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다른 표기 언어 夢遊桃源圖 동의어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세월을 잊습니다

'몽유도원도'는 지금 외출 중

이맘때쯤이면 앞산, 뒷산 불그스레한 복숭아꽃이 곱게 필 때입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등장하는 복숭아꽃도 그런 예쁜 꽃이었을까요? '몽유도원', '무릉도원'처럼 신비하고 아름다운 절경에 반드시 등장하는 도원(桃源)이라는 복숭아꽃밭은 중국 송나라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말로 '이상향', '별천지'를 뜻합니다. 내용은 "진나라 때 호남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지로 올라가 굴속에서 진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하도 살기 좋아 그동안 바깥세상의 변천과 많은 세월이 지난 줄도 몰랐다'는 줄거리지요.

이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조선 초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입니다. 1447년 4월 20일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도원을 꿈꾸고 나서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했던 몽유도원도는 왼편 하단부의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부터 오른편 도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의 전체적인 경관이 짙은 안개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서로 잘 조화된 것이 특징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 그림에는 안평대군의 발문(跋文)과 시문 이외에도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같은 당시의 쟁쟁한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여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그뿐만 아니라 《세종실록》 119권, 30년(1448)에는 세종이 명하기를 "무릇 예기(禮器)를 만들 때 처음에는 비록 지극히 상세하나, 전(傳)하기를 오래 하면 반드시 그 참을 잃게 된다. 이제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仗圖)를 조사해본즉 모두 잘못되어 고의(古儀)에 맞지 아니하니, 지금 만든 바의 동궁의장(東宮儀仗)은 호군(護軍) 안견(安堅)으로 하여금 법에 의하여 그 대소가의장도를 그리게 하고, 또한 그로 하여금 개정(改正)하게 하여 잘 단장해서 책을 만들고, 신·구관(新舊官)이 서로 교대할 때에는 장부를 두어 인수인계하게 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세종 임금도 안견의 그림솜씨를 높이 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산수화의 최고 화풍을 자랑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그러나 지금 많은 미술 작품이 그러하듯 한국에 없고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