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새, 파랑새

희망의 새,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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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까이에 있는 행복
  2.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꿈
  3. 녹두밭에 앉지 마라

가까이에 있는 행복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는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인 틸틸과 미틸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남매는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는 마법사 할멈의 부탁을 받고 개 · 고양이 · 빛 · 물 · 빵 · 설탕 등의 요정과 함께 상상의 나라, 행복의 정원, 미래의 나라, 추억의 나라 등을 찾아 밤새 헤맨다. 어디에서도 파랑새는 찾지 못한 채 꿈을 깨고 보니 파랑새는 바로 머리맡 새장 속에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동화다. 이후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파랑새는 파랑새목 파랑샛과에 속하는 새로 30센티미터가량의 제법 큰 몸집을 지녔다. 선명한 청록색을 띠는 몸에 머리와 꽁지는 검다. 주로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 여름 철새로 나무의 썩은 구멍이나 딱따구리의 옛 둥지에 깃들어 산다. 5월경에 처음 날아와서는 둥지를 차지하려고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파랑새를 불법승(佛法僧)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삼보조(三寶鳥)라고 부른다. 모두 불교와 관련된 이름을 붙였다.

동양에서도 이 새는 기쁨과 희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노래되어왔다. 푸른빛이 주는 신비함 때문인 듯하다. 신화 전설 속에서 청조(靑鳥)는 서왕모(西王母)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주고 소식을 전해주는 신조(神鳥)로 나온다. 한나라 반고(班固)가 지은 「한무고사(漢武故事)」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7월 7일, 한 무제가 승화전(承華殿)에서 재(齋)를 올렸다. 정오가 되자 갑자기 파랑새 한 마리가 서방으로부터 날아와 승화전에 앉았다. 한 무제가 동방삭에게 묻자 동방삭이 말했다. “이것은 서왕모가 오려는 조짐입니다.‘ 조금 있자 서왕모가 도착했다. 까마귀처럼 생긴 파랑새 두 마리가 서왕모를 곁에서 모시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널리 읽히면서 파랑새는 서왕모의 소식을 알려주는 사자의 의미로 쓰였다.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꿈

1989년 전 새롭게 발굴되어 화제로 불러 모은 『화랑세기(花郞世紀)』에는 「청조가」란 노래가 실려 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박창화가 지은 위서다. 화랑 사다함이 미실을 사랑했는데, 전쟁에 나갔다 돌아와보니 이미 궁중으로 들어가 전군(殿君)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이에 상심한 사다함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가 바로 「청조가」다. 그 내용이 몹시 구슬퍼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이를 외워 전했다고 한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靑鳥靑鳥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彼雲上之靑鳥
어이해 내 콩밭에 머물렀니?
胡爲乎止我豆之田
파랑새야 파랑새야
靑鳥靑鳥
내 콩밭의 파랑새야.
乃我豆田靑鳥
어이해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버렸니?
胡爲乎更飛入雲上去
왔거든 모름지기 가지를 말지
旣來不須去
또 갈 걸 어이해 찾아왔더냐.
又去爲何來
부질없이 눈물만 비오듯 하고
空令人淚雨
애간장 다 녹아 죽게 되었네.
腸爛瘦死盡
내 죽어 무슨 귀신이 될까?
吾死爲何鬼
나는야 죽어서 신병(神兵)이 되리.
吾死爲神兵
전군에게 날아들어 호신(護神)이 되어
飛入殿君護護神
아침마다 저녁마다 전군 부처(夫妻) 보호하여
朝朝暮暮保護殿君夫妻
천년만년 길이길이 스러지지 않게 하리.
萬年千年不長滅

콩밭에 내려와 앉는 파랑새는 대뜸 동학혁명 당시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를 연상시킨다. 파랑새 민요를 염두에 두고 이런 상상을 펼쳐 보였다. 중간의 몇 글자는 원문이 이지러져 판독이 어려운데 문맥으로 추정해서 새겨보았다.

자기 밭에 날아왔던 파랑새가 다시 구름 위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남은 것은 애간장이 다 썩어 문드러지는 그리움과 하염없는 눈물뿐이다. 파랑새는 미실이고, 하늘 위는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궁궐 안이다. 사다함은 그리움을 못 견뎌 죽어가면서도 죽어 호신(護神)이 되어 애인이었던 미실과 그녀의 남편 전군(殿君)을 영원토록 지켜주겠노라고 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천주사(天柱寺)에 가서 사다함의 명복을 빌자 그날 밤 사다함이 미실의 품에 뛰어드는 꿈을 꾸었는데 바로 임신을 해 하종공(夏宗公)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하종공은 모습이 사다함과 아주 비슷했다 한다.

조선시대에 널리 사랑받은 소설 『숙영낭자전』에도 파랑새가 나온다. 세종 때 경상도에 살던 부부가 부처님께 빌어 선군을 얻었다. 선군은 천상 선녀가 화생한 숙영과 부부의 인연을 맺어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은 과거를 보러 서울로 떠나고 부인은 남편이 급제하여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부인은 시부모의 학대와 모함을 못 견뎌 가슴에 칼을 꽂고 자살하고 만다. 사람들이 칼을 뽑으려 해도 뽑히지 않았다. 선군이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와보니 부모는 거짓으로 숙영이 외간 남자의 침입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선군이 가슴에 꽂힌 칼을 뽑자 뽑힌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파랑새가 아내를 죽게 만든 범인을 알려주니 그를 죽이고 숙영을 제사했다. 그러자 숙영이 다시 살아나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다가 선녀의 인도를 받아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이렇게 파랑새는 우리 옛 노래에서도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다만 문헌의 파랑새가 지금 우리가 말하는 파랑새인지는 분명치 않다. 문헌으로 보면 파랑새는 작고 귀여우면서도 귀티 나는 새일 듯한데 실제로는 거칠고 우악스럽기 때문이다. 푸른빛만으로 보면 오히려 유리새 계통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매월당 김시습은 파랑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문청조성유감(聞靑鳥聲有感)」이란 시를 남겼다.

꿈에 부용성서 보허자 노래 듣다가
夢聽步虛芙蓉城
잠 깨니 파랑새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睡罷初聞靑鳥聲
얼키설키 뒤엉킨 살구나무 가지에
間關睍睆紅杏枝
집 모롱이 기운 햇볕 숲을 뚫고 환하도다.
屋頭斜日穿林明
박명한 제 신세를 원망하여 호소하듯
初如怨訴妾薄命
영항(永巷)에서 은혜 입음 가벼움을 탄식하듯.
後似永巷承恩輕
쫓겨난 신하가 상강(湘江) 가를 배회하며
又如放臣逐客在湘南
「이소(離騷)」를 곰곰 읽어 불평한 맘 울먹이듯.
細讀離騷鳴不平
산중의 늙은이가 향기를 맡으려고
山中老人會寧馨
널 인해 꿈을 깨어 뜰 가운데 노니누나.
爲爾夢覺遊中庭
세 개인지 다섯 갠지 풀싹 새로 돋았고
三个五个草芽抽
한 잎인지 두 잎인지 꽃잎은 날리누나.
一片二片花飄零
봄바람아 물렀거라 근심 겨워 못 살겠다
減却春風愁殺人
방주의 새 풀들은 어이 저리 푸르른가.
芳洲之草何靑靑
세월은 새가 날듯 쉴새없이 흘러가니
年光鼎鼎一飛鳥
어지러운 뜬세상을 뉘 능히 멈추리오.
擾擾浮世誰能停
파랑새야 파랑새야
靑鳥靑鳥
저 멀리 곤륜산 꼭대기서 건너온 줄 내 아노니
知爾遠涉崑崙巓
돌아가 서왕모께 말씀을 전해다오
歸來煩語西母前
날 위해 삼천 년 사는 복숭아를 주시라고.
遺我碧桃三千年
내 손수 천 그루 복숭아를 심어서
我欲手栽千樹桃
인간 세상 얽힌 근심 다 녹여버리련다.
銷盡人間愁纏綿
말 마치자 빙빙 돌다 어느새 날아가니
言訖翶翔忽飛去
푸른 하늘 아득하고 구름 안개 걷히었네.
碧天遼闊收雲烟

여기서도 파랑새를 서왕모의 전설과 결부시켰다. 자다가 파랑새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처음으로 파랑새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그 파랑새더러 곤륜산으로 가서 서왕모에게 한 알만 먹으면 삼천 년을 살 수 있다는 반도(蟠桃) 복숭아를 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 복숭아를 심어 인간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다 잊고 신선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파랑새는 내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이 허공으로 훨훨 날아가버리더라는 것이다.

파랑새
파랑새

옛 시조에 나오는 파랑새는 이렇다.

청조야 오도고야 반갑다 님의 소식
약수(弱水) 삼천 리를 네 어이 건너온다
우리 님 만단정회를 네 다 알까 하노라

약수는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 둘레를 감돌아 흐르는 강물이다. 이 강물 위에는 가벼운 새 깃털도 가라앉고 말아 그 이름이 약수다. 이 강물에는 배를 띄워봤자 그대로 가라앉고 만다. 약수를 건너는 방법은 허공으로 날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곳이다. 그 곤륜산으로부터 청조가 애타게 기다리던 임의 소식을 전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날아온다. 너는 내 임의 소식을 잘 알고 있겠지? 나에게 어서 알려주려무나. 전할 길 없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 파랑새에 얹어 노래했다.

그런가 하면 문둥이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은 파랑새에게서 자유를 보았다. 다음은 그의 시 「파랑새」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푸르름은 희망이고 또 슬픔의 빛깔이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을 원 없이 우는 그런 파랑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슬픈 삶에 비추어볼 때 더 슬프고 간절하게 읽힌다.

파랑새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가까운 데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비현실적인 계획이나 꿈을 세워놓고 멀리 있는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인생의 행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늘 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단지 우리의 눈과 귀가 욕심에 사로잡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 빛깔을 보지 못할 뿐이다.

녹두밭에 앉지 마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꽃이 피는데 파랑새가 녹두밭에 앉자 녹두꽃이 땅에 떨어진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녹두 열매를 맺지 못할 테고 녹두 열매를 맺지 못하면 청포묵을 못 만드니 청포장수가 헛걸음을 하여 울고 간다는 것이다.

흔히 이 노래는 동학혁명 당시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을 빗대어 말한 참요(讖謠)로 알려져 있다. 위 노래에서 녹두밭은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을 가리키며, 파랑새는 그들을 탄압하는 일본 군대, 청포장수는 조선 민중을 가리킨다고 흔히 알려져왔다. 전봉준은 키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지녀 어릴 적 별명이 녹두였다.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을 못 견뎌 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여 동학혁명을 일으키자 사람들은 그를 녹두장군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볼 때 녹두꽃이 떨어지는 것은 전봉준이 일본군에 패하여 죽는 것을 의미한다. 청포장수가 울고 간다는 것은 그 녹두꽃이 지지 않고 열매를 맺어 그 녹두 열매로 청포묵을 담그리라는 소망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즉 전봉준의 봉기가 좋은 결실을 맺어 백성이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는데 꽃이 다 져서 열매 맺지 못하게 된 것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위 노래에는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에 대한 민중의 뜨거운 열의가 담겨 있어 패주한 농민군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한 만가(輓歌)로 불려왔다. 호남 지방에서는 오랫동안 자장가로도 전해진다. 그 자장가는 이렇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남게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새는 새는 남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우리 같은 아이들은 엄마 품에 잠을 자고
어제 왔던 새 각시는 신랑 품에 잠을 자고
뒷집에 할마시는 영감 품에 잠을 자고.

그런데 이와는 달리 조금 다른 의미로 전하는 민요도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솔잎 푸르다고
봄철인 줄 알지 마라
백설 분분 흩날리면
먹을 것이 없어진다.

앞에서는 녹두꽃을 떨어지게 하는 새가 파랑새였는데 여기서는 파랑새가 곧 녹두새라고 했다. 일설에 파랑새는 곧 팔왕(八王)새를 말한다고도 한다. 팔왕(八王)은 전봉준의 전(全)자의 파자다. 이렇게 보면 팔왕새는 바로 전봉준이 된다. 위 노래는 댓잎 솔잎이 푸른 것을 보고 봄철인 줄 알고 나온 파랑새더러 아직은 때가 아니니 흰 눈이 쏟아져 굶어 죽게 되기 전에 어서 빨리 돌아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읽으면 위 노래는 시절을 잘못 읽어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 전봉준을 애도하는 내용이 된다.

앞에서는 파랑새가 녹두꽃을 지게 만들어 청포장수를 울게 만드는 새로 등장하고, 위에서는 파랑새가 곧 녹두새라 하여 청록빛을 띤 이 새를 녹두장군 전봉준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참요란 원래 이처럼 정확한 의미를 잘 알기 어려운 노래다. 과연 어떻게 읽는 것이 바르게 읽는 것일까?

동학군이 전라감영을 지키던 군대와 싸워 이긴 고부의 황토재에 세워진 동학혁명기념탑에는 위의 노래 말고도 아래의 노래가 돌에 새겨져 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보리.

이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가보세’는 갑오세(甲午歲)를 연철한 것이니, 동학혁명이 일어난 해다. 그러니 첫 줄은 갑오년으로 가보자는 말이다. 을미적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자음으로는 을미(乙未)적이니 이 또한 ‘을미년’에 미적거리다 큰일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을미년은 전봉준이 죽은 해다. 병신도 병신(病身)의 뜻과 병신(丙申)년이란 의미가 쌍관된다. 병신년이 되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이 또한 갑오농민혁명의 실패를 뼈아프게 생각하는 민중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정말 파랑새는 녹두꽃이 피는 시절에 녹두밭에 즐겨 앉아 한 해 녹두 농사를 망치는 새일까? 앞서도 보았듯 파랑새는 팔왕새의 의미도 담고 있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이야기와도 겹쳐 있어 파랑새가 정말로 녹두밭에 앉아 녹두꽃을 지게 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파랑새는 희망과 자유의 상징으로 노래되는 데 반해 여기서 파랑새는 오히려 그 희망을 짓밟는 새로 나온다.

「해당청금(海棠靑禽)」, 장승업, 74.9×31.0cm, 간송미술관
「해당청금(海棠靑禽)」, 장승업, 74.9×31.0cm, 간송미술관

파랑새는 활엽수가 많은 인가 부근에 서식하며, 높은 고목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새는 둥지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그런 욕심 사나운 모습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장승업의 그림 「해당청금(海棠靑禽)」과 청나라 화가의 그림 「큰유리새」에는 꽃가지에 다정히 마주 앉은 큰유리새를 그려놓았다. 파랑새를 그린 옛 그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큰유리새」, 작가미상, 청나라
「큰유리새」, 작가미상, 청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