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6자회담

다른 표기 언어 Six-party Talks , 六者會談

요약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 나라가 참가하는 다자회담이다. 2003년 8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모두 6차례 회담이 열렸다. 이후 2016년 3월까지 9년째 유명무실한 상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9·19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성과를 내는 등 북핵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한 측면이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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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자회담
  2. 6자회담의 성립 배경
  3. 6자회담 전개 과정
  4. 6자회담 일지

6자회담

6자회담은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을 위해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개 나라가 참가하는 다자간 회담이다.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논란으로 불거진 2차 북핵 위기가 발단이 됐다. 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2003년 8월27일 중국 베이징에서 6개국의 외교부 당국자들로 구성된 대표단이 모여 첫 회의를 시작했다. 이후 2007년 9월 회담까지 모두 6차례 회담이 중국에서 열렸다.

6자회담에 참석한 각국 수석 대표단
6자회담에 참석한 각국 수석 대표단

6자회담의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미국은 ‘선 핵포기-후 보상’ 입장을 고수한 반면, 북한은 핵 동결과 불가침 조약과 경제지원의 ‘동시행동’을 주장하며 맞섰다.

6자회담은 한반도 핵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측면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6자회담의 성립 배경

1차 북핵 위기각주1) 를 봉합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핵문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의 핵 시인 발언으로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긴장국면으로 들어갔다. 1차 북핵 위기의 해결방법이었던 제네바 합의는 양자회담 방식이었다. 그러나 양자회담 방식을 통한 1차 위기 해법이 결국 무위로 돌아가게 되고 2차 북핵 위기를 맞은 미국은 북한이 양자회담 약속을 어기고, 핵개발에 나서도 별다른 제재방법이 없다고 여겼다. 이같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미국은 북한이 약속 불이행을 하지 못하도록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회담 틀을 채택했다. 반면, 북한은 미국과 담판짓는 양자회담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6자회담 전개 과정

6자회담은 북-미간 대립으로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 동결을 대가로 중유 제공, 경수로 건설 지원 등을 약속한 제네바 합의와 같은 보상식 접근이 소용이 없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1차 위기 때와는 다른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또 미국은 1993년 1차 핵협상 당시에는 과거 북한 핵의 유보, 현재 핵 동결, 미래 핵의 추가개발 차단을 목표로 했지만, 2차 북핵위기를 맞아선 모든 북한 핵의 철저하고 완전한 폐기를 목표로 삼았다.

2003년 8월 1차 회담은 상견례 성격으로 별다른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2004년 2월 2차 회담, 2004년 6월 3차 회담도 이견이 첨예하게 부딪혀 좀처럼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초기 세 차례의 6자회담은 북핵문제에 국한돼 서로 다른 입장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2005년 7월26일 시작한 4차 회담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6개국은 서로의 입장을 절충한 뒤 합의문 도출에 나섰다. 적어도 그동안 협의된 각 나라의 입장을 정리한 뒤 큰 틀의 로드맵을 정리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8월7일까지 13일 간의 회의에서 4차에 걸친 수정안이 나왔지만 북-미 간 핵폐기 범위와 경수로 문제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휴회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한 달 여 뒤인 9월13일 4차 회담 2단계 회의가 열렸고 일주일 동안 진행된 치열한 협상 끝에 ‘9·19 공동성명’이라는 성과물을 도출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9·19 공동성명의 골자다. 2년 뒤인 2007년에는 9·19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인 ‘2·13합의’와 ‘10·3합의’가 마련되는 성과도 있었다. 이 합의들은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불능화와 신고를 이행하고, 나머지 5개국이 중유 등 에너지와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담았다. 그러나 북한 핵 프로그램 신고 대상에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 포함 여부가 명확지 않았고, 북한의 신고 이행과 5개국의 경제지원 중 어떤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선후 관계도 모호했다. 결국 북한과 미국이 서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떠넘기며 합의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9월 회담을 마지막으로 6자회담은 2016년 3월까지 9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이 유명무실해진 그 8년 동안 북한은 핵실험을 세 차례 단행했고, 장거리 로켓을 네 차례 발사했다.

6자회담 일지

-2003.8.27∼29 제1차 6자회담
-2004.2.25∼28 제2차 6자회담
-2004.6.23∼26 제3차 6자회담
-2005.7.26∼8.7 제4차 6자회담 1단계회의
-9.13∼19 제4차 6자회담 2단계회의. ‘9·19 공동성명’ 채택.
-11.9∼11 제5차 6자회담 1단계회의
-2006.7.5 북,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
-7.16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1695호 채택
-10.9 북, 제1차 핵실험 실시
-10.14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718호 채택
-12.18∼22일 제5차 6자회담 2단계회의
-2007.2.8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
-2.13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13 합의’ 도출.
-7.18∼20 제6차 6자회담 1단계회의
-9.27∼30 제6차 6자회담 2단계회의 ‘10·3합의’ 도출.
-2008.6.26 북, 중국 정부에 핵 시설과 물질 신고서 제출. 미,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 착수.
-7.10∼12 제6차 6자회담 2차 수석대표회의
-10.11 미,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발표
-12.8∼11 제6차 6자회담 3차 수석대표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