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톨드 갤러리

코톨드 갤러리

THE COURTAULD GALLERY

인상파의 숨겨진 왕국

주소 : Somerset House, Strand, London WC2R 0RN(020 7848 2526)
지하철역 : 템플(Temple) 역, 차링 크로스(Charing Cross) 역, 임뱅크먼트(Embankment) 역
개관 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휴관일 : 12월 25-26일
입장료 : 5파운드(학생과 60세 이상 4파운드, 월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 사이 무료 입장)
카페 : 있음
홈페이지 : www.courtauld.ac.uk

일전에 쓴 책 『런던: 숨어 있는 보석을 찾아서』에서 나는 런던의 숨은 보석으로 코톨드 갤러리를 꼽았다. 정말이지 코톨드 갤러리는 ‘보석’이라는 칭송이 아깝지 않은, 인상파 화가들의 별처럼 빛나는 명작들을 모아 놓은 알찬 컬렉션이다. 1932년 런던에서 문을 연 이 갤러리는 520점의 회화와 7천여 점의 드로잉, 그리고 그 외에 여러 조각과 판화 등을 소장하고 있다. 회화의 수로만 따지면 결코 큰 갤러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520점의 회화 중에는 인상파의 수많은 걸작들이 포함되어 있다. 마네가 만년에 그린 걸작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비롯해서 단 두 점뿐인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다른 한 점은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소장되어 있다), 세잔의 〈큐피드가 있는 정물〉과 〈카드놀이〉, 모네의 〈앙티브에서〉와 〈아르장퇴유의 가을〉, 르누아르의 〈관람석〉,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복사본, 모딜리아니의 〈누드〉, 쇠라의 〈화장하는 젊은 여자〉, 툴루즈로트레크의 〈물랭 루즈로 들어서는 잔 아브릴〉, 고갱의 〈두 번 다시는〉 등등 그야말로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대표작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코톨드 갤러리에 처음 들어서는 관객은 누구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작은 갤러리(바깥에서는 입구도 잘 보이지 않는다)에 교과서에서나 보던 놀라운 걸작들이 가득히 전시되어 있으니 말이다. 흔히 인상파 작품의 보고로 불리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축소판 같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나 별처럼 빛나는 컬렉션에도 불구하고, 런던 한가운데인 스트랜드(Strand)에 위치해 있는 이 갤러리를 찾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여타 유명 갤러리와는 달리, 코톨드 갤러리의 전시실들은 늘 고요한 정적에 싸여 있다. 심지어 그 유명한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 앞에도 관람객이 한두 명 서 있을까 말까 하다. 같은 런던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의 〈해바라기〉를 비롯해서 세계 각처의 미술관에 있는 고흐 그림들은 대부분 관람객의 홍수 속에 파묻혀 있다. 그래서 고흐의 그 유명한 붓 터치를 감상하기는커녕, “아, 저기 고흐의 그림이 있구나” 하고 먼발치에서 확인만 하고 관람객의 물결에 떠밀려 다음 전시실로 건너가기 일쑤다.

그러나 코톨드 갤러리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관람객이 너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실을 돌고 또 돌며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앞에서 사진을 펑펑 찍어 대든(런던의 다른 갤러리들과는 달리, 코톨드 갤러리 전시실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고흐의 자화상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든, 모네의 〈앙티브에서〉 앞에서 일렁이는 물결을 그린 모네의 테크닉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코톨드 갤러리는 어디로 보나 너무도 신기한, 그리고 너무도 신비한 갤러리인 것이다.

이토록 놀라운 소장작들에도 불구하고 코톨드 갤러리에 관람객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런던의 다른 미술관들과는 달리, 이 갤러리는 5파운드(약 9천 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이 때문에 길어야 사나흘을 런던에서 머무르는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넘쳐 나는 무료 미술관들을 외면하고 코톨드 갤러리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해서 테이트 모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국립 초상화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등 무료 입장이 가능한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얼마나 많은가. 여기를 다 둘러보기에도 숨이 차는데, 그리고 이미 런던의 비싼 물가에 가슴이 내려앉은 후인데 입장료까지 내며 또 다른 미술관을 찾아갈 리가 없는 것이다.

사실 코톨드 갤러리 측에서도 굳이 자신들의 컬렉션을 홍보하지 않는다. 이처럼 훌륭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면 동네방네 자랑할 만도 하건만, 이 갤러리 측의 입장은 언제나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말고’ 하는 식이다. 코톨드 갤러리는 런던 중심가의, 굉장히 찾기 쉬운 위치에 있다. 스트랜드에 있는 런던 대학교 킹스 칼리지 바로 옆 건물이 코톨드 갤러리다. 이 갤러리는 서머싯 하우스(Somerset House)라는 큰 저택의 부속 건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코톨드 갤러리의 입구는 서머싯 하우스로 들어가는 문의 한옆에 쪽문처럼 비스듬히 나 있다. 입구에 커다랗게 코톨드 갤러리라고 써 붙여 놓은 것도 아니어서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 나서지 않는 한, 오다가다 이 갤러리를 발견하고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래저래 갤러리 측에서는 홍보에 열성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 갤러리는 지금의 분위기, 런던 도심의 섬 같은 고요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 굳이 갤러리의 진가를 열심히 알리려 들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혼자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코톨드 갤러리는 어떻게 이 많은 인상파 걸작들을 소장하게 된 것일까? 코톨드 갤러리에 소장된 인상파 걸작의 대부분은 런던의 직물업자인 새뮤얼 코톨드(Samuel Courtauld, 1876-1947)가 개인적으로 모은 작품들이다. 새뮤얼 코톨드는 귀족도 아니고 대단한 식자층도 아니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에 한창 붐을 이루던 영국의 섬유산업을 통해 대단한 부를 거머쥔 재력가였다.

그런데 이 부자 아저씨가 1917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파리 인상파 화가전을 보고 소위 ‘필’이 꽂히고 말았던 것이다. 1917년이면 인상파가 처음 파리 화단에 등장한 지 50년이 좀 지났을 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상파 화가들은 주류 평단에서 ‘이상한 화가들’ 취급을 받고 있었다. 파리의 분위기가 이랬으니 런던에서는 더더욱 인상파 화가들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던 새뮤얼 코톨드는 대번에 이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인상파 작품의 컬렉션을 시작했다. 1922년부터 1929년까지 그는 세잔의 〈큐피드가 있는 정물〉과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르누아르의 〈관람석〉 등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사 모았다. 내셔널 갤러리를 설득해서, 점묘법으로 그린 쇠라의 대작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와 고흐의 〈해바라기〉를 사도록 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 두 작품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장작으로 손꼽히고 있으니 내셔널 갤러리 입장에서는 코톨드에게 감사패라도 줘야 할 듯싶다.

코톨드는 작품을 사 모을 때 전문 평론가나 화상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의견을 물어본 사람은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딸 시드니뿐이었다. 그는 작품을 보고 직관적인 호감이 들면, 일단 작품을 빌려 자신의 집 거실에 걸어 놓고 몇 개월 동안 작품을 감상하고 또 감상했다. 그 결과 작품과 자신 사이에 진정한 교감이 오간다고 판단하면 그 작품을 샀다는 것이다. 가히 진정한 컬렉터의 자세라고 할 만하다. 코톨드가 특별히 좋아했던 화가들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등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20세기 전반까지 그리 큰 명성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니 코톨드의 혜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코톨드는 자신이 애써 모은 컬렉션이라고 해서 자신과 가족만이 이 컬렉션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몇몇 지인들과 힘을 합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학교인 코톨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를 세웠고, 이 학교의 부속 갤러리를 만들고 거기에 소장작들을 기증했다. 여기에다 로버트 위트(Robert Witt), 로저 프라이(Roger Fry), 마틴 콘웨이(Martin Conway) 등 몇몇 컬렉터들의 기증작을 더해서 1932년에 코톨드 갤러리가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코톨드 갤러리는 원래 대영박물관이 있는 동네인 블룸스버리에 위치해 있었지만 1989년 서머싯 하우스의 부속 건물인 현재의 위치로 옮겨 왔다.

만약 20세기의 프랑스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파블로 피카소라면(아마 대부분의 미술사가들이 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20세기의 영국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새뮤얼 코톨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화가도 미술비평가도 아니었지만, 일개 컬렉터의 능력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놀라운 감각과 혜안으로 이 보석 같은 컬렉션을 런던에 남겨 놓았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 중에는 예술가가 많고, 영국 사람들 중에는 예술 후원자가 많지 않았던가. 아마 코톨드 갤러리에 와 본 사람이라면, 그 우아하고 적요한 분위기에서 마네와 모네, 르누아르, 고갱, 고흐, 세잔을 숨죽이고 감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끔 “나 다음 주에 런던에 가서 3박 4일 있을 건데, 어디 어디 구경 가면 돼?”라고 관광 가이드북을 들고 와서 묻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두말하지 않고 가이드북의 ‘코톨드 갤러리’ 페이지를 펼쳐서 크게 동그라미를 치고 별을 세 개 그려 넣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다른 유명한 데는 안 가더라도 여기는 꼭 가 봐. 여기야말로 런던에 숨어 있는 진짜 보석이야. 아마 이 갤러리에 가 보면 런던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깨닫게 될 거야.”

애당초 내가 이 책에서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런던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 속에 숨겨진 영국 역사 이야기들’이었다. 코톨드 갤러리의 대표작들 대다수는 런던과 큰 연관이 없는, 프랑스에서 그려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다. 이 책의 의도와 코톨드 갤러리의 소장작들 사이에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갤러리를 소개하고 싶다.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할 당시, 즉 19세기 후반은 근대에서 막 현대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화실을 벗어나 야외에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던 인상파 화가들의 눈에 ‘모던 시대’의 시작은 쉽사리 감지되었다. 코톨드 갤러리의 인상파 화가 그림에는, 그래서 인상파의 대표적 특징인 빛과 대기의 흐름 외에도 화가들이 발견한 현대의 흔적들이 적잖게 보인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거는 것은 목걸이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목걸이를 건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코톨드 갤러리가 있기 때문에 오래된 도시 런던은 그만큼 더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