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기린의 장례식

새와 기린의 장례식

슬픔은 고양된 정신활동이다. 더욱이 영원한 상실을 뜻하는 죽음은 각별한 슬픔이고 정신적 충격이다. 그래서 죽음을 애도하는 건 가장 인간적인 행동의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동물도 슬퍼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이런 발견은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느냐는 오랜 논란에 다시 불을 지핀다.

놀랍게도 지능이 높은 사회성 동물인 침팬지나 코끼리가 아닌 새에게서 마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은 행동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까마귀과 새의 일종인 서부덤불어치는 동료가 죽으면 시끄럽게 울면서 주검 주변에 모인다. 평소에 이 새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 죽은 동료를 발견한 어치는 이 가지 저 가지로 돌아다니며 시끄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른 어치도 가까이 날아와 따라 울고 조용히 주검을 지켜보기도 한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어치들은 이틀이 지날 때까지 먹이를 먹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치는 동료의 죽음을 슬퍼해 장례식 비슷한 의식을 치르고 금식행동을 한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의 과학자들은 다르게 설명한다. 동료의 죽음을 부른 위험을 널리 알리려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금식행동도 위험에 노출되는 걸 피하려는 동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죽은 동료에게 모여들어 시끄럽게 울며 애도하는 듯한 행동이 관찰된 서부덤불어치
죽은 동료에게 모여들어 시끄럽게 울며 애도하는 듯한 행동이 관찰된 서부덤불어치

그러나 똑똑하기로 유명한 까마귀과 새들은 단지 위험 정보를 나누는 것으로는 설명이 힘든 ‘장례행동’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포플러나무에 날아와 가지에 앉던 까치 1마리가 무슨 이유에선지 포장도로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5분 안에 까치 10여 마리가 모이더니 주검을 둥글게 둘러쌌다. 주검을 쪼거나 하는 행동은 없었다. 까치 1마리는 주검에 다가가 부리로 가볍게 건드리고 떠났다. 나머지 새들은 약 5분간 그 자리에 머물다 일제히 날아갔다. 이들은 특이한 죽음을 맞은 동료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으려 한 것일까, 아니면 의식적인 모임이었을까. 이 관찰은 학술지에 보고된 것이다.

흔히 동물 세계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새끼나 동료가 포식자에게 잡아먹혀도 자연의 섭리일 뿐,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먹고 짝짓기를 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쪽이 유리하다. 말은 다리가 부러져도 포식자를 불러 모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자연의 논리는 비정하다. 그러나 동물 세계에도 예외가 있다. 침팬지나 코끼리 같은 지적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을 한다.

침팬지는 어미와 자식 사이의 유대가 남다르다. 새끼가 죽으면 어미는 포기하지 않고 죽은 새끼를 한동안 안고 다니고 젖을 물리려 한다. 다른 동료도 이 의식에 동참한다. 잠비아의 한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9살짜리 수컷이 죽자 보호구역에 있는 43마리 가운데 30여 마리가 주검 둘레에 모였다. 이들은 주검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앞발가락으로 가볍게 만지거나 냄새를 맡기도 했다.

아프리카코끼리도 동료 코끼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동료가 죽으면 큰 소리를 내고 귀를 펄럭이며 포식자가 접근해 주검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지킨다. 이어 주검을 코, 발, 엄니로 더듬으며 애도의 몸짓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식’은 거의 하루 종일 계속되기도 한다. 이들은 아마도 동료의 죽음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동물일 것이다. 오래전 죽은 코끼리의 뼈를 보면 흥분하고 코와 발, 상아로 건드리며 꼼꼼히 조사한다. 특히 상아는 그 코끼리가 살아 있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는 부위여서인지 오래 자세히 조사한다. 마치 성묘하듯, 친척의 유골을 찾아간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죽음을 느끼는 동물 목록에 기린을 추가해야 할지 모른다.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 및 야생동물연구센터 교수는 기린이 새끼의 죽음을 대하는 특이한 행동 사례를 보고했다. 2010년 케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엄마 기린이 새끼를 낳았다. 안타깝게도 뒷다리가 꼬인 기형으로 태어났다. 새끼는 한 달쯤 지나 자연사했다. 그런데 엄마를 포함해 암컷 기린 18마리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기린들은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흥분한 상태로 새끼를 지켰다. 사흘 뒤 새끼는 다른 동물에 의해 반쯤 먹힌 상태였지만, 엄마는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고 코로 새끼를 뒤적이고 냄새를 맡고 주변을 경계했다. 나흘 동안 엄마 기린이 보인 행동은 강한 가족 간의 유대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2011년 나미비아에서는 젊은 암컷 기린이 죽은 지 3주일 뒤 주검이 있는 곳에 기린 무리가 찾아왔다. 기린들은 주검 앞에 멈춰 물을 마실 때처럼 다리를 넓게 벌리고 주검에 코를 들이대 조사하는 행동을 차례로 했다. 2011년 잠비아에서 연구자가 직접 목격한 젊은 기린 어미는 새끼를 사산했다. 첫 출산인 듯했다. 어미는 수 분 동안 새끼의 냄새를 맡고 뒤적이며 조사하는 동작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이런 행동은 무리에서 떨어져 두 시간 넘게 계속됐다. 기린은 좀처럼 개별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말이다. 기린의 어미와 새끼 사이 유대는 태어난 직후에 형성되며 긴밀함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동물에게 사람과 같은 마음은 없을지 모른다. 애도처럼 보이는 행동은 죽음에서 위험에 관한 정보를 얻고 이를 나누려는 본능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은 이의 뜻을 받들고 넋을 기리는 우리의 행동도, 따지고 보면 죽음에서 얻은 정보를 공유하려는 것 아닐까.

참고문헌

  • ・ T. L. Iglesias et al., “Western scrub-jay funerals: Cacophonous aggregations in response to dead conspecifics”, Animal Behaviour(2012). DOI: 10.1016/j.anbehav.2012.08.007
  • ・ W. R. Miller & R. M. Brigham, “‘Ceremonial’ gathering of black-billed magpies (Pica pica) after the sudden death of a conspecific”, The Murrelet, vol. 69, no. 3(Autumn, 1988), pp. 78~79. http://www.jstor.org/stable/3534036
  • ・ http://video.nationalgeographic.com/video/news/animals-news/zambia-chimpanzee-death-reaction-vin/
  • ・ Karen McComb et al., “African elephants show high levels of interest in the skulls and ivory of their own species”, Biology Letters, vol. 2, no. 1(2006), pp. 26~28.
  • ・ Fred B. Bercovitch, “Giraffe cow reaction to the death of her newborn calf”, African Journal of Ecology(August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