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디자인

아이슬란드 디자인

모던 테크놀로지와 자연과의 접촉

생존을 위한 자연환경은 독특한 아이슬란드 문화를 형성했다. 몇 가지의 천연자원을 제외하고 아이슬란드는 그들 사회에 영향을 끼친 외국품에 항상 의존해 왔다. 민주적인 보수주의와 사회의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는 정치적인 일치감으로, 아이슬란드 디자이너들은 기능주의 제품에 초점을 맞추었다.

실제 아이슬란드는 큰 도시의 정착 없이 분산되어 있었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자급자족 농민에서 도시근로자로 바뀌며, 이웃 스칸디나비아국들이 문화유산에 다시 눈을 뜨는 동안 디자인을 통해서 문화 정체성을 찾자는 민족주의 감정으로 활기찼다.

Eyjafjallajökull glacier
Eyjafjallajökull glacier

1883년 몇 명의 장인들은 미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장려하기 위해 전시회에 합류했다. 국민 낭만주의가 그들을 영감시켰지만, 이웃 국가처럼 향수를 공유치 않았고, 오히려 암흑시대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사람이 산업발전에 도전했으나, 변화하는 사회경제는 나중까지 디자인의 주요영향을 막았다.

1900~1930년 구드연 사무엘손(Gudjön Samuelsson)은 전통 공예기술을 수입나무로 만든 의자 디자인에 부여했는데, 이것은 바이킹예술과 공예의 해석으로 국가고전주의의 단순함과 금욕을 표현했다. 아이슬란드는 국가가 여전히 원시적이며 손대지 않은 문화를 소유한다고 믿던 외국의 선입견에 고통당했다. 두 차례의 전쟁 사이, 진정한 아이슬란드 정체성이 디자인에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첫 세대 디자이너로 요나스 솔문드손(Jonas Solmundsson)이 외국 유학 후 Modern Movement를 소개했을 때였다.

모더니즘 디자인은 아이슬란드 독립의 마지막 투쟁과 맞추어 민족주의의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 부족한 국내자원의 대처로 1900년부터 시멘트, 벽돌, 나무와 철강이 수입되어, 1923년 아이나르 욘손 박물관(Einar Jonsson Museum)은 색칠하지 않은 콘크리트 입방체로 지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이곳의 공예와 디자인은 시선을 끌었고, 코펜하겐과 뮌헨에서 유학한 구드문드르 아이나르손(Gudmundur Einarsson)이 1927년 아이슬란드에서 최초의 세라믹 워크숍을 세웠다.

예술과 인간 환경을 개선하고, 아이슬란드 학생들의 국외유학을 방해한 경제침체를 막기 위해 1939년 응용예술대학(School of Applied Art)이 이곳에 설립되며, 루드빅 구드문드손(Ludvig Gudmundsson)은 디자인이론과 실천을 가르쳤다. 1950년대 동안, 새 세대는 특히 응용예술이 번창한 덴마크와 스웨덴에 유학을 갔다. 그들의 새 영향이 아이슬란드 가구 디자인에 적용, 예를 들어 스바인 차르발(Sveinn Kjarval)은 실용적이고 기술적 지식을 강조하는 덴마크 디자인 전통을 따랐다. 그리고 그의 잔디 농가는 고전적인 스칸디나비아 모습을 가진 아이슬란드 건축의 혼합을 반영한다.

아이슬란드는 국가 재정부족으로 수입이 어려워 소규모의 공장들은 견고하고 의도적으로 단순한 타입의 제품을 생산하고자 세워졌다. 핼기 할그림손(Helgi Hallgrimsson)의 직물로 짠 흔들이 의자(1968), 군나르 마그누손(Gunnar Magnússon)의 Apollo(1967), 아이나르 포울스타인 아스게일손(Einar Porstein Asgeirsson)의 Bucky(1980) 의자 등으로, 이 디자이너들은 아이슬란드 디자인에 현존하는 형태를 찾으려 무언가 새로운 것에 적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양모산업은 10~13세기 동안 가장 중요한 아이슬란드의 유산이었지만, 최근 태피스트리와 의류산업을 향한 텍스타일 방직으로 이동되고 있으며, 젊은 디자이너들은 한정된 스튜디오 제작용으로 프린트 텍스타일에 작업하게 되었다. 아스게두르 부나도티르(Asgerdur Buadottir)는 북구텍스타일 트리엔날레(Nordic Textile Triennale)에서 이름을 얻었다. 금속세공 역시 훌륭한 전통을 소유함은 금·은세공으로 장식된 여성들의 민속 의상 탓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장인들도 전통 형태와 기술에서 조각적이고 추상적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옌스 구두욘손(Jens Gudhjonsson) 작품은 재료와 기술의 대가임을 반영한다.

오늘날 아이슬란드는 최초의 스튜디오 글라스 디자이너, 시구른 올러프 아이날스도티르(Sigrun Olöf Einarsdottir)를 배출, 공예와 디자인의 중요한 양면을 제시하고 있다. 젊고 창작력 있는 이들은 산업체들과 협력하여 국제망을 확립하고자 그들에게 부여된 자연과 국가유산을 이용하고 있다.

1944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후, 아이슬란드 정체성은 시인을 숭배하고 책을 중요시하는 국가로서, 특히 그래픽 디자인에 나타났다. 그러나 1990년도에 이르러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단순한 형태와 대담한 색채를 사용하여 rough-and-ready 양식을 계속했다. 아마도 초보적인 디자인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제한된 자원으로 이웃 국가와 달리 세련된 제품을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개인주의 전통을 지키며, 이곳 디자이너들은 형태, 기능, 혹은 재료에 독창적인 특수품 해결을 위해 외국 산업체를 찾고 있다. 아이슬란드 현대 디자인의 매력은 작으면서도 역동적인 국토의 독특한 지리조건을 반영시키면서, 모던 테크놀로지에 대한 신념과 자연과의 원초적인 접촉으로 상반된다.

대표 디자이너

구드연 사무엘손(Gudjón Samúelsson)
군나르 마그누손(Gunnar Magnús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