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웹툰에 빠져드는가

왜 우리는 웹툰에 빠져드는가

'죽음으로 이끈 만화 흉내', '죽음까지 몰고 온 불량만화'……. 1972년 2월 초, 평소 만화를 탐독하던 초등학교 6학년 정 모(12) 군이, 죽었던 사람도 살아나는 만화의 한 장면을 따라하다 목을 매 숨진 사건이 벌어지자 각 신문 사회 면은 이런 기사 제목으로 뜨거웠다. 이후 사회 전반에서 '불량만화 척결운동'이 벌어진 가운데 만화는 사회적 해악으로 취급받았으며, 이는 2000년대에까지 그 흔적을 남겼다.

학창 시절 늘 만화를 끼고 자랐던 대학생 김 모(25)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혼나기 일쑤였다. 장래 희망을 쓰는 칸에는 만화가라고 적었지만 그때마다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은 '만화가 밥벌이냐'며 나무랐다. 김 씨는 결국 지방의 전문대에 진학해 만화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2012년부터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인터넷을 통한 만화를 뜻하는 웹툰(web+cartoon)이 인기를 끌면서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꺼내들었다. 아마추어 작가들을 지원하는 웹툰 서비스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김 씨는 "과거엔 만화를 그리며 밥벌이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웹툰 작가'가 꿈이라고 하면 '대단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위 이야기는 2013년 1월 31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밥벌이 하겠냐" 핀잔 듣던 만화가 이젠 귀하신 몸 … 웹툰 인기몰이로 상한가」라는 기사의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웹(web)의 파워가 대단하다. 만화(cartoon)에 대한 세간의 인식까지 바꿔 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좀 더 따지고 들자면, 유통 방식, 즉 만화를 소비하는 공간의 변화가 가져온 변화다. 사실 과거 만화를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들은 만화를 전혀 보지 않던 사람들이다. 접촉의 기회가 쉽지 않았기에 만화의 재미와 맛을 아예 느끼지도 못한 채 만화 애독자를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제 10년의 역사를 갖게 된 웹툰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3년 1월 현재 네이버는 130여 편, 다음은 70여 편을 연재하고 있다. PC를 통한 네이버 웹툰의 2012년 한 달 최고 페이지 뷰(PV)는 9억 건을 넘어섰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이용한 방문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2년 12월 네이버에선 처음으로 모바일 이용 비중이 51퍼센트를 기록해 PC보다 높게 나타났다. 스마트폰에서 구현되는 웹툰을 가리키는 스마툰(smartoon: smart+cartoon)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또한 웹툰은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게임 등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대중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웹툰에 대해 가장 뜨거운 애정을 보이는 곳은 충무로다. 역대 웹툰 원작 최고 흥행작인 강우석 감독의 <이끼>(2010년·340만 명)에 이어 2012년 강풀 원작의 웹툰을 극화한 두 편의 영화 <이웃사람>(243만 명)과 <26년>(294만 명)이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웹툰에 무관심했던 방송사들의 태도도 변하고 있다. 강도하 원작의 <위대한 캣츠비>(tvN), 원수연 원작의 <메리는 외박중>(KBS)에 이어 여러 편의 웹툰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위대한 캣츠비>와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이상 강풀 원작)가 연극이나 뮤지컬로 제작돼 좋은 결과를 낳았다. 게임이나 캐릭터 상품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웹에서 보든 종이를 만지면서 보든 만화는 묘한 매력으로 사람을 잡아끈다. 적어도 199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날이 갈수록 만화의 인기가 치솟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미국의 만화 평론가 빌 아이즈너는 "이 시대가 책과 영화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시각적이면서도 문학적인 매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닌 게 아니라 만화는 책과 영화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약점을 채우는 이상적인 매체임이 틀림없다. 만화는 소재의 선택에서 그 어떤 매체보다 유리하며, 또 그 소재를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그 어떤 매체보다 더 유리하게 사람들을 파고든다.

같은 맥락에서 정준영은 만화의 인기가 높은 첫 번째 이유로 매체로서 만화가 갖는 우수성을 들고 있다. 만화는 그림과 글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는 매체로, 비교적 값이 싸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만화는 글의 분명함과 그림의 즉각성을 결합하면서 글의 어려움은 그림을 통해, 그리고 그림의 다의성은 글을 통해 보완하기 때문에, 교육 수준과 문화권의 차이를 뛰어 넘어 그 누구에게나 쉽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준영은 두 번째 이유로 만화의 '꿈꾸기' 기능을 지적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만화를 통해 꿈을 꾸고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만화를 통해 다시 예전의 꿈과 만난다는 것이다. 그는 만화가 19세기 말에 출현하게 된 것도 당시 공동체 사회가 붕괴하면서 출현한 대중사회 속의 개인이 자신들의 능력에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꿈꾸기를 포기해버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만화가 그 빈틈을 훌륭하게 메워주며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왔다는 것이다.

"꿈을 꾸는 데는 일정한 능력이 요구된다. 전통 사회에서는 그러한 능력이 대개 일상의 경험 속에서 획득되었다. 꿈꾸기라는 것이 그 사회의 현재와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또 사회가 비교적 단순하여 꿈꾸는 내용 역시 상대적으로 단순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사회 이후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지식을 획득하는 데 경험이 지니는 중요성과 신뢰도가 점점 하락함에 따라 꿈꾸기의 능력에도 점차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바로 꿈꾸기가 점점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현대인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꿈을 꿀 수도 없게 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만화는 전문가들이 무어라고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걸 읽는 사람 누구나 스스로 꿈을 꾸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세계 최대의 만화 왕국이 일본이라는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일본은 대단히 자유로운 나라 같지만, 일본인은 세계 그 어떤 나라 사람보다 통제적이고 획일화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예의바르고 질서를 잘 지키는 장점은 있지만, 반면 자유로운 꿈꾸기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에서 만화가 전체 출판 산업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성행하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와 동시에 일본은 문화적으로 만화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인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만화 예술은 8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일본에서는 만화가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적이 없다. 만화는 모든 일본인에게 역사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만화 주인공들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도 매우 높으며, 심지어 만화는 단순한 현실도피적 오락만은 아니라는 학자들의 연구서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일본인의 지극한 만화 사랑과 관련, '일본인은 만화라는 표현 방식에 가장 어울리는 기질을 가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와 관련, 일본의 소프트화(化) 경제센터 이사장인 구사카 기민도와 평론가인 이시카와 요시미가 2000년 일본의 『보이스(Voice)』라는 잡지에서 세계 각국의 애니메이션 실력에 대해 나눈 대담 내용이 흥미롭다. 한국에 대해 비아냥대고 스스로 잘난 척 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날카로운 점이 있다는 것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시카와는 "중국은 아직 CG 기술이 미숙해서 한 장짜리 만화 같은 게 많지만 예를 들어 한국은 할리우드에서 공부한 애니메 크리에이터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열심히 질 높은 만화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역시 일본에는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요. 일본 만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일본인이 엉터리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한다.

구사카가 동감을 표하자 이시카와는 이어 "한국인은 성실하거든요. 술을 마실 때도 진지하게 토론을 하니까 눈에 핏발이 서지요.(웃음) 한편 일본 문화가 엉터리라는 것은 만화에 꼭 들어맞아요. 한국처럼 순수 유교라고 할까요, 유교의 종주국이 이웃에 있는데도 종가인 중국보다 순화된 유교를 만드는 것으로 차별화를 하려고 한 나라는 역시 국민성이 성실해서 일본처럼 장난치는 만화를 만들 수가 없지요"라고 말한다.

구사카가 "그렇지만 바둑은 강하지요.(웃음) 성실하게 두니까요"라고 답하자, 이시카와는 "미국인도 그래요. 장난을 치기도 하고 유머도 있지만 근본은 청교도의 나라지요. 때로는 질릴 정도로 진지해서 문화에 매뉴얼화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미국 만화는 일본만큼 뛰어나지 못하지요. 웃음을 만드는 법 등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그리려고 들거든요. 일본 만화의 주인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을 날아요. 그 이유는 필요 없지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너무 성실하고 진지해 만화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옛날이야기다. 한때 한국에선 만화를 무조건 유해 매체로 간주하는 등 만화를 폄하하고 탄압했던 시절이 없지 않았지만, 이젠 만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되었다. 게다가 웹툰으로 유통 장벽이 무너지면서 훨씬 큰 성장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고 컴퓨터게임으로도 이용되고 각종 캐릭터 산업의 원천이 될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등 창구 효과(window effect)가 매우 크기 때문에 산업적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 세상이 날로 각박해지고 현실에서 꿈을 이루기가 날로 어려워질수록 만화는 '꿈꾸기 매체'로서 대중의 더 큰 사랑을 누릴 게 틀림없다.

참고문헌

  • ・ 곽아람, 「당신의 유년은 어느 만화에 있습니까」, 『조선일보』, 2013년 2월 23일.
  • ・ 김유나, 「"밥벌이 하겠냐" 핀잔 듣던 만화가 이젠 귀하신 몸 … 웹툰 인기몰이로 상한가」, 『국민일보』, 2013년 1월 31일.
  • ・ 고경석, 「보물창고 웹툰! … 대중문화 젖줄로」, 『한국일보』, 2013년 1월 30일.
  • ・ 박천호, 「만화 새 문학형태로 뿌리 내린다」,『한국일보』, 1993년 11월 2일, 21면.
  • ・ 정준영, 「시대와 꿈꾸기」,『사상문예운동』, 1991년 가을, 174~176면.
  • ・ 쿠사카 기민토·이시카와 요시미, 「대담/일본만화가 세계를 바꾼다: 일본인은 만화라는 표현방식이 가장 어울리는 기질을 가졌다」, 『emerge 새천년』, 2001년 1월, 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