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 아홉산숲

대나무의 역설

부산 기장 아홉산숲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미동마을 뒷산에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숲이 있다. 대도시 근교에 있으면서도 굵고 미끈한 소나무와 참나무 거목들이 곳곳에 서 있고, 조림한 삼나무, 편백나무, 대나무가 이룬 숲 지붕이 잘 닦인 임도를 뒤덮고 있다. 남평문씨의 일파인 미동문씨 집안에서 9대에 걸쳐 300여 년 동안 관리해온 덕분에 이 숲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참화 그리고 땔감을 구하려던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고 빗겨날 수 있었다.

5월 중순이면 아홉산숲은 층층나무 꽃이 흐드러진 아래로 맹종죽과 왕대나무에서 죽순이 한창 돋아나 생기가 산을 휘감는다. 9대째 산주이자 ‘아홉산숲 생명공동체’ 대표인 문백섭 씨가 사는 ‘관미헌’이라는 편액이 붙은 집 마당엔 약 1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산주의 할머니가 시집올 때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마당엔 마디가 거북 등껍질 모양인 대나무 구갑죽이 심겨 있다.

서울 남산보다 조금 높은 아홉산(해발 360미터) 아래 약 50만 제곱미터에 걸쳐 있는 아홉산숲에서는 아름드리 거목을 쉽게 만난다. 부산과 울산에 출퇴근할 수 있는 근교에 자리 잡았으면서도 여느 도시 주변 야산과 구별되는 모습이다. 울진 금강송 모습을 빼닮은 200~300년생 소나무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덕분이다. 정우규 박사(울산 생활과학고 교사 · 울산 생명의 숲 공동대표)는 “그대로 내버려뒀으면 소나무 대신 참나무나 서어나무가 서 있을 자리다. 아홉산숲은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오랜 기간 가장 모범적으로 가꾼 보육림의 본보기이다”라고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땔감 등으로 사람이 이용하면 좋은 것부터 사라진다. 좋은 형질을 지닌 나무는 땔감으로도 쓰기 좋다. 그래서 꼬불꼬불한 소나무 등 열등한 형질의 나무만 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 박사의 말에 따르면, 아홉산숲은 열등인자를 솎아내고 토양 유기물 층을 꾸준히 유지해온 결과 임목 육종에 필수적인 훌륭한 유전자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가슴 높이 직경이 70센티미터에 이르는 대형 상수리나무도 그런 예이다. 인가 근처에서 이렇게 전봇대처럼 곧고 상처 하나 없는 참나무 거목은 보기 힘들다. 간혹 사찰 주변에서 대형 참나무를 볼 수 있지만 도토리를 얻기 위해 메로 친 부위가 예외 없이 감염돼 혹이 나와 있다.

아홉산숲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 외에도 편백나무, 삼나무, 맹종죽, 왕대, 서어나무가 무리지어 자란다. 정 박사가 2005년 발표한 정밀조사에서는 주왕산국립공원과 비슷한 529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950년대에 이미 우거진 숲을 관리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임도 위로 대나무와 히말라야시다 등 거목이 터널을 이뤄, 숲길을 걸으며 생태체험을 하기에 제격이다.

남평문씨 일파가 미동마을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400여 년 전, 이들은 뒷산을 정성껏 가꾸며 벌채를 하지 않고 이용했다. 이 전통이 대대로 이어져 오늘의 아홉산숲을 이뤘다. 9대 산주 문백섭 대표는 “어릴 때 숲은 지금보다 덜 울창했고 소나무가 많았으며 수박, 과수, 뽕나무도 길렀다. 지난 100년 동안 부친과 조부가 체계적인 조림의 틀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울창해진 아홉산숲은 역설적으로 ‘관리 부재’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 숲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그런 징후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대나무가 세력을 너무 뻗쳐 소나무 등 다른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성장속도가 빠르고 햇빛 경쟁에서 압도적인 대나무가 땅속 줄기를 확장해나가면 어떤 나무도 견디지 못한다. 과거엔 해마다 대나무를 수확해 김발 재료 등으로 판매하고 얻은 수입으로 숲을 관리했지만 요즘엔 “정월대보름 행사 때 달집 만드느라 몇 대 나가는 게 수요의 전부”이다. 숲에서 나오는 소득은 거의 없지만 해마다 최소한 수천만 원이 유지관리에 들어간다. 윤석 울산 ‘생명의 숲’ 사무국장은 “숲 가꾸기 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밀식한 나무들이 세력을 잃고 질병에 걸리거나 대나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나무는 조선 중종 때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장군의 특산물로 기록될 만큼 이 지역의 대표적 식물이다. 왕대, 솜대, 오죽은 옛날부터 심었고, 맹종죽과 구갑죽은 18세기 중국에서 들여왔다. 아홉산숲에는 다섯 가지 대나무가 있는데 죽순 채취용인 맹종죽의 분포가 가장 넓다. 맹종죽은 가슴 높이의 지름이 최고 20센티미터에 이르며 키도 10~20미터인 큰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땅속으로 줄기를 뻗으면서 마디에서 싹인 죽순을 내 영역을 넓혀간다. 영양상태가 좋을수록 많은 죽순을 낸다. 생장속도가 빨라 하루에 1미터를 자라는 것도 있다. 1헥타르당 1년에 늘어나는 맹종죽의 생체량은 5~22세제곱미터에 이른다. 그만큼 공기 속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고정하는 능력이 뛰어나므로 기후변화를 막는 수종으로 주목되고 있다.

과거 대나무는 소나무 다음으로 널리 쓰여 생활용품이나 공예품 재료로 유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플라스틱이 널리 보급되면서 수요가 급격히 줄어 대나무의 용도는 죽순, 숯, 대통 밥, 술, 죽세공품 등으로 한정됐다. 이 때문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병충해가 창궐하는 등 쇠퇴하고 있다. 하지만 아홉산숲에선 대나무가 너무 번성해 문제다. 여기엔 아홉산숲이 상수원보호구역과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관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문 대표는 “대나무를 베었다고 검찰에서 조사받은 적도 있다. 연간 벨 수 있는 한도가 편백나무는 2.5그루, 소나무는 0.5그루인 상황에서 숲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아홉산숲의 임도
아홉산숲의 임도

아홉산숲은 환경보전 등 공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사유림이라는 이유로 최근까지도 숲 가꾸기 등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1999년엔 기장군이 이 숲에 테마 임도를 낸 뒤 산악자전거 동호인과 등산객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들어 산주가 울타리를 쳐 임도를 폐쇄하는 등 지방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도 훼손을 우려해 아홉산숲은 일부 단체를 제외하고 일반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문 대표는 “이 숲이 다른 숲을 보전하는 본보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숲의 가치를 인정해 크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는 수목원 형태로 운영됐으면 좋겠다”며 “지금까지 300년 이상 보전해왔는데 적어도 앞으로 그 정도는 이 숲이 유지돼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되물었다.

과거 미동리는 40여 가구가 사는 꽤 큰 마을이었다. 나무를 땔감으로 때는 시절이었지만 보통 때는 엄격하게 벌채를 통제했다. 하지만 해마다 가을이 오면 골짜기를 정해 돌아가며 가지치기를 허용했다. 가장 밑가지에서 1미터가량을 쳐내도록 한 것이다. 이 작업에 어느 동네에서 몇 명이 참가했는지 등을 기록한 자료는 현재 동아대 사학과가 보관하고 있다. 비료 확보는 언제나 큰일이었다. 축산 분뇨만으론 모자라 지나가던 분뇨수거 차를 세워 대밭과 솔밭에 뿌리게 하기도 했다. 번화한 동래군 온천장 부근의 식당에서 음식찌꺼기를 수거해 오기도 했다고 문백섭 대표는 회고한다.

사람이 숲을 지킨 일화도 있고, 숲이 사람을 지킨 일화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목재 공출을 피하기 위해 유기를 일부러 숨기려는 척하다 붙잡혀 관심을 돌리기도 했고, 한국전쟁 땐 큰 지주였던 문 대표의 조부가 빨치산에 붙잡혀 가다 숲을 가꾸느라 거칠어진 손 덕분에 “노동하는 동무”라며 풀려난 적도 있었다. 그는 조부가 나무를 심을 때마다 옆에 있던 자신에게 “너도 이 나무 덕을 못 볼 것”이라고 했던 말을 회고했다. 이처럼 당장의 이익을 떠나 먼 미래를 바라보고 숲을 관리한 것이 바로 아홉산숲을 이룬 비결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