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은 신의 실패작인가

흑인은 신의 실패작인가

목차

접기
  1. 고개를 든 인류 다중기원설
  2. 퇴화된 인종
  3. 흑인들은 저능한가

고개를 든 인류 다중기원설

2009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모든 아프리카인들은 환호했다. 외신은 오바마의 아버지 나라인 케냐 국민들의 축제 분위기를 연일 보도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지만 케냐 국민과 아프리카인들이 기뻐했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박해와 멸시를 받아 왔던 흑인이 실로 얼마나 우수한지를 입증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존재로 인해 새로운 자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제 세계인들로부터 보다 나은 대접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공한 흑인 이주민의 후손으로 여겨질 뿐,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아프리카관에는 변화가 없었다. 미개하고 불결하며 잔인한 인종이 사는, 가난과 질병, 폭력의 대륙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요지부동이다.

아프리카인들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그 뿌리가 매우 깊고 단호하다. 유대인과 아랍인은 구약 〈창세기〉 내용을 근거로 이미 고·중세 무렵에 아프리카인들을 저주받은 족속으로 단정했고, 유럽인들은 이를 대서양 노예무역의 근거로 활용했다.

근세에 이르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열등성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으로 입증하려 했다. 기나긴 중세에서 깨어 자신감과 우월감을 바탕으로 다른 인종을 바라보게 된 유럽은 흑인 노예무역과 식민 통치를 정당화시키고자 나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를 개발했다. 그중 일부는 심지어 20세기 아폴로호의 달 착륙 이후에도 논란이 될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열등성을 주장해온 유사 과학은 인종적 편견에 힘입어 과학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유사 과학 중 흑인의 열등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대변한 이론은 인류의 다중기원설(polygenism)이다. 모든 인종이 제각기 다른 기원을 갖고 있다는 이 이론은 사실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성경은 모든 인류가 신이 창조한 아담과 이브, 그리고 노아의 자손이라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6세기 유럽인들은 미개한 흑인과 인디오를 자신들의 형제로 여기기를 주저했다. 그들은 성경을 재해석하거나, 꽤 창조적인 지식을 가미해가면서 자신과 유색 인종과의 인종적 연결 고리를 끊으려 했다.

말하자면 다중기원설은 기독교 진리와의 충돌을 무릅쓰고서라도 야만인들을 성경의 족보에서 지워버리려는, 그리하여 유럽의 인종적·종교적 순수함과 우월성을 지키겠다는 자기 보호 노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을 보다 저급한 존재로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다중기원설은 근대 이전 유럽사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논리였다. 한니발 군대의 주종을 이뤘던 흑인은 로마의 노예가 되었으나, 그들은 백인 노예와 차별 대우를 받지는 않았다. 4세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 역시 게르만, 스키타이, 에티오피아의 민족적 특성만을 기술하였을 뿐, 에티오피아인들을 특별히 열등한 민족이라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지배받던 스페인 역시 수단 지역으로부터 노예를 수입하였지만, 이들은 주로 용병으로 고용되었고 신분 상승 기회도 보장받았다.

중세 유럽은 이단과의 싸움, 만성적 식량 부족과 만연한 전염병, 이슬람의 위협으로 인해 외부 세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15세기 대외 진출을 개시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지구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존재에 대해 막연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이미지를 투영했을 뿐, 자신들보다 열등한 인류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6세기 포르투갈의 흑인 노예 수입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목격한 미지의 인류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는데, 당시 유럽인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인종 간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성경 해석에 손을 대게 된다. 그들은 신이 아담 외에도 다른 인간을 창조한 적이 있으며,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인종은 바로 그들의 후손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인류 기원의 단일성을 부정하는 다중기원설은, 다시 아담이전창조론(Pre-Adamism)과 아담동시대창조론(Co-Adamism)으로 나눠지면서 나름 흥미진진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논증하고자 하는 결론은 대동소이했다. 두 이론은 성경이 유대인과 유럽인의 기록일 뿐이며, 그외 지역의 민족에 대해서는 그 어떤 관계도 없다고 믿었다. 구약 〈창세기〉와 〈열왕기〉에 유색 인종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도 유대인들이 이들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신학자 아이작 드 라 페이레르(Isaac de La Peyrere)는 카인의 아내와 놋(Nod) 사람들의 기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아담 이전의 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그리고는 이들이야말로 아담과 이브의 원죄에 구속을 받지 않는 사람들로서 유럽 이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주장했다.

근대 유럽의 계몽주의 역시 다중기원설의 발전에 한몫 거들었다. 계몽주의자 볼테르(Voltaire, 1694~1778) 역시 다중기원론자였다. 그는 인종 간 차이가 너무나도 극명함을 인정하면서 성경의 단일기원론(monogenism)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는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의 형상을 빚어냈다'는 창세기 구절에 대해 "여기 검은 피부색의 납작한 코를 가진, 그리고 저능한 신이 우리들의 창조주인가"라며 시니컬하게 비웃었다.

17세기에 자연과학이 발전했지만 아직 완벽한 진리를 밝히기에는 과학자들의 소양이 부족했다. 이들은 처음부터 흑인을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종으로 단정 짓고 이를 실증적으로 서술하려 했다. 이 시대에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전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으며, 각지에서 수집한 해골을 해부학자에게 전했다. 해부학자들은 해골의 크기와 모양을 측정하고, 인종 간 특징을 부각시킴으로써 다중기원설을 보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중 기원 진화설의 상상도
다중 기원 진화설의 상상도

다윈의 진화론은 본질적으로 인류의 단일기원설에 바탕을 둔 것이며, 인간과 동물의 진화적 연속성을 주장한 것이지만, 진화의 원리는 세속화되어가는 유럽 진보주의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론적 도구가 되었다. 성경과 창조론의 속박에서 벗어난 다중기원진화론(polygenist evolutionism)자들은 현생 인류들이 제각기 다른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아프리카 각지의 다양한 원숭이 얼굴 속에서 흑인을 비롯한 특정 인종과의 유사점을 발견하려고 했다. 흑인이 백인과는 다른, 보다 저급한 원숭이로부터 진화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식물학과 유전학의 발달로 학자들은 모든 생물의 진화 단계에 서열을 매겼고 이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그렸다. 당연 그 정점에는 백인이 있었고, 흑인은 그 아래였다. 약육강식의 지배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 이 분류 방식은 저급한 단계의 생물이 상위 단계의 생물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논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성의 시대이자 노예무역의 시대에 이보다 더 훌륭한 명제는 없었다. 흑인들이 백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이치인 동시에 윤리적 의무였으니, 노예무역을 합리화하기 위해 굳이 〈창세기〉 노아의 저주를 인용할 필요도 없었다.

다중기원설은 훗날 인종 분리가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를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되기 마련이었다. 19세기 미국 남부의 인종주의자 버크너 페인(Buckner H. Payne)의 설교에 따르면, 신이 아담을 만들기 전에 이미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그들은 원숭이보다 우수하지만 인간보다는 열등한 야수였다. 이들은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여 종족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후손들이 아프리카 흑인으로 번창했다. 따라서 만약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면 이는 기독교 질서를 뒤흔드는 죄악에 해당되며, 노예로 부려 먹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지위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의 논리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미국 남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의 다중 기원 진화론자들은 신이 유색 인종과 쾌락에 빠진 백인에게 크게 노하여 대홍수를 일으켰는데, 이는 또한 유색 인종을 청소하기 위한 섭리였다고 설교했다. 그리고 만약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여 형제애를 베푼다면 다시금 인류의 타락과 대홍수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식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흑인들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흑인 권익 신장을 지연시키는 걸림돌이 되었고, 흑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퇴화된 인종

피부색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갔다. 대항해시대 초기 유럽인들은 열대의 강력한 태양 광선이 피부를 검게 태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대륙의 인디오를 접하게 되자 이러한 가설에 의문이 제기된다. 북미 대륙에는 유럽과 같은 온대 기후도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처럼 태양이 강렬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피부는 검지도 희지도 않은 올리브빛이었다.

이로 인해 오직 아프리카인만이 검은 피부색을 갖고 있다는 추론이 17세기부터 등장했는데, 아프리카인들은 피부를 검게 하는 독특한 담즙을 가지고 있다거나 태양 빛의 체내 투과를 줄이기 위해 검고 두터운 피부를 발달시켰다는, 꽤 과학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이론이 뒤따랐다.

그러나 18세기 중반부터는 검은 피부와 인종적 퇴화와의 관계를 입증하려는 시도들이 뒤를 이었다. 외과의사, 생물학자들은 초기 인류가 백색과 흑색의 중간쯤 되는 피부 빛깔을 가졌으나, 환경 또는 질병과 같은 영향으로 피부색이 변했다고 보았다. 특히 인종 퇴화론의 대표 학자인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뷔퐁(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은 흑인의 검은 피부가 인종적 퇴화의 증거라고 하면서, 이들을 온화한 북미 지역으로 이주시켜 장기간 새로운 음식을 먹인다면 피부색도 다시 밝게 변할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어떤 이들은 한술 더 떠서 모든 흑인들이 피부를 검게 만드는 유전성 피부병을 앓고 있으며,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 백인들이 흑인들을 최대한 인간적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흑인과의 결혼과 출산은 강력히 반대했는데, 이는 선천적 결함을 가진 자녀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은 과학자, 인류학자, 사회사상가들에 의해 전개되어 제국주의 시대 이념의 기수 역할을 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식민지 경쟁이 본격화된 시기에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명분인 문명화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은 열등하고 미개하여 스스로 근대화할 수 없는 인종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인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화상이었다. 유럽은 흑인 스스로가 열등한 존재라고 자각하기를 원했고 식민지 경영을 통해 이를 주입시켰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상품화한 미용 제품들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9세기 아프리카 식민지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투명 비누를 생산하던 피어스 비누(Pears soap)의 매출이 급증했다. 피어스 사는 자사의 비누를 쓰면 아프리카 흑인들이 피부를 하얗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명인이 될 것이라 광고했다. 비누의 세척력을 시대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조합한 이 광고들은 아프리카인들에게 비누를 사용하고 청결 의식을 가지는 것이 문명화의 첫걸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식민지에 비누가 보급되고 몸을 깨끗이 씻는 운동이 전개되는가 하면, 피어스 비누 광고와 비슷한 그림들이 아프리카 거리 곳곳에 걸렸다. 20세기 초 미국 북부 도시에는 흑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미백 크림이 히트를 쳤다. 화장품 회사들은 노예의 후손인 흑인 이주민 여성 노동자를 이제 소비자로 인식했고, '흰 피부=신분 상승'이라는 교묘한 광고 문구로 이들을 사로잡았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어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을망정, 여전히 검은 피부는 하층민의 콤플렉스가 되어야 함을 주입시킨 것이다.

피어스 비누
피어스 비누
미백 크림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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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은 인간의 피부색을 하나의 보호 장치로 이해한다. 피부색은 체내의 멜라닌 색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색소 세포들은 필요 이상의 자외선을 차단하거나, 또는 부족한 자외선을 더 많이 흡수하기 위해 색소 생산량을 조절한다. 자외선은 우리 체내의 비타민 D 생성을 돕지만, 너무 지나치면 엽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엽산이 부족하면 불임과 조산처럼 종족 번식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비타민 D가 부족하면 뼈가 연해져 휘는 구루병을 일으킨다.

인류학자 니나 자블론스키(Nina Jablonski)는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지구의 자외선 분포 지도가 피부색 분포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인간의 피부색이 종족 번식과 관련이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아프리카와 호주, 서인도제도,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은 강력한 자외선을 막기 위해 피부가 검게 변한 반면, 북유럽 원주민은 부족한 자외선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흰 피부를 가졌다고 본 것이다.

이 이론은 실제 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흑인 신생아는 성년 흑인에 비해 훨씬 희다. 흑인들도 성장기에는 비타민 D 형성을 위해 다소 밝은 피부색을 유지하다가 2차 성장기부터 본격적으로 검어진다. 인간의 피부색은 종족 번식과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일 뿐인 것이다.

흑인 모녀의 피부색 차이
흑인 모녀의 피부색 차이

사실 세상 모든 인간들의 피부색은 하나다. 유전적 탈색증을 가진 알비노(albino)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피부 세포에 갈색 멜라닌색소를 가지고 있다. 백인과 흑인의 차이는 이 색소의 많고 적음에 지나지 않으며, 그 중간에 무수히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더구나 멜라닌 색소의 양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 직사광선과 자외선이 강한 열대 또는 사막으로 이주한 백인은 차차 피부가 검어진다. 다만 사람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멜라닌의 최대치는 차이가 있는데, 이것이 유전적으로 결정될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영원하지는 않다. 엄밀히 말해 희고 검은 것을 기준으로 인종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흑인들은 저능한가

18세기 이후 학자들은 흑인들의 신체적 특징이 정신세계를 좌우한다고 믿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798년에 간행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미국판은 흑인(negro)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사악한 것들을 지닌 족속 : 게으름, 거짓말, 반역, 잔인함, 추악함, 뻔뻔스러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표현은 심해진다. 1911년 판에는 아예 '백인보다 열등한 족속', '사고 능력이 낮아 고도의 추론 행위가 불가능한 반면 섹스에 집착', '생식기와 배설 기관이 지나치게 비대', '진화가 덜 되어 고등 유인원에 가까운 종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932년 판의 내용은 상당히 과학적인데, 이를테면 '두뇌 크기가 평균 35온스(약 992그램)에 지나지 않아 지능이 낮다', '두개골이 다른 종족에 비해 두꺼운 편으로 이는 공격용 무기로 적합하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에는 제1차 세계대전 무렵 미국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지능검사 결과가 한몫을 했다. 이 검사 결과 흑인 병사의 지능지수(IQ)가 백인 병사에 비해 평균 15퍼센트 낮게 나왔기에, 흑인이 저능하다는 것은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이후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지능검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도출되었고, 흑인들이 백인에 비해 지능이 낮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버렸다.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는 20세기 말에도 계속되었다. 1990년대 백인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전 세계 국민들의 피부색과 폭력성, 소득 수준, 평균 수명, 에이즈(AIDS) 감염률 등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결론은 자명했다. 피부색이 검을수록 범죄율은 높고 지능은 낮았다. 흑인들은 소득 수준이 낮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데다, 무책임할 정도로 아이를 많이 낳지만 영아 사망률도 높았으며 에이즈로 사망하는 비율도 높았다.

1994년 발표된 '종형곡선론(The Bell Curve: Intelligence and Class Structure in American Life)'은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 차원에서 흑인의 열등성을 선전하면서 미국의 우울한 미래에 경종을 울렸다. 리처드 헌스타인(Richard Hernstein)과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는 미국 국민들의 인종별 지능지수 통계에 기초하여 흑인을 포함한 유색 인종이 백인에 비해 지능이 훨씬 낮으며, 출산율도 높다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지능이 부모로부터 유전된다고 믿은 이들은 당시 흑인들의 높은 출산율로 인해 장차 미국 국민의 평균 지능이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미국인의 평균 지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소득 계층 출산 지원 정책을 중단하고 유색 인종의 이민 유입을 제한하라고 권고했다.

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은 이후 숱한 비판에 휩싸였다. 무엇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없었다. 헌스타인과 머레이는 지능이 부모로부터 유전될 확률을 40~80퍼센트라고 보았는데, 이는 통계를 기초로 추정한 것일 뿐 과학적 명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반대론자들은 오히려 유전적 요인보다는 환경적 요인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한국인과 일본인의 평균 지능지수는 거의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만 재일 교포들의 평균 지능은 일본인 평균치보다 낮다. 재일 교포들이 일본 사회의 차별로 인해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국 북아일랜드의 소수 집단인 가톨릭교도들은 그 지역의 개신교도들보다 지능지수가 15나 낮다.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차별이 이런 지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지능지수 검사는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교육을 통해 얼마나 고차원적인 추론 능력을 길러냈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지능이 높은 부모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지능지수 검사 문제가 요구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쌍둥이 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하나의 정자와 난자로부터 탄생했음에도 지능지수에 차이가 나는 것 역시 지능이 유전된다는 가설을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특히 지난 100년간 미국 흑인과 백인의 지능지수 격차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데, 이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지위가 향상되고 교육의 기회가 보다 보편적으로 제공된 것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프리카인들은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졌는가. 실제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평균 지능지수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2009년 연구에 따르면 싱가폴(108), 홍콩(108), 한국(106), 일본(105)이 최상위권인 반면, 사하라 이남 국가들은 대부분 60~70에 머물고 있다. 왜 그럴까? 아마 아프리카 대륙 반대편의 무심한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흑인이니까.'

그러나 실제 아프리카를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들, 특히 아동들의 학습 여건이나 가정환경을 본 사람이라면 좀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아동들의 절반 정도는 학교를 다닐 수 없다. 설사 학교에 다닌다 하더라도 교과서나 교재가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능력과 교육의 질도 형편없다. 능력이 없는 학교는 종교와 전통을 가르치는 것에 집착하고, 이슬람 학교는 아예 구걸 방법을 가르친다. 그런 여건에서 아프리카 학생들이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지능지수 검사 문제를 풀 수 있을까.

교육 인프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문화적 특성도 한몫 거든다. 뿌리 깊은 토착 신앙은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의 발달을 저해한다. 가뭄과 홍수, 가난과 빈곤 등의 고난은 모두 조상신과 정령의 노여움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주술적 의식을 치르는 것에 치중하다 보니 자연 현상을 객관적으로 고찰하려는 의식이 발달하지 못했다.

대부분 아프리카인들은 우분투(ubuntu)라는 집단 공동체 의식으로 결속되어 있는데, 우분투란 쉽게 말해 사람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소속된 공동체를 통해서만 존재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다. 아프리카인들이 가족과 씨족, 부족, 지역 공동체에 애착이 크고, 타인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다른 말로 오지랖이 넓은 이유도 역시 우분투 의식 때문이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분투 의식은 사람들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집단적 합의와 결속, 전통과 역사에 집착하게 만들어 개인의 창의적인 사고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의 발달을 저해한다. '지도자(부족장)는 결코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늙을수록 지혜롭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통해 아프리카가 왜 수천 년 동안 느릿느릿한 걸음을 걸어왔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의 지능지수가 낮은 것은 다름 아닌 환경적이고 문화적인 요인 때문이다. 절대 빈곤을 퇴치하지 못하는 무능한 아프리카 정부, 그리고 과거와 전통을 강조하는 집단의식이 아프리카인들의 지능 발달을 저해할 뿐, 피부색, 성기와 두뇌의 크기는 지능지수와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조차 흑인들이 열등한 인류라는 편견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우리들이 아직은 18세기 식물학자 칼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의 분류법,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도용한 선전에 익숙하며, 외신들의 빈곤과 내전, 에이즈에 관한 보도 내용을 아프리카의 모든 것으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