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

자동차 마니아의 드림카

람보르기니

LAMBORGHINI
요약 테이블
국가 유럽>이탈리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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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라리 타도!’를 외치는 이탈리아 슈퍼카의 양대 산맥
  2. 미래에서 온 로봇, 가야르도
  3. 트랙터 재벌이 만든 슈퍼카
  4. 거리 마비시키는 ‘존재감’ 가야르도
람보르기니 엠블럼
람보르기니 엠블럼

‘페라리 타도!’를 외치는 이탈리아 슈퍼카의 양대 산맥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의 양대 산맥인 람보르기니는 종종 페라리와 비교된다.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나드는 슈퍼카 시장의 라이벌이지만, 타보면 차이를 확 느낄 수 있다. 수치로 성능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성능의 우위가 아니라 유전자가 다를 뿐이다.

길거리에 나오면 두 차량 모두 도로를 마비시킨다. 눈길을 사로잡아서다. 워낙 독특하게 디자인된 데다가 엔진 굉음이 장난이 아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릴 때 쏟아지는 시선과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진다.

1970년대 ‘슈퍼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람보르기니에는 날카로움과 여유로움의 상극이 존재한다. 엔진의 굉음은 페라리보다 한 수 위다. 디자인 존재감도 너무 뚜렷하다. 도어 역시 가위질하듯 위로 빗겨 열린다. 땅바닥에 납작 붙은 차체는 수려한 자태를 뽑낸다.

람보르기니는 운전자가 조금만 딴 짓을 해도 신경질을 부린다. 뻥 뚫린 도로에서는 마치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여유로운 질주를 허용한다. 하지만 도로 상태가 조금만 나쁘면 패닉이다. 작은 요철을 밟은 충격도 거의 그대로 머리부터 다리까지 전달한다. 아파트 둔덕에 바닥이 긁히기 다반사다. 페라리보다 람보르기니가 더 운전하기 까다롭다는 것은 두 차를 모두 타본 팬들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포인트다. (두 차를 모두 운전해봤다.)

반면 페라리는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을 추구한다. 디자인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여유롭진 않다.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온 정신을 잡아 뺀다. 특히 레이싱에 익숙한 승부사 기질이 번뜩인다. 서킷을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기술로 똘똘 뭉쳤다. 실내는 고급스럽고 무척 편안하다. 장거리 투어용인 스카글리에티를 빼면 노면의 충격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대신 도로와 바퀴 사이에 껌을 붙여 놓은 듯 제대로 달라붙는 맛은 일품이다.

컬러도 너무 다르다. 페라리는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레이싱을 대표했던 붉은색이 대부분이다. 당시 서킷에서 경쟁하던 독일은 실버, 영국은 그린, 프랑스는 블루였다. 후발주자인 람보르기니의 컬러는 노랑부터 주황, 초록, 검정까지 톡톡 튄다. 자체 조사 결과, 고객들이 람보르기니를 고른 첫 번째 이유는 디자인에 있다고 한다.

가위질하듯 도어가 위로 빗겨 올라가는 무르시엘라고
가위질하듯 도어가 위로 빗겨 올라가는 무르시엘라고

엔진 소리에서도 차이가 난다. 페라리는 마치 레이싱카와 같은 소리를 낸다. 엠블럼의 경주마처럼 경쾌한 느낌이다. 고회전일 때는 소프라노처럼 끝이 날카로워 고막을 파고든다. 반면 람보르기니의 음색은 두텁고 묵직하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소프라노보다 바리톤 고음에 가깝다. 엠블럼 속 투우소가 마지막을 향해 돌진하며 울부짖는 듯하다.

두 차 모두 자동차 영역을 넘어서 일종의 고급 수집품이다. 저렴한 모델이 2억 원대부터 6억 원을 넘는 것도 있다. 유지비도 월 수백만 원에 달한다. 그래서인지 두 차량의 구매 고객들은 연간 평균 현금 소득만 50만 달러(약 5억 5,000만 원)를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수억 원 연봉의 고소득자에게도 이들 차량은 꿈인 셈이다.

2000년대 들어 공통분모가 생겼다. 요즘은 두 차 모두 쉽게 운전할 수 있게 변신 중이다. ‘슈퍼카는 운전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지닌 슈퍼 부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다. 편하고 기분 좋은 주행을 위해 전자장비를 대거 장착했다.

미래에서 온 로봇, 가야르도

람보르기니 한국 공식 임포터인 ‘람보르기니 서울’은 2013년 8월 6일 놀라운 무기(?)를 선보였다. 슈퍼카 가야르도 가운데 가장 비싼 장비로 무장한 ‘LP570-4 슈퍼레제라 에디지오네 테크니카’가 바로 그것이다. 무슨 이름이 이렇게 어렵냐고? 그렇다고 이름을 끝까지 외울 필요는 없다. ‘가야르도’만 알면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대형 뒷날개(리어윙)와 고열에도 견디는 카본-세라믹 기술이 적용된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둘 다 원재료만 수백만 원 이상 하는 최경량 소재다. 모두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이 차는 본인만의 컬러나 소재를 택할 수 있다. 차량 곳곳에 자신의 이름도 새길 수 있다.

거대한 리어윙은 폼으로 단 게 아니다. 기능적으로 중요하다. 자동차는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이 넘으면 부력이 발생한다. 무슨 얘기냐고? 비행기처럼 날아가려는 힘이 생긴다는 말이다. 도로에서 차가 뜨지 않고 접지력을 유지하면서 달리려면 거꾸로 위에서 아래로 차체를 눌러주는 ‘다운 포스’가 발생해야 한다. 고속에서 이런 힘을 만들어주는 게 리어윙의 역할이다. 람보르기니는 살짝만 밟아도 시속 250킬로미터 이상을 가볍게 넘긴다.

이 차에는 5.2L V형 10기통 엔진이 달려 있다. 최고 출력 570마력각주1) 의 폭발적인 성능을 낸다. 시동을 걸면 처음부터 묵직한 바리톤 사운드를 들려준다. 6단 수동겸용 자동변속기에 바퀴 넓이가 어른 손으로 두 뼘은 되는 이탈리아 피렐리의 고성능 타이어와 맞물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불과 3.4초가 걸린다. 최고 시속은 325킬로미터가 나온다. 연비는 1리터당 5킬로미터 수준이다. 서킷에서 급가속을 계속하면 2~3킬로미터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슈퍼카는 연비보다 더 빨리 가속하는 데 중점을 둔다.

‘람보르기니 서울’ 이동훈 사장은 “가야르도는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모델”이라며 “에디지오네 테크니카는 돋보이는 디자인에 서킷 레이싱 기술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판매 가격은 3억 원대 후반이다.

트랙터 재벌이 만든 슈퍼카

람보르기니는 무모하리만큼 페라리를 의식했던 치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와 얽힌 창업 일화를 들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페루치오는 1916년 이탈리아 북부 기계공업 도시인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일이 황소자리라 엠블럼에 황소를 그려 넣었다. 람보르기니 슈퍼카의 이름도 전설적인 투우사의 자존심을 짓밟은 싸움소에서 따왔다.

그는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유명한 볼로냐 공대를 졸업한 뒤 2차 세계대전 때 공군에서 기술자로 근무했다. 전쟁이 끝나고 페루치오는 고향에 돌아와 버려진 영국군 트럭을 개조해 농사용 트랙터를 만들었다. 이 사업이 대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최대의 트랙터 메이커가 됐다. 1960년엔 히터와 에어컨까지 제조하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속도광이었던 페루치오는 페라리부터 재규어, 벤츠, 마세라티 스포츠카를 여러 대 소유했다. 하지만 어떤 차도 만족하지 못했다. 성능은 좋아도 클러치에서 나는 소음이 문제라는 식이었다. 특히 클러치가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페라리 250GT에 불만이 많았다. 차를 뜯어봤더니 클러치는 그의 트랙터에 납품하는 회사 제품이었다. 얼마 뒤 페루치오는 페라리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를 만나 클러치 문제를 이야기했다. 한 성격 했던 엔초 페라리는 발끈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불평하지 말고 트랙터나 모시지”라며 망신을 줬다.

화가 단단히 난 페루치오는 직접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람보르기니의 시작은 이런 오기에서 비롯됐다.

1963년 5월 트랙터 회사가 있는 산타 아가타에서 자동차 회사 ‘람보르기니’가 문을 열었다. 페라리의 본사 마라넬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화끈한 외모와 성격답게 최고만 고집했다. 공장도 최첨단으로 짓고 ‘타도! 페라리’를 목표로 내세웠다.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페라리보다 크고 좋아야 했다. 배기량각주2) 은 당연히 더 컸다. 페라리가 실린더마다 밸브가 두 개면, 람보르기니는 네 개씩 달았다. 페라리의 변속기가 4단이면, 람보르기니는 5단으로 치고 나갔다.

1964년 제네바 오토쇼에 최초의 람보르기니 350GT가 선을 보였다. 무게를 줄여 속도를 더 내기 위해 속을 비운 강철 뼈대에 알루미늄 합금 껍데기를 씌웠다. 람보르기니만의 특허인 ‘슈퍼레제라(슈퍼라이트)’ 공법이었다. 차 무게가 1050킬로그램에 불과했다. 엔진은 V12각주3) 3464cc 270마력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를 달았다.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을 6초대에 끊고, 최고 시속은 244킬로미터를 냈다. 이때만 해도 외관 디자인이 유별나지 않았다.

1964년, 제네바 오토쇼에서 처음 선보인 최초의 람보르기니 350GT
1964년, 제네바 오토쇼에서 처음 선보인 최초의 람보르기니 350GT

1966년에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전설의 스포츠카 미우라가 나왔다. 서킷 경주차에나 쓰던 미드십각주4) (엔진을 좌석 뒤에 얹는 구조)을 양산차로 옮긴 첫 시도였다. 실내에 굉음의 엔진음이 살아 있는 것처럼 들리면서 막강한 주행 능력이 더해졌다. 미우라 이후 페라리를 포함한 수많은 스포츠카에 미드십이 도입됐다.

‘람보르기니=슈퍼카’를 각인시켜준 것은 1974년 선보인 ‘쿤타쉬’다. 한국에서는 ‘카운타크’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더 알려져 있다. 쿤타쉬는 이탈리아 사투리로 젊은 한량들이 절세 미녀를 발견했을 때 내지르는 감탄사다. 이탈리아 자동차 전문 업체 베르토네의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이 차는 흡사 변신로봇처럼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가위처럼 빗겨 열리는 도어는 람보르기니의 상징이 됐다.

람보르기니는 자동차광들에게 유명해졌지만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트랙터 사업 부진과 석유 파동이 겹치면서 1972년 페루치오는 자동차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후 람보르기니는 파산해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1987년 크라이슬러 회장 리 아이어코카가 람보르기니를 인수해 쿤타쉬 후속으로 뒷바퀴 굴림의 디아블로 개발에 나섰다. 이번 디자인의 밑바탕도 간디니였다. 크라이슬러는 람보르기니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 공기역학 기술을 접목했다.

1990년 드디어 디아블로가 베일을 벗었다. V12 5.7L 499마력 엔진을 얹고 정지 상태에서부터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4초대에 끊었다. 최고 시속은 325킬로미터가 넘었다. 가격은 무려 24만 달러였다. 디아블로는 배기량을 6.0리터까지 키워 2001년까지 생산됐다.

거리 마비시키는 ‘존재감’ 가야르도

람보르기니는 1997년 독일 아우디의 품에 안기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98년 424대 판매에서 이듬해 1,000대를 돌파(1,305대)했다. 2006년부터 2,000대를 넘겼고 지금까지 연간 3,000대 조금 못 미치는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페라리의 연간 판매는 6,000대 정도다.

아우디의 첫 람보르기니인 ‘무르시엘라고’는 가위 도어로 유명해졌다. 스페인어로 ‘박쥐’라는 뜻으로 투우 경기에서 24번이나 칼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 전설의 황소 이름이기도 하다. 12기통 엔진에 네 바퀴 굴림으로 달린 무르시엘라고는 ‘슈퍼카=운전이 까다로와 어깨가 아픈 차’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깼다. 누구나 슈퍼카를 운전할 수 있게 해준 전자장비의 도움이었다.

2003년 나온 가야르도는 무르시엘라고와의 차별을 위해 가위 도어는 달지 않았지만 디자인은 더 혁신적이었다. 5.2L V10 엔진을 달고 550~570마력을 냈다. 손쉬운 운전을 위한 편의장비를 많이 갖추면서 ‘나도 타보고 싶은 슈퍼카’로 저변을 넓혔다.

2011년에는 현존하는 람보르기니 최강 모델인 이벤타도르 LP700-4가 출시됐다. 람보르기니는 모델명에서 출력과 굴림 방식을 알 수 있다. 앞의 700은 700마력, 뒤의 4는 네 바퀴 굴림을 뜻한다. 무르시엘라고 후속으로 가위 도어 디자인을 전수받았다. 6.5L V12 엔진은 최고시속 350킬로미터를 낸다.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2.9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 등으로 무장해 무게를 소형차 수준인 1,572킬로그램까지 낮췄다. 가벼운데다 700마력을 내니 이 차의 주행 성능은 상상에 맡겨야 한다. 가격은 6억 원대다.

여러 번 기회가 생겨 가야르도 LP560-4를 타봤다. 우선 몸이 차 시트에 쏙 파묻혔다. 도어가 두껍고, 차체는 뒤로 갈수록 넓어져 옆과 뒤 시야가 딱히 좋은 편이 아니었다. 주차할 때는 차폭 가늠이 쉽지 않아 특히 주의를 요했다. 람보르기니를 타는 것은 대낮에 벌거벗고 뛰는 것과 비슷하다. 주위의 시선과 관심이 순식간에 집중된다. 그래서 이 차는 보일 듯 말듯 ‘쌩’ 달려야 한다. 운전은 까다롭지 않지만 핸들은 묵직했다. 정체를 만나면 거의 고문에 가까운 고통이 뒤따랐다. 거센 엔진 힘을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급가속, 급제동, 급회전에 가야르도는 마치 분신처럼 따랐다. 가야르도에는 아우디의 알루미늄 섀시 기술이 스며들어 있었다. 평소에는 앞뒤 구동력 비율을 3대7로 나누지만, 도로 상황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꾼다. 브레이크는 무척 민감하고 무거웠다. 두 시간 정도 운전하면 거친 운동을 전력으로 한 느낌이 절로 난다. 어깨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반나절 신나게 달려보는 것은 짜릿하지만 매일 탄다면 그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한 달 이내에 무릎이나 허리가 절단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람보르기니의 최강 모델 이벤타도르 LP700-4
현존하는 람보르기니의 최강 모델 이벤타도르 LP7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