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여인〉

파블로 피카소

〈울고 있는 여인〉

Weeping Woman
파블로 피카소 〈울고 있는 여인〉
파블로 피카소 〈울고 있는 여인〉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울고 있는 여인〉을 테이트 모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인지, 내가 테이트 모던에 갈 때마다 이 작품은 다른 테이트 갤러리에 가 있거나 순회 전시 중이었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3층 전시실을 돌다가 늘 교과서에서 보아 오던 〈울고 있는 여인〉과 딱 마주쳤다. 테이트 모던은 독특한 전시 원칙만큼이나 그림을 거는 방식도 특이해서 전시실 벽의 아래위로 작품들을 빽빽하게 걸어 놓는다. 그래서 전시된 작품뿐 아니라 전시실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뜻하지 않은 피카소와의 조우에 조금 놀랐다. 〈울고 있는 여인〉은 내 예상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그림이었다. 피카소의 현란한 색채와 해체된 형태들이 넘치는 이 작은 캔버스를 나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피카소의 삶과, 그리고 이 그림 뒤에 숨겨진 여러 배경들, 역사적 비극과 한 여자의 개인적 비극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사실 나는 피카소라는 화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피카소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다. 90년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3만 점이 넘는 그림을 그리고, 열네 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드로잉했다는 이 천재 화가는 여성 편력도 정말이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평생 일곱 명의 여자와 같이 살고 그중 두 명과 결혼했다. 그 일곱 명 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여인들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울고 있는 여인〉은 그 일곱 명의 여인들 중 하나인 사진작가 도라 마르(Dora Maar, 1907-1997)를 모델로 한 그림이다.

도라 마르는 1937년에 피카소가 그 유명한 대작 〈게르니카〉를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처음 피카소와 만났다. 도라는 프랑스인이지만 에스파냐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촉망받는 젊은 사진작가였다. 피카소는 1937년 에스파냐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가 독일 공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당하자 그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높이 3.5미터, 길이 7.7미터에 달하는 대작 〈게르니카〉를 6주 동안 그렸다. 그는 이 6주 동안 벽화 작업뿐 아니라(〈게르니카〉는 파리 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에 전시하기 위해 제작된 벽화다) 이 대작의 부분에 대한 스케치도 무수히 그려 댔다. 도라는 그 과정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가며 6주 내내 피카소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게르니카〉가 완성된 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도라가 30세, 피카소가 56세 때의 일이었다.

〈울고 있는 여인〉은 〈게르니카〉의 한 부분을 닮아 있다. 〈게르니카〉 벽화에서 아이를 잃고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유화로 그린 작품이 이 〈울고 있는 여인〉이다. 〈게르니카〉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흑백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게르니카〉의 참상은 〈울고 있는 여인〉에서 선명한 색채로 되살아나 있다.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원색과 함께 여인의 얼굴은 하얀 눈물로 온통 덮여 있다. 하얀 눈물은 여인의 볼과 입술, 목으로 흘러내린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에스파냐 내전과 게르니카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피카소는 도라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이 슬프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왜곡되고 뒤틀린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피카소의 그림에 그려진 모습처럼, 도라의 인생은 피카소에 의해 굴절되었다. 1943년,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인 젊고 아름다운 여자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를 만났다. 피카소는 자신의 정물화 몇 점과 프로방스에 있는 집을 주어 도라를 쫓아 보냈다. 버려진 도라는 정신발작을 일으켰다. 그녀는 훗날 정신병에서는 회복되지만 피카소를 만나기 전에 자신이 추구했던 사진과 그림의 세계로는 되돌아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도라에게 피카소는 파멸로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피카소는 90세에 이르는 긴 생애 내내 화가로서 늘 명예와 찬탄을 받았고, 엄청난 부를 쌓아 올렸다. 그의 절친한 친구 조르주 브라크의 표현대로라면, 피카소는 “불을 뿜기 위해 석유를 마시는 광대처럼” 광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피카소가 늘 즐겨 그린 대상 중에는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수(半人半獸)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왕자로 태어났지만 괴물이 되어서 미궁에 갇힌 채 젊은이들을 잡아먹는 미노타우로스는 결국 피카소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도라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갇힐 운명으로 태어난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말로 설명하더라도, 피카소라는 이 놀라운 천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늘 나에게 대단한 화가이자, 너무 멀리 있는 천재, 인간적으로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남자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