있는 해풍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보수를 받아야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명분으로 기와 8500개를 교체했는데 이 수리 작업에도 당초 예상된 공사비를 훨씬 초과한 65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참고로 우드손은 준공 20주년 기념식에 초대되었을 때도 참석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 《세상을 바꾼 건축》, 클라우스 라이홀트 외, 예담, 2006
  • ・ 《우리 세계의 70가지 경이로운 건축물》, 닐 파킨, 오늘의책, 2004
  • ・ 《클락시커 50 20세기 건축》,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해냄,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