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는 젊은 여자〉

조르주 쇠라

〈화장하는 젊은 여자〉

Young Woman Powdering Herself
조르주 쇠라 〈화장하는 젊은 여자〉
조르주 쇠라 〈화장하는 젊은 여자〉

이 그림이 주는 첫 인상은 ‘수수께끼’다. 한마디로 말해 뭔지 모르게 이상한 그림이다. 그림은 화장대 앞에서 파우더로 얼굴을 분칠하는 여자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여자의 모습은 젊은 여인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뚱뚱하고 풍만한 데다가, 얼굴도 그리 젊어 보이지 않는다. 여자 앞에 놓인 화장대는 또 여자의 몸집에 비하면 너무도 작고, 모양도 좀 이상하다. 그리고 거울 뒤에는 꽃인지 나비인지 모를 물체가 매달려 있고, 그림 왼편에 열린 창 바깥으로는 엉뚱하게도 화분이 놓인 책상 모서리가 보인다. 그리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마치 달빛처럼 둥근 궤적을 벽 위에 남기고 있다. 모든 게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이 그림의 기묘한 분위기는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 특유의 점묘법으로 인해서 더 이상해 보인다.

이 그림이 수수께끼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화장대 너머 벽에 장식된 나비(?) 그림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세히 보면 화장대 건너편 벽에는 풀잎과 분홍색 꽃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 장식은 묘하게도 화장대와 딱 맞물려 떨어져서 마치 화장대에서 피어나는 향기 같은 느낌을 준다.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화장대 위 거울에 꽂힌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분홍 꽃잎에서 여자가 들고 있는 분첩으로 옮겨 간다. 그리고 저절로 그 분첩에서 풍기는 화장품 냄새를 느끼게끔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마치 향기가 풍기는 듯, 미묘한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화장을 하고 있는 여자도 기묘하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풍만한 가슴을 코르셋으로 꼭 눌러 조이고 있는 여자의 몸매는 인형처럼 비현실적이다. 가슴은 너무나 큰데, 허리는 또 개미처럼 잘록하다. 여자의 얼굴은 이미 화장이 거의 끝난 후인 듯싶다. 작은 입술은 요염한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눈에는 아이라인이 선명하다. 진한 화장을 한 여자의 얼굴과 위로 올린 머리 스타일은 일본 판화의 게이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다른 인상파 화가들처럼, 쇠라 역시 일본의 우키요에에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풍만하게 그려진 상반신에 비해, 스커트 속에 가려진 여자의 하반신에서는 양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점들이 더더욱 이 그림을 특이하고 장식적으로 보이게끔 한다. 쇠라는 이 그림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쇠라는 짧은 삶 동안 점묘법이라는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화가다. 여러 색깔의 점을 번갈아 찍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혼합된 색채를 느끼게끔 하는 그의 스타일은 대단히 독보적인 대신,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유명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같은 경우는 완성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점묘법의 원리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이 색깔을 나타내는 방식과 똑같다. 쇠라는 그림과 과학을 결합시킨 최초의 화가로 일컬어진다. 쇠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예술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미술의 핵심은 조화야. 조화란 색채와 톤, 그리고 선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데, 빛, 그리고 기쁨이나 슬픔, 즐거움 같은 감정들이 이런 요소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지.”

파리의 《살롱전》은 물론 쇠라의 작품을 전시하기를 거절했지만, 새뮤얼 코톨드는 쇠라의 독특한 스타일을 좋아했다. 코톨드는 쇠라의 대작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를 구입하도록 내셔널 갤러리를 설득하기도 했다. 코톨드 갤러리의 3층 전시실에는 쇠라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기 전에 연습 삼아 그린 작은 크기의 습작 2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화장하는 젊은 여자〉의 모델은 쇠라의 정부 마들렌 노블로흐(Madeleine Knobloch)다. 그녀는 이 그림이 주는 태평하고 유복한 마나님 같은 인상과는 달리 비극적인 생을 살았다. 쇠라는 클리시에 있는 작업실에서 자신의 모델이었던 마들렌과 비밀리에 동거 생활을 했다. 마들렌은 1890년에 쇠라의 아들을 낳았지만 쇠라는 아들의 탄생을 집안에 알리지 않았다. 쇠라는 부유한 지주였던 아버지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들이 태어난 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쇠라는 마들렌과 아들 피에르 조르주(Pierre Georges)를 집안에 소개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만에 쇠라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서른하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주일 후, 한 살짜리 아들 피에르도 역시 디프테리아로 사망했고, 임신 중이던 마들렌은 충격으로 아들을 사산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