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영원한 사랑의 거처

타지마할

Taj Mahal, Tāj Mahal in Agra, India
타지마할
타지마할

남녀 간의 깊은 애정은 때로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되는 인도의 타지마할도 ‘세기적인 사랑’이 탄생시킨 걸작이다.

칭기즈칸의 후손인 무굴족 지도자 바부르(Bābur, 1482~1530)는 1526년 힌두스탄의 통치자를 자처하며 인도에 이슬람제국인 무굴왕조를 세웠다. 무굴제국은 전성기에 서쪽의 카불에서 동쪽의 벵골만까지, 북쪽의 카슈미르에서 남쪽의 뭄바이까지 뻗어 있었다.

무굴족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Akbar, 1542~1605)는 농민 3만 명을 폭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도끼로 난도질해 죽였고 심지어 폭도 2000명의 해골로 피라미드를 쌓아 반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굴제국의 통치자들은 잔인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면서도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바부르는 문학을 좋아했고 정원 가꾸는 데 열심이었다. 악바르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문답과 철학적 담론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손자인 샤 자한(Shāh Jahān, 1592~1666)은 건축에 매혹되었다.

‘세계의 왕’이란 칭호를 얻은 샤 자한은 서쪽의 칸다하르에서 동쪽의 아삼, 북쪽의 파미르고원에서 남쪽의 데칸고원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 인도 지배자 중 이토록 거대한 제국을 통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샤 자한은 어느 날 시장에서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팔고 있던 열아홉 살의 처녀 바누 베감을 보고 한눈에 반해 황비로 맞아들였다. 그녀를 끔찍이 사랑한 황제는 그녀에게 ‘궁전의 꽃’이라는 의미의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란 뜻이다.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의 두 번째 부인이며 황제의 하렘에는 5000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샤 자한이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은 뭄타즈 마할이 유일하다.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의 부인이면서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다. 그들은 무굴제국 곳곳을 함께 여행했는데 전쟁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신의 질투였을까, 이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던 뭄타즈 마할은 임신한 몸으로 남편과 함께 출정한 데칸고원의 전쟁터 근처 천막에서 아이를 낳다가 서른아홉이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17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두 사람 사이엔 14명의 자식이 있었다) 급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에 황제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샤 자한은 하루아침에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아내를 그리워한 황제는 2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사후세계에서의 재회를 기약했다.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를 지어주겠다고 한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2년간에 걸쳐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타지마할
타지마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고자 한 샤 자한의 의지 덕분에 이 공사는 국가적 대공사가 되었다. 막대한 예산과 노동력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의 기술자들이 아그라로 모여들었다. 건축가로는 페르시아 출신의 우스타드 이샤와 이란 출신의 이사칸이 초빙되었고 각 분야별로 보르도 · 베네치아 등지의 기술자들이 참가했다. 이 공사에 동원된 건축가와 인부는 2만 명가량이었고 코끼리도 1000마리가 동원되었다.

건축에는 페르시아 · 중앙아시아 · 우즈베크 · 이탈리아 · 프랑스 · 라자스탄에서 수입된 대리석 · 청금석 · 홍옥석 · 공작석 · 터키석 등의 석재를 사용했고 외벽은 루비 · 사파이어 · 옥과 같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500킬로그램 이상의 금이 사용되었다.

이 모든 경비는 샤 자한이 현금으로 지불했다. 전체 비용은 400~500만 루피로 추측되는데 당시 최고 기술을 가진 석공의 한 달 임금은 9~20루피였다. 놀라운 것은 타지마할 공사 중에 세금을 한 푼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 타지마할은 ‘개인적인 공사’였기 때문에 타지마할 건설 명분으로 세금을 올리지 않은 것이다. 그가 타지마할을 건설하면서 지출한 비용 규모는 국가 전체 예산의 5분의 1이었다.

타지마할을 가까이서 본 모습
타지마할을 가까이서 본 모습

타지마할은 궁전도 아니고 50미터짜리 미나레트(minaret, 모스크의 일부를 이루는 첨탑) 네 개가 있지만 모스크도 아니다. 미나레트는 원근법적 효과를 고려해 바깥쪽으로 약간씩 휘게 건축했고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가운데의 영묘 쪽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닐 파킨은 영묘(靈廟, mausoleum)인 타지마할이 인도 · 이슬람 건축의 가장 완벽한 전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타지마할은 샤 자한 가즈(80~82센티미터)를 기준 단위로 삼아 측량함으로써 엄밀한 기하학을 구현할 수 있었다. 둘째, 대칭구도를 일관적으로 관철시켜 중앙 축을 중심으로 한 좌우동형 속에서 각 부분들을 통합했다. 셋째, 자재 · 형태 · 색채에서 아주 세밀한 장식에 이르기까지 질서를 부여했다. 즉, 누구나 감탄을 금치 않는, 좌우대칭의 균형미와 세련미가 넘치는 빼어난 예술적 건축물을 구현한 것이다.

타지마할을 측면에서 본 모습
타지마할을 측면에서 본 모습

특히 타지마할 장식은 모자이크의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또는 콤메소 디 피에트레 두레’ 기법을 사용해 아름다움을 더한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건축물에서도 볼 수 있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은 대리석에 꽃 등의 문양을 판 후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 넣은 것을 말한다. 여러 나라에서 수입된 색색의 돌들이 순백의 대리석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을 발하며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이 기법으로 주로 꽃을 표현했는데 이는 이슬람에서 동물이나 신상의 조각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붉은색 사암과 대리석으로 건축한 30미터 높이의 출입문을 지나면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측의 정원 · 연못 · 나무 등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 대칭구조와 건물에 적용한 기하학적 계산의 완벽함은 지금의 건축학자들이 보아도 감탄할 만하다. 이 모든 것은 아주 계획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무굴제국에서는 건축물을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입구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입구

백색 대리석으로 마감한 본당 건물은 지면에서 6~7미터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기단의 크기는 한 변의 길이가 96미터인 정사각형이다. 영묘 건물 자체의 크기는 56.7미터의 정사각형이고 바닥 면에서 돔의 정점까지는 57미터에 달한다.

이중의 돔(양파껍질처럼 안쪽 덮개 위에 바깥 덮개가 있는 돔)은 페르시아 양식 그대로이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하지만 벽돌에 흰 대리석을 씌운 것이다. 벽돌은 당시 널리 사용하던 표준 크기인 19×12.5×3센티미터의 것을 사용했다. 벽돌을 주로 긴 쪽으로 쌓았지만 석회 모르타르를 두텁게 바른 다음 짧은 쪽으로 쌓기도 했다.

둥근 천장은 모르타르를 두텁게 바르고 동심원의 고리들을 만들어 쌓았다. 이 건축기법을 통해 내부에 강화벽을 세우지 않고도 반구형의 내부 돔과 공 모양의 외부 돔을 지지할 수 있었다. 외부 돔 위에는 9미터 높이의 작은 청동 뾰족탑을 얹었고 돔 전체에는 금박을 입혔다. 돔은 이스탄불 출신의 이스마일 에펜디(Ismail Effendi) 작품으로 추정한다.

영묘 정면은 기하학적 형태들이 차분하게 통일된 모습을 보여준다. 반대로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대리석 안에 반질반질한 장식용 돌들을 연결부 없이 집어넣은 ‘플로렌스 모자이크’와 반석에 새겨진 보주들은 페르시아의 모티프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타지마할 건축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단을 쌓을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타지마할의 건설 부지가 강둑의 부드러운 모래 지반이기 때문에 웅장한 건물을 지탱할 토대를 다지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에 건축기술자들은 나무로 통을 만들고 그 안에 고무와 쇠를 채우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건축법은 20세기에 이루어진 조사에서 밝혀졌다.

타지마할은 토목공학적으로도 수작이다. 경계벽은 평방피트(약 0.093평방미터)당 9톤의 무게를 지탱하는 데 반해 돔 자체의 무게는 1만 3000톤 이상이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구조물을 벽돌과 나무 · 받침대에 박은 쇠테로 보강한 아치가 지탱하고 우물을 이용하여 타지마할을 야무나(Yamuna)강의 범람으로부터 보호한다.

중심부의 기다란 연못에 비쳐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은 그 신비스러움을 더하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타지마할 입구에서 묘까지 250미터의 거리가 한층 멀게 느껴진다. ‘백색의 진주’, ‘꿈의 궁전’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은 낮에는 흰색으로 보이지만 아침에는 자줏빛, 황혼녘에는 황금빛으로 변하며 시시각각 보랏빛과 푸른빛 등 그 색채가 수없이 변한다. 달빛에 반사되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영국 작가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 1865~1936)은 타지마할을 방문한 뒤 다음과 같이 적었다. “순수한 모든 것, 성스러운 모든 것, 그리고 불행한 모든 것의 결정이다. 이 건물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석양 무렵 붉은색 옷으로 갈아입은 타지마할
석양 무렵 붉은색 옷으로 갈아입은 타지마할

네 개의 작은 정자와 연결된 중앙홀로 들어가면 보석을 넣어 정교하게 가공한 덩굴 장식 뒤로 유골이 없는 가묘가 있다. 이 가묘는 지하에 있는 진짜 무덤의 도굴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조명이 없으므로 빛이 투과되도록 정교하게 새겨진 병풍석이 공간을 신비스럽게 만드는데 빛의 흐름을 따라가면 가묘 주위에 박혀 있는 43개의 준보석이 영롱하게 반짝거려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뭄타즈 마할의 유해는 한 층 아래의 지하묘에 안장되어 있으며 샤 자한의 유해도 함께 있다. 원래 샤 자한은 야무나강 건너편에 타지마할 같은 자신의 묘를 검정 대리석으로 건설해 견고한 황금다리로 타지마할과 연결할 계획이었지만 그의 거창한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영묘 안에 있는 석관
영묘 안에 있는 석관

샤 자한은 국민들의 세금을 올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산을 이용해 타지마할을 건설했지만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ēb, 1618~1707)는 샤 자한의 무차별한 재산 낭비가 왕국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왕위를 찬탈했다. 샤 자한은 생애 마지막 8년을 아그라성에서 보냈다. 그래도 아우랑제브는 아버지의 소원 하나는 들어주었다. 하얗게 빛나는 위대한 사랑의 증거를 아그라성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아그라성은 악바르가 건설한 성으로 높이 20미터, 폭 2.5킬로미터의 대형 요새였으나 샤 자한이 황제가 된 후 평화정책을 견지해 타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궁전으로 바꾼 것이다. 근래 외벽 문양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발견되었다. “세계가 멸망하고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부활할 것이다.”

야무나강 서쪽 언덕에 있는 아그라성
야무나강 서쪽 언덕에 있는 아그라성

무굴제국이 최고 전성기를 구가할 때 건설된 타지마할은 끊임없이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은으로 만든 출입문은 녹여지고 대신 구리 문이 세워졌으며 수많은 귀금속들이 약탈되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인들은 돔의 금박을 떼어내고 구리로 대체했다. 인도 독립 후 지속적인 복원사업으로 타지마할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지만 아그라에 산재한 200여 개의 주물 공장에서 뿜어내는 독가스 때문에 흰 대리석 기념비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특히 타지마할 주변 자연환경의 변화가 타지마할을 심각하게 기울게 만들어 자칫하면 붕괴될 수도 있다.

참고문헌

  • ・ 《세상을 바꾼 건축》, 클라우스 라이홀트 외, 예담, 2006
  •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생각의나무, 2006
  • ・ 〈타지마할, 대리석으로 빚은 사랑의 노래〉, 김광성, 《모닝캄》, 2007. 7
  • ・ http://blog.naver.com/sudony?Redirect=Log&logNo=100037941631, 오상훈
  • ・ 《우리 세계의 70가지 경이로운 건축물》, 닐 파킨, 오늘의책, 2004
  • ・ 《불가사의 세계문화유산의 비밀》, 허용선, 예림당, 2005
  • ・ 《서양건축사》, 윤정근 외, 기문당, 2003
  •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베텔스만, 2003
  • ・ 《황제의 유산》,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북스토리, 2004
  • ・ 《인도 네팔》, 전명윤 외, 랜덤하우스, 2007
  • ・ 〈타지마할〉, 《부산일보》, 2004.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