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족

위구르족

维吾尔族
요약 테이블
분류 돌궐어족 민족 > 위구르족

위구르족은 주로 신강위구르자치구에 분포해 있다. 2000년도 중국 인구조사통계에 따르면, 위구르족은 총 8,339,393명으로, 그 가운데 8,345,622명이 신강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자치구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위구르”는 위구르족이 스스로를 일컫는 용어로, ‘단결’, ‘연합’, ‘협조’의 의미이다. 이 민족은 일찍이 4세기부터 한문 사적에 등장하는데, 역대 한문 사적 속의 위구르에 대한 기술은 일정하지 않다. 예컨대 북위 시기에는 ‘원흘(袁纥)’, 수나라에서는 ‘오흘(乌纥)’, ‘위흘(韦纥)’이라 불렀다. 당나라에서는 ‘회흘(回纥)’, 후에는 또 ‘회홀(回鹘)’로 개칭하였는데 이는 “도는 것이 송골매처럼 가볍고 민첩하다(回旋轻捷如鹘)”는 뜻을 취한 것이다. 오대와 송나라에서는 ‘회흘(回纥)’, ‘회홀(回鹘)’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원나라에서는 ‘회흘(回纥)’, ‘회홀(回鹘)’ 외에도 ‘휘화(辉和)’, ‘휘화아(辉和尔)’, ‘위올(畏兀)’, ‘위올아(畏兀尔)’라 불렀다. 청나라 말기, 민국시대 초기에 위구르족은 스스로를 ‘위무아(威武尔)’라 불렀는데 이는 “강력한 힘(雄武)”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934년 신강성 정부는 정식으로 “위구르”라는 한어로 번역한 족칭으로 통일하여 사용하였다.

위구르족 가족
위구르족 가족

역사상 위구르족을 가리켜 부른 명칭을 보면, 청나라에서는 ‘회부(回部)’ 또는 ‘전회(缠回)’라 불렀고, 이리(伊犁) 지역의 위구르족을 ‘탑란기(塔兰其)’라 불렀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는 ‘탑란기’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액로특몽골(厄鲁特蒙古)의 준갈이(准噶尔) 귀족들이 이리 지역의 위구르족을 부르던 호칭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 명칭은 중국의 성립 이후에 폐지되었다. 근대 이래 일부 서양 문헌들에서 위구르족을 가리켜 부르는 ‘사르트’는 사업 경영에 능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위구르족은 주로 천산 이남의 남강 지역, 그중에서 타림분지 변두리의 화전(和田), 카스(喀什), 아커쑤(阿克苏), 투루판(吐鲁番), 하미(哈密)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의 위구르족 인구는 전체 자치구 위구르족 인구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북강의 위구르족은 주로 이리, 탑성(塔城), 우루무치(乌鲁木齐) 등 도시와 넓은 지역의 농촌에 분포해 있다. 그 외에도 호남성의 도원(桃塬), 상덕(常德) 등의 현에 7,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고, 장갈시(长葛市)와 북경시에도 위구르족이 거주하고 있다.

위구르족 노인들
위구르족 노인들

위구르족 언어는 알타이어계 돌궐어족 서흉어지(西匈语支)에 속한다. 위구르족 언어에는 세 가지 방언이 있는데 중심방언, 화전방언 및 라포(罗布)방언이 그것이다. 중심방언은 동쪽의 하미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이리, 남쪽으로는 카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사용 인구가 총인구의 80%를 차지한다. 화전방언은 주로 화전지구에 분포되어 있고, 사용 인구는 총인구의 19%를 차지한다. 라포방언은 주로 남강 동부의 위리현(尉犁)과 약강현(若羌县)의 일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사용 인구는 총인구의 0.3%이다. 위구르족의 표준어는 중심방언을 기초로 하며, 이리-우루무치의 억양을 표준음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