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 사자를 위한 변명

식인 사자를 위한 변명

유명한 동아프리카의 식인 사자 이야기를 만화, 동화 또는 영화를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1898년 영국은 빅토리아 호수에서 인도양 해안까지 철도를 놓기 위해 케냐 차보 강에 철교를 건설하고 있었다. 밤마다 사자가 철도 노동자들을 습격했다. 모닥불을 피워놓아도 숙소에 가시 울타리를 둘러보아도 사자의 공격을 막을 수 없어 주로 인도인 노동자 135명이 잡아먹혔다. 겁에 질린 노동자들은 달아났고 공사는 중단됐다. 결국 영국에서 파견된 기술자 존 패터슨(John Patterson)이 2마리의 ‘악마’를 사살한 뒤에야 공사는 재개됐다. 이 유명한 사자 가죽은 당시로선 거액인 5,000달러에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에 팔렸고, 길이 3미터의 갈기 없는 수사자 2마리는 박제로 되살아나 현재도 관람객에게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패터슨의 책은 세계로 팔려나갔고 이를 주제로 한 할리우드 영화도 세 편이 나왔다. 그러나 유명해진 차보 사자의 모습엔 편견과 과장이 적잖게 들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철도 노동자 135명을 잡아먹은 것으로 악명을 떨친 차보 사자의 박제 표본
철도 노동자 135명을 잡아먹은 것으로 악명을 떨친 차보 사자의 박제 표본

차보 사자의 박제를 보관하고 있는 시카고 필드박물관이 그런 신화를 걷어내는 주역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이 박물관의 큐레이터인(앞의 패터슨과 전혀 다른 사람인) 브루스 패터슨(Bruce Patterson) 박사는 2009년 이 식인 사자들이 잡아먹은 사람은 135명이 아니라 35명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차보 사자의 털과 뼈, 그리고 케냐의 초식동물과 당시 살았던 사람의 조직 속 동위원소 분포를 비교했다. 사자가 죽기 전 몇 달 동안 먹은 동물의 동위원소 분포는 사자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자 1마리는 사람 24명을 먹었는데, 식사의 절반은 다른 초식동물이었다. 이 사자는 아래턱 송곳니 부위가 심하게 곪은 상태였다. 다른 한 마리는 11명의 사람을 먹었지만 주 식단은 초식동물이었다. 당시 가뭄과 돌림병 때문에 초원의 먹잇감이 급감하던 상황에서 사자들은 새롭게 몰려든 잡아먹기 손쉬운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지만, 사람을 주식으로 한 것은 부상당한 사자 1마리뿐이었다.

물론 동위원소를 이용한 계산의 오차 때문에 잡아먹은 사람의 수는 최고 75명일 가능성도 있고, 드러난 것은 먹은 사람의 수이지 죽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35명도 적은 수는 아니다. 당시 우간다 철도회사가 추정한 사망자는 28명이었지만 언론은 공명심에 들뜬 기술자 패터슨의 주장을 더 신뢰해 135명이라고 발표했다. 수컷임에도 위엄 있는 갈기가 없는 차보 사자의 모습은 사악한 이미지를 보탰다. 하지만 패터슨 박사는 미국 전역의 동물원 사자의 갈기를 조사해 더운 곳에 사는 사자일수록 갈기가 성글거나 없음을 밝혔다. 차보 지역의 사자는 종종 갈기가 없다.

혹시 식인 사자는 사람 고기에 ‘맛’을 들였던 게 아닐까. 최근의 연구는 잡식동물에 비해 육식동물은 단맛 등 일부 미각을 잃어버렸음을 보여준다. 돌고래와 바다사자는 단맛과 함께 아미노산이 주는 감칠맛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맛을 선호하는 너구리, 곰 등 잡식성 동물과 대조적이다. 육식동물은 맛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미디어는 야생동물의 한 측면만을 과도하게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속 사자는 쉬지 않고 극적인 사냥을 거듭한다. 반면 실제 사자는 하루 평균 21시간을 자면서 휴식을 취한다. 그러고도 비만이 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식인 사자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자의 가장 큰 사인은 사람이나 가축과의 갈등이다. 사자는 지금도 사람을 잡아먹지만, 동시에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 귀한 외화를 가져다준다. 멋진 수사자의 머리로 거실을 장식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사냥꾼이 내는 돈은 야생지역을 보호하고 밀렵을 방지하는 자금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아프리카 사자의 30~50퍼센트가 분포하는 탄자니아는 해마다 사자 500마리와 표범 400마리의 사냥을 허용하고 있다. 사자 1마리를 사냥해 가져가려면 사냥꾼은 3주 동안 하루 3,000달러의 요금과 사자 값 1만 2,000달러를 내야 한다. 1999년부터 2008년 사이 이처럼 사냥해 외국으로 반출한 사자는 9,224마리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절반이 미국으로 향했다.

물론 합법적 사자사냥도 사자 집단의 감소를 불러온다. 수사자를 죽이면 새로 우두머리가 된 수사자는 기존의 새끼를 모두 죽이기 때문이다. 7살 이상 된 ‘늙은’ 사자를 사냥하면 좋겠지만 비싼 요금을 낸 사냥꾼은 젊고 멋진 사자를 쏘길 원한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야생동물의 과장된 한 측면을 ‘소비’하는 동안, 수백만 년간 진화가 이룩한 멋진 최고의 포식자는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

참고문헌

・ Justin D. Yeakel et al., “Cooperation and individuality among man-eating lions”, PNAS, vol. 106, no. 45(10 November 2009), pp. 19040~19043. DOI: 10.1073/pnas.0905309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