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尹東柱文學館

시간을 넘나드는 감각의 집

오래된 물 냄새, 벽에 투영된 이미지, 윤동주의 글, 그리고 공간 전체의 울림.
후각에서 시각으로, 이미지에서 글로, 다시 청각으로. 공간과 감각이 하나가 되는 순간.
이곳에서의 시간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동스럽다.

지자체마다 유명한 시인이나 소설가의 문학관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심지어 아직 생존해 있는 저명한 문학인들을 관내로 모셔가기 위해 개인 집필실과 문학관을 제공하고 있다. 춘천에 살던 이외수 작가는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에서 마련한 집필실과 문학관으로 거처를 옮긴 지 오래고, 경기도 수원시는 경기도 안성에 살고 있는 시인 고은 선생을 위해 수원 광교산 기슭에 있는 주택을 리모델링 중이다. 고은 선생이 이주를 확정하면 추가로 문학관도 건립한다고 한다.

2004년만 해도 전국에 문학관이 열네 개밖에 되지 않았는데, 2012년에는 한국문학관협의회에 등록된 문학관 수만 해도 무려 60개로 늘었다. 지자체들이 이렇게 문학관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역시 관광 수입 때문이다. 물론 2002년부터 문학관을 건립하는 지자체에게 정부에서 건립비의 40퍼센트를 지원하는 것도 ‘문학관 광풍’을 유발한 요인 중 하나다. 그렇지만 역시 특정한 역사적 유물이나 볼거리가 없는 지자체에서 유명 시인이나 소설가의 집필실이나 문학관을 유치하면 지역의 문화적 위상도 높이고,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으니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실제로 효과가 입증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외수 작가가 화천군에 정착한 첫해에는 약 2,000여 명이던 관광객이 2012년에는 무려 열 배가 넘는 2만 5,000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재정 자립도가 높지 않은 지자체의 입장만 보자면 뭐라 할 수 없지만, 이런 느닷없는 문학관 유치 열기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작가와 특별한 연고도 없는 지역에 문학관을 만든다든가, 이미 다른 곳에 있는 같은 작가의 문학관이 경쟁하듯 이곳저곳에 세워진다든가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건물만 번듯하게 지어놓고 정작 제대로 된 전시품이 없는 곳도 많고, 도저히 접근하기 힘든 산속에 지어놓아 일반인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곳도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담아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단지 관광 상품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열풍과는 달리 조용하지만 문학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문학관이 있다.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윤동주 문학관이 바로 그곳이다. 청와대 옆길을 지나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한양 도성 4소문(小門) 중 하나인 창의문이 있다. 한양 도성 4소문이란 동북쪽 홍화문(弘化門), 동남쪽 광희문(光熙門), 서남쪽 소덕문(昭德門), 서북쪽 창의문(彰義門)을 가리키는데, 창의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흰색 건물이 윤동주 문학관이다.

건너편에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는 북한 무장공비와 총격전을 벌이던 중 산화한 종로 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 서 있고, 아래쪽에는 오렌지색 지붕의 물결이 이국적으로 펼쳐져 있다. 저 멀리 남산까지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쪽에는 청운동 ‘시인의 언덕’이 있다. 막상 올라가 보면 휑한 언덕에 시비(詩碑)를 몇 개 뿌려놓아 이름에 걸맞은 시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잘 복원해놓은 서울 성곽이 더 인상적이다. 청운아파트의 흔적을 잘 살려서 이곳에서 시적인 영감을 받았을 시인들의 시구를 새겨 넣었으면 더 운치 있고 좋았을 것 같다. 이곳은 원래 청운시민아파트가 있던 자리로, 11동 500여 가구가 2005년까지 살았다. 청와대와 가까워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북악산과 인왕산을 연결하는 능선에 버티고 서 있던 아파트를 철거하면서 그 자리에 시인의 언덕을 조성한 것인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윤동주 문학관이 여기에 들어선 것은 어떤 인연이 있어서일까. 부암동과 청운동이 맞붙어 있는 이곳은 서촌의 끝이다. 서촌은 조선시대 중인들의 문학인 위항문학이 꽃핀 곳이었고, 1930년대부터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시인 노천명과 윤동주와 이상, 소설가 현진건 등 근대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 서촌은 근대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다. 윤동주는 당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다녔는데, 태평양전쟁으로 기숙사의 식사가 부실해지자, 종로구 누상동에 살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고 한다. 같이 하숙했던 후배 정병욱은 윤동주가 김송의 가족과 함께 식사도 하고, 친구들과 대청에 앉아 차를 마시는가 하면, 성악가였던 김송의 아내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시인 윤동주에게는 서촌에서 지낸 이 시기가 황금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이 이 시기 작품이다.

하지만 윤동주가 하숙하던 한옥은 안타깝게도 1995년에 철거되었다. 지금 그 자리에는 3층짜리 다세대주택이 서 있는데, 아치 형태의 정문에 붙어 있는 ‘종로구 누상동 9번지’라는 옛날 주소만이 윤동주가 이곳에 살았다는 유일한 증거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윤동주는 인왕산 중턱과 부암동 바위에 올라 시상을 떠올렸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도 시인의 언덕을 오르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밖에 이곳에 특별히 윤동주의 흔적이 남은 유적이나 유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윤동주 문학관은 바로 이 언덕의 입구에 있다. 건물 역시 윤동주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2009년까지 수도가압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고도가 높은 청운동 일대에 수압을 높여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74년에 세운 건물인데, 2009년에 용도를 다하면서 종로구로 넘어오게 되었다. 여느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를 연계하여 이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심하던 종로구는 수도가압장의 기계실이자 관리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임시 사용하면서 윤동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말이 문학관이지 허름한 1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에 간판만 바꿔 단 격이었다. 그러다 2011년 6월 건축가 이소진(아뜰리에 리옹 서울 대표)에게 설계를 맡기게 된다.

요란하지 않게, 조용하게, 온전히 문학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 윤동주 문학관
요란하지 않게, 조용하게, 온전히 문학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 윤동주 문학관

이곳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건축가 이소진은 새로 지을 것인지, 고쳐서 쓸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윤동주 문학관의 모태인 수도가압장 건물은 낡기도 했지만 창도 너무 작고 면적도 너무 작아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간단히 허물어버리고 새로 지을 수는 없었다. 지난 40년 동안 부암동 고갯길을 넘나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할 이 건물의 풍경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의 ‘마음의 풍경’ 속에는 이 건물이 품고 있는 ‘시간의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결국 건축가 이소진은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윤동주 시인의 순수함을 표현하는 하얀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설계를 마치고 거의 착공을 앞둔 시점에 엄청난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났다. 걱정스럽게 산사태 현장을 살펴보던 건축가의 눈에 못 보던 벽이 들어왔다. 산사태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벽이 발견된 것이다. 처음에는 옹벽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수도가압장 뒤쪽에 묻혀 있던 콘크리트 물탱크였다. 이곳의 도면이 제대로 남아 있지도 않고, 수도가압장이 물을 끌어다 쓰는 물탱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건물 바로 옆에 물탱크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건물 옥상과 연계하여 휴식 공간을 만들려고 했던 건물 뒤편의 평평한 땅이 사실은 물탱크의 지붕이었던 것이다.

물탱크로 내려가는 길은 지붕에 뚫린 작은 문과 사다리뿐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오랜 물 냄새만이 코를 자극했을 것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건축가 이소진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얼마 되지 않는 유품은, 이전대로라면 그냥 유리 속에 넣어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물탱크가 발견되었고, 이로써 윤동주의 시적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설계가 다 끝난 상황에서 산사태의 잔해를 말끔히 치우는 데만 신경 썼다면, 새로 열린 가능성을 무심히 지나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지라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작업의 지난함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 가능성을 외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건축가 이소진은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종로구에 이 구조물도 문학관의 일부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종로구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소진은 추가 설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저 돈만 받고 빨리 설계를 끝내버리는 건축쟁이가 아니라, 적은 설계비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제대로 된 문학관을 만들고 싶었던 이소진의 건축가적 소양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오랫동안 물탱크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습기도 문제지만, 55제곱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면적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높이는 무려 5미터나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높이 역시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의 이미지였다. 시인이 언어로 시를 쓴다면 건축가는 공간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인이 남긴 시어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는 물탱크 앞쪽 방은 기존 콘크리트 지붕을 걷어내고 하늘을 담은 ‘열린 우물’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뒤쪽 방은 영상 전시를 위한 ‘닫힌 우물’로 디자인하면서, 시인 윤동주에게 잘 어울리는 공간이 드디어 ‘탄생’했다.

멀리서 한눈에 보이는 윤동주 문학관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시인 윤동주의 이미지처럼 하얗고 순수한 모습이다. 입구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하얀 벽에 새겨진 시인의 얼굴과 그가 1938년에 남긴 시 「새로운 길」을 먼저 만나게 된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一九三八. 伍. 十

윤동주 문학관은 우리에게 시인을 새롭게 경험하게 해주는 ‘새로운 길’ 같다. 안으로 들어가면 제1전시실에서 시인의 유품과 시인의 작품이 실린 다양한 책들을 볼 수 있다.

전시실 가운데에는 우물이 있다. 시인의 생가에 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제1전시실 왼편에 두꺼운 검은색 철문은 제2전시실로 가는 길이다. 무거운 철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빛으로 가득한 고요한 공간이 나타난다. 실내가 아니라 야외 공간이다. 바로 ‘열린 우물’이다. 지붕이 사라진 네모난 공간 오른쪽 위에 마치 발코니처럼 돌출된 콘크리트 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 뚫린 네모난 구멍으로 철심들이 균일한 간격으로 벽을 타고 내려온다. 옛날 물탱크실로 들어가던 입구와 철 사다리의 흔적이다. 아래쪽에는 마치 오랜 시간의 단층이 쌓인 것 같은 오래된 물자국이 남아 있고, 새로 지어 올린 위쪽은 시간이 멈춘 듯한 하얀색 벽이 있다. 유령처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사다리의 흔적과, 네모난 하늘의 가장자리에서 넘실거리는 나무를 보고 있자니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을 넘나드는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사진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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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오래된 공간이 주는 깊고 묵직한 울림. 오래된 것 속에 감춰진 깊은 시간의 의미

빛으로 가득한 ‘열린 우물’의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또 다른 검은색 철문이 나온다. 제3전시실로 들어가는 문이다. 무거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컴컴한 공간 속에 작은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다. 이번에는 ‘닫힌 우물’이다. 어두움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는데, 뒤에서 철컥, 하면서 문이 닫힌다. 그 소리에 다시 되돌아가 문을 열어야 하는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야 하는지 머뭇거리고 있는데, 오른쪽 위의 작은 구멍으로 차가운 빛이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열린 우물’에서 보았던, 옛 물탱크실로 들어오는 입구다. 차가운 빛이 벽을 타고 내려오면서 오래된 콘크리트 표면의 미묘한 촉감을 살려낸다. 벽에 다가가 표면을 살펴보려 하는데, 빛이 천천히 사라지더니 어느새 칠흑 같은 공간에 홀로 서 있다. 오래된 물 냄새만이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잠시 후 눈앞에 윤동주 시인의 삶과 죽음의 영상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오래된 물 냄새 속에서 느껴지는 후각의 시간, 벽에 투영된 이미지로 보는 역사의 시간, 윤동주의 글에서 느껴지는 시의 시간, 그리고 공간 전체의 울림에서 느껴지는 청각의 시간. 후각에서 시각으로, 이미지에서 글로, 다시 청각으로. 작은 공간 안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각의 시간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동스럽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말을 빌려, 진정한 감각은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하나의 층위에서 다른 층위로 넘어가는 전이와 같다고 했다. 이곳에서 내가 느낀 감동이 그가 말하려던 것이 아닐까.

영상이 끝나니 천천히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영상을 위해 닫혔던 구멍이 다시 열렸다. 희미하게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철문을 열고 다시 ‘열린 우물’로 나왔다. 빛을 쏟아내는 하늘은 ‘닫힌 우물’에 들어가기 전과는 다른 하늘이다. 하늘은 같은 하늘이겠으나 어쩌면 하늘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서 있자니 내가 시인이라도 된 듯하다. 그의 작품을 한 편 골라 소리 없이 읽는다. 눈으로 머리로 읽었던 윤동주의 시가 고스란히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자화상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리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기를 바란다. 특히 오래된 것은 낡았으니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새롭고 큰 것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다. 작고 오래된 공간이 주는 깊고 묵직한 울림이 오래된 것 속에 감춰진 시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