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술 경매의 중심, 홍콩

아시아 미술 경매의 중심, 홍콩

최근 몇 년간 중국 아티스트들의 두드러진 활약과 미술 경매에서의 놀라운 기록들은 미술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홍콩은 뉴욕, 런던에 이은 세계 3대 미술 경매의 중심지다. 아트 컬렉터가 아닌 일반인들에게조차 이제는 미술 경매가 자연스레 화젯거리가 되었다. 또한 홍콩의 상업적인 환경과 이미지 덕분에 미술품의 상품화는 더욱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때문에 일반인들도 경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과 스케줄이 허락한다면 홍콩의 유명한 경매 현장을 관람하거나, 프리뷰 전시를 방문해 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이다.

홍콩의 미술 경매를 이야기하기 전에 홍콩의 예술계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홍콩 예술계를 이끄는 데 있어 홍콩의 미술관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비단 홍콩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소위 '예술'이라는 것은 얼마나 비싸게 팔리느냐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었고, 이러한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곳은 당연히 옥션이다. 전 세계의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늘 재정에 허덕이고, 입장객 수에 좌우되는 상황이다. 특히나 현대미술을 논할 때 미술관의 영향력이란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미술관은 공식적으로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옥션에서 경매되는 작품을 소개할 때 흔히 붙는 설명이 바로 이 작품은 어느 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미술관이 권위 있고 명성이 있는 경우에는 작품의 가치가 몇 배는 더 오른다. 즉 이전에 누가 소장했던 작품이냐가 작품의 가치와 가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이었던 경우가 바로 2007년 가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열린 일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의 회고전이었다. 이때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확보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 그를 대표하는 각각의 갤러리들을 접촉했다. 로스앤젤레스의 블럼 앤 포(Blum & Poe) 갤러리,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 그리고 파리의 에마뉘엘 페로탱 갤러리(Emmanuel Perrotin)가 대표적이다. 이 갤러리들은 여섯 자리 숫자의 지원금을 기부했고, 오프닝 저녁 전시의 표도 대량 구입했다. 또한 블럼 앤 포 갤러리는 일본으로부터 〈Oval Buddha〉를 공수하기 위해 항공료를 지불했는데, 전시 후에 이 작품을 판매할 예정으로 이 거대한 조각을 가져온 것이다.

미술관 측은 여러 비판과 논쟁 속에서 전시장 안에 루이 비통의 임시 샵을 열고, 무라카미 다카시와 루이 비통이 합작하여 만든 콜라보레이션 가방을 판매했는데, 놀랍게도 매일 10개씩 팔렸다고 전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미술관이 경제적으로 도저히 유명 딜러나 컬렉터들과 맞설 수 없다. 뉴욕의 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같은 인기 있고 유명한 미술관조차 평균 한 달 관람객 수가 저조할 때는 150,000명이다. 그리고 무라카미급의 블록버스터 전시의 경우가 420,000명이라고 한다. 그러니 유명하고 힘 있는 갤러리가 미술관을 이용하고, 미술관은 또 이런 갤러리들의 경쟁력을 이용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2010년 가을에 열린 크리스티 이브닝 옥션 모습
2010년 가을에 열린 크리스티 이브닝 옥션 모습

미술관과 박물관이 예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예술계에서 가장 실질적인 힘을 과시하는 것은 누구일까? 바로 옥션 하우스다. 2008년 6월, 예술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전해진 놀라운 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영국의 유명한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가 자신의 딜러를 거치지 않고 소더비(Sotheby's)에서 바로 신작을 판매한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명도가 조금이라도 낮은 아티스트였다면 이런 식의 당돌함으로 기존의 갤러리 시스템에 도전하는 행동을 하고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전담 갤러리였던 뉴욕의 가고시안과 런던의 화이트 큐브 갤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소더비의 홍보에 도움까지 주었고, 가고시안의 경우에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도 경매에 참가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미술시장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는 막강한 옥션 회사인 크리스티(Christie's)와 소더비가 있다. 이 뒤를 따르는 옥션은 필립스 드 퓨리 앤 컴퍼니(Phillips de Pury & Company)와 본햄스(Bonhams) 정도일 것이다. 허스트의 결정으로 인해 유통시장(secondary market)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 옥션이 얼마나 막강한지 다시 한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대중매체와도 직결된 부분이다. 그 어떤 딜러나 미술관도 옥션에서 받는 미디어의 조명에 비할 수 없다. 똑같은 그림이라도 딜러의 갤러리에 걸려 있거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보다 옥션에서 얼마에 팔리느냐와 누가 구입했느냐가 중요한 뉴스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브닝 옥션(Evening Auction, 옥션 기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로, 가장 주목 받는 작품들이 경매된다)에서의 작품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고, 일반인들이 평생 꿈도 꿔 보지 못할 그런 거래들이 성사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어마어마한 금액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소더비의 유명한 경매사인 토비어스 메이어(Tobias Meyer)는 미술계 밖의 사람들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예술 작품의 가격을 뉴욕의 고급 아파트와 비유했다. 즉, 아파트가 3천만 달러라면 그 아파트의 거실에 걸릴 마크 로스코의 그림 역시 3천만 달러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가격은 유통시장의 가격이다. 옥션의 전통적인 역할은 이미 누군가의 소유였던 작품을 재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허스트의 결정은 옥션 회사들이 이제 직접 아티스트에게서 작품을 사고팔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옥션에서 예술 작품을 구매하는 것일까? 사실 많은 현대미술 컬렉터들은 실제로 대부분 1차 딜러(primary dealer, 아티스트로부터 작품을 직접 구입하는 사람들로, 주로 갤러리 관계자나 개인 컬렉터들이라고 할 수 있다)로부터 구입한다. 왜냐하면 위험 부담은 더 크지만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2009년부터 더욱 강력하게 불기 시작한 중국의 세력은 미술계에서도 강력하게 느껴졌다. 이는 홍콩에서 매년 거래되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홍콩은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글로벌 미술시장이다. 매년 놀라운 매출액을 기록하는데, 경제가 침체기인 와중에도 2011년 가을 옥션에서 여전히 건실함을 과시했다. 소더비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예상마저 깨고 4억 천 백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가을 옥션 때보다도 높은 기록이었다.

홍콩의 국제적인 옥션사는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스다. 현재 필립스 드 퓨리가 적극적으로 홍콩 지점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아시아 현대미술품의 거래는 크리스티가 50% 이상의 점유율로 우세하다. 크리스티는 경매 기간 이전에 홍콩 컨벤션 센터(Hong Kong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 香港會議展覽中心)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프리뷰를 한다. 대부분의 옥션사들은 이렇게 봄과 가을에 경매를 진행하는데, 경매 직전에 열리는 프리뷰를 위한 행사장 잡기에 여러 경매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에서는 서울옥션과 K옥션이 홍콩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박수근, 김환기 등 한국의 대표 작가들을 비롯하여 안성하, 홍경택 등 젊은 인기 작가들, 그리고 외국의 유명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나 서울옥션은 2009년에 홍콩 법인을 설립하고 크리스티가 장악하고 있는 홍콩 미술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리나라 미술계 입장에서 홍콩은 해외 진출의 첫 관문이다. 홍콩의 미술품 거래 규모는, 연간 40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국내 미술시장의 두 배 가까이 된다고 한다. 또한 홍콩은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조화를 잘 이루어 온 국제 도시답게 아시아 미술품을 서구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한국 작가를 소개하기에도 유리하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성 역시 이곳에서 인정을 받았고, 매년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다.

홍콩이 미술품 거래에 이토록 매력적인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무관세 정책이다. 중국 대륙이 미술품에 34%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반해 홍콩은 수출입 관세가 없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매일매일 등장하는데, 이는 저렴한 임대 공간과 물가 덕분에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자리를 잡아 중국 아티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렇게 제작된 훌륭한 작품들은 홍콩이라는 국제 도시에서 화려하게 진열되어 팔린다. 때문에 아직도 예술 작품들의 실제적인 거래는 홍콩에서 대부분 이루어지고, 중국의 갑부들조차 홍콩에 내려와 중국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홍콩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역시 중요한 해외 옥션 하우스나 갤러리들이 이곳을 기지로 삼는 이유다. 이미 중국에 반환된 홍콩이지만, 아직도 홍콩은 국제적이고 중립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은 도시가 발달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이미지가 결부되어 한 도시와 나라의 정체성이 동일시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홍콩은 중국에 속해 있는 도시이기는 하지만, 정책, 행정,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홍콩은 반환 이후에도 자신들의 이러한 특별한 정체성을 고수하고자 노력해 왔고, 중국도 두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잘 알기에 지금까지도 홍콩은 자유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국제적인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홍콩은 국제 도시답게 인적 인프라도 뛰어나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서울이나 도쿄가 아닌 홍콩을 선택하여 아시아의 기지로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가고시안이나 화이트 큐브 같은 국제적인 갤러리가 홍콩에 사무실을 속속 오픈하고 있다. 홍콩아트페어는 외국의 비엔날레, 아트 출판업, 옥션 등에서 풍부한 경험과 안목을 쌓은 사람들이 조직위원회를 이루고 있어서 더 많은 양질의 인력이 점차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2011년 봄에 열린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프리뷰 전시
2011년 봄에 열린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프리뷰 전시

2011년은 한국의 K옥션이 홍콩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했던 해였다. 비록 서울옥션보다는 늦게 출발했지만, K옥션은 한영욱, 이세현, 홍경택, 이이남, 최영걸, 정해윤, 천성명, 성태진, 손동현 등 국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선보이고, 이우환, 김창열, 전광영 등 국내 대표적인 중진 작가들까지 포함시켜 한국 미술에 대한 뜨거운 붐을 조성하기에 여념이 없다. 홍콩 옥션에서 한국 아티스트들의 인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30세의 젊은 나이였던 홍경택의 대작 〈연필Ⅰ〉이 구매자 수수료를 포함해 추정가(HK$55만~85만)의 10배를 상회하는 HK$648만을 넘어 한화로 대략 7억 7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당시 커다란 사건이었고, 한국 아티스트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30대 작가의 작품이 7억 원대에 거래된 것은 국내 경매에서도 유례가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200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서재Ⅱ〉가 다시 한번 6억여 원에 낙찰되었고, 더불어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점점 더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경매에서 홍콩 아티스트들의 위치는 어떨까? 홍콩 아티스트들의 작품은 아직도 주로 갤러리나 작가를 통해 직접 거래된다. 때문에 홍콩의 컬렉터들조차 갤러리를 통해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거나 작가에게 직접 구입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만큼 아직까지도 홍콩 아티스트에 대한 인지도나 작품의 가치가 저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소더비에서는 2009년에 처음으로 홍콩 컨템퍼러리 아티스트들의 특별 경매를 진행했는데, 이때의 가격 측정은 실제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서 시작되었다. 경매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유통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홍콩 미술은 경매에서 매력 있는 상품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굳이 경매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갤러리나 아티스트 본인에게 직접 구매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열리는 여러 예술 행사 중에 대중에게 공개되거나 일반인을 타깃으로 진행되는 것은 그리 많지는 않다. 1월의 포탄오픈스튜디오, 5월의 아트페어, 그리고 봄과 가을에 진행되는 메이저 옥션사의 경매가 그나마 대중에게 열려 있다. 미술 경매는 매우 폐쇄적이고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는 경매를 하기 전에 경매되는 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하는 프리쇼(pre-show)를 진행한다. 특히 크리스티 봄 옥션의 경우에는 아트페어와 비슷한 시기에 열리고, 역시나 완차이의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되기에 꼭 프리뷰 행사에 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때로는 이런 상업적인 행사가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아시아 현대미술의 경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위 가장 잘나간다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실제 경매도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 실제 경매일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초만원을 이루는데, 구매를 생각하지 않는 경우라면 프리뷰의 날짜와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본다. 미술 작품 외에도 빈티지 시계와 고급 액세서리들도 전시되는데, 일반적인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금은 보석을 감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관람하고 싶다면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은 피하는 것이 좋다.

크리스티 홍콩 사무소
크리스티 홍콩 사무소

크리스티(Christie's)
· 주소 : 22nd Floor, Alexandra House, 18 Chater Road, Central
· 시간 : 오전 9:30~오후 6시 (주말 휴무)
· 홈페이지 : http://www.christies.com/about/locations/hong-kong

소더비(Sotheby's)
· 주소 : 5/F, 1 Pacific Place, 88 Queensway
· 시간 : 오전 9:30~오후 6시 (주말 휴무)
· 홈페이지 : http://www.sothebys.com/en/inside/locations-worldwide/hong-kong/overview.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