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Guggenheim Bilbao Museum, GUGGENHEIM BILBAO MUSEOA

도시 전체를 바꾼 미술관

주소 : Avenida Abandoibarra, 2 48009 Bilbao (34 94 435 90 00)
대중교통 : 전차 구겐하임(Guggenheim) 역, 지하철 모유아(Moyúa) 역
개관 시간 : 오전 10시-오후 8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7-8월에는 월요일도 개관), 1월 1일, 12월 25일
입장료 : 13유로 (65세 이상과 26세 미만 학생 7.5유로, 어린이 무료)
홈페이지 : www.guggenheim-bilbao.es

빌바오(Bilbao)는 어쩌면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보다는 훨씬 덜 알려진 도시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 만(프랑스 남서부 해안과 스페인 북부 해안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만)의 오래된 도시인 이곳은, 아무래도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처럼 스페인을 방문할 때 필수적으로 들르게 되는 위치도 아니고 다른 관광지와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무래도 찾아가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가 이곳을 찾았던 이유는 갈리시아의 산티아고까지 가는 순례길의 시작점으로 빌바오를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빌바오라는 도시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은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사회시간이었는데, 철강 산업이 발달한 세계의 도시 중 하나로(당시의 교과서가) 이곳을 꼽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그냥 그렇다고 하니 암기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나오는 설명이라 봤자, 빌바오 근처에서 철광석이 생산되기도 하지만 석탄도 나오기 때문에 철강과 조선 산업이 발전했다는 정도였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빌바오라는 도시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 때문이다. 신문의 문화면에는 낙후된 공업 도시를 탈바꿈시킨 미술관이라며 꽤 집중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던 철강, 조선 산업 도시를 낙후된 공업 도시로 만들어 버린 원인이 우리나라의 철강과 조선 산업이 앞섰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때 알았다. 스페인어가 전공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학교에서 스페인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구겐하임, 구겐하임’ 할 때마다 시큰둥하게 ‘미술관이 도시를 바꿔봤자 얼마나 바꾸겠어?’ 하는 생각으로 몇 번의 여행 중에도 이곳을 여행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다 스페인 북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로 마음먹고 비행기표를 알아보다 빌바오에서 출발하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가 동네 뒷산 가실 때 쓰시던 작은 배낭에 한 달 동안 쓸 짐을 억지로 구겨 넣고(그래 봐야 침낭을 넣고 나면 자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짐이랄 것도 없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자기 짐을 다 메고 걸어야 하니 배낭은 작을수록 좋다), 빌바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빌바오의 첫 느낌은 그동안 봤던 스페인 북부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촘촘하게 붙어 있는 4-5층짜리 건물들, 스페인의 남부와는 달리 창이 크고 작은 베란다가 많이 달려 있으며 길거리의 느낌은 고풍스러웠다.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고, 포도주도 훌륭했다. 대성당이 중심이 되는 구시가지에는 한두 군데의 광장이 있고, 저녁 7시 이후에는 바글바글 모여서 저녁 식사 전 술 한잔을 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 등이 다른 스페인 중소 도시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는 긴 여정 전에 시차 적응도 해야 하니 이틀 동안 묵으면서 도시 구경을 하기로 했다. 시에스타(점심을 먹은 뒤 잠시 낮잠 자는 시간) 시간이 끝나갈 무렵, 무릎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작은 숙소에서 방을 구하고, 짐이랄 것도 없는 짐을 풀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빌바오를 지나는 강은 네르비온 강인데, 이 강가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빌바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바다가 가깝고 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교역이 발달했다. 15-16세기에 스페인과 아메리카 식민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빌바오도 같이 성장했다. 도시를 찾는 사람이 늘었고 대성당이 건축됐다. 16세기 말-17세기에는 도시의 성장이 멈추는 듯했지만 19세기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석탄과 철광석 광산이 활발하게 개발되면서 철강, 조선 산업이 도시 경제를 다시 살려 낸 것이다. 더불어 철도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네르비온 강 양쪽으로 팽창했고 인구도 급증했다. 그리하여 20세기 초의 빌바오는 바스코 지역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주춤했던 도시 경제는 전쟁 이후에 다시 회복되었지만 1970-1980년대에는 철강 산업이 급속히 쇠퇴하면서 거대해진 도시가 오히려 부작용만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도시 재개발이 시작되었고 공항, 지하철, 다리 등이 새로 디자인되었다. 이와 더불어 진행된 프로젝트가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빌바오 시 정부와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만나서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 이어 새로운 구겐하임 미술관을 빌바오에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의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건축가로 결정되었고, 1997년 스페인 국왕 부처의 참석 하에 미술관이 개관했다.

빌바오에서 꼭 해 봐야 할 것은 핀초(pintxo) 먹기다. 보통 마드리드나 안달루시아 등의 지역에서는 바에서 술을 시키면 타파(tapa)를 약간 준다. 우리나라로 치면 뻥튀기 같은 기본 안주랄까. 감자튀김이나 올리브, 혹은 토르티야 한 조각, 감자샐러드 약간, 이런 식으로 술 한 잔에 곁들일 만한 음식을 주는데, 이것을 타파라고 한다. 혹은 술과 함께 음식을 시킬 때 레스토랑에서 한 사람 앞에 한 요리를 시키듯 하지 않고 조그만 접시에 나오는 음식인 타파를 시키기도 한다. 타파란, 손바닥을 펼친 정도 크기의 접시다. 그런데 빌바오에서 유명한 것은 핀초다. 나무 꼬치에 꽂거나 빵 위에 음식을 얹고 이쑤시개를 꽂은 타파라고 하면 될까?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좋다. 생김새도 예뻐서 진열된 것을 보기만 해도 한두 가지는 꼭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매년 핀초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구시가지에서 핀초와 와인을 사 먹고, 대성당을 구경하고, 산책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핀초를 파는 바
핀초를 파는 바

다음 날 숙소 근처 카페에서 핫초콜릿과 추로스로 아침을 먹고,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했다. 강가에 지어진 전차 길은 깔끔했고, 전차가 지나가는 길은 모두 공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네르비온 강가는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이윽고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 나를 반겨 준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강아지, 제프 쿤스의 〈퍼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