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문명

잉카 문명

오래전부터 안데스의 고원 지대에는 사람이 살았어요. 잉카 제국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2세기. 쿠스코 분지 파우카르탐보라는 동굴에서 나타났다는 전설을 가진 시조 만코 카파크에 의해서였어요. 그 뒤 세력을 넓혀 간 잉카 제국은 1438년 파차쿠티 왕이 오늘날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전체를 평정하고 통일된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잉카의 최전성기로 보이는 이때 잉카 제국의 영토 안에는 50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1,200만 명의 부족들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컸는지 상상이 되나요? 잉카 제국은 정복한 다른 부족들에게 세금으로 곡물과 노동력을 제공받는 대신 토착 신앙을 그대로 따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폈고, 안데스 산맥의 산등선과 계곡에 마련한 역참각주1) 을 통해 지방을 다스렸답니다.

잉카 제국 역시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문명들처럼 태양신을 섬기고 태양신에게 정성을 보이기 위해 산 사람을 신전에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특이한 점은 잉카 제국이 씨족들을 중심으로 씨족 내에서 모든 걸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자족의 생활 형태를 기반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집단으로 경작하고 나누는 형태였지요. 개인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축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잉카 인들에게 부자는 자식과 가족이 많은 사람이었고, 가난한 사람은 가족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잉카는 공예나 건축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였지만 문자는 없었습니다. 아마우타라라고 부르는 사람을 두고 말로 전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문자의 보조 수단으로는 퀴프라고 하는 매듭을 사용했어요.

잉카 제국이 멸망한 것은 1532년 스페인의 침입에 의해서였어요. 피사로라는 원정 대장은 잉카의 왕을 비롯한 많은 잉카 인들을 죽이고 잉카 제국의 유물과 보물을 훔쳐 갔지요. 또 유럽의 전염병까지 전해져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던 잉카는 역사 속의 수수께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