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테온

판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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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로마제국 전성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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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든 신에게 바쳐진 신전
  2. 천체와 우주의 상징
  3. 신전 건축의 원전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로마의 지붕들 사이로 바로크 시대에 세워진 성당들의 쿠폴라가 수평선을 뚫고 나오고 있다. 이곳이 바로 로마의 평지인 캄푸스 마르티우스(마르스 들판) 지역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내려다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물은 단연 판테온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판테온의 형태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판테온의 둥근 지붕이 온통 금박으로 덮여 있어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광채를 발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건축 · 도시계획 용어에 ‘테수토 우르바노(tessuto urbano)’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말로 ‘도시 맥락’ 정도로 옮겨질 수 있겠는데, ‘테수토’는 ‘직조(織造)된 천’을 말하므로, 도시의 짜임새를 하나의 직조체로 본다고 할 수 있다. 판테온은 마치 수예작품처럼 도시의 전체 맥락 속에 ‘짜맞춰’ 있다.

현재 캄푸스 마르티우스 지역의 길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다. 그리고 이 지역의 길들은 미로 같아서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거대한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판테온의 내부
거대한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판테온의 내부

판테온 주변의 골목길들도 마찬가지이다.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갑자기 거대한 판테온이 눈앞에 등장한다. 판테온 앞에는 이 거대한 건물의 덩치에 알맞을 만한 크기의 광장이 펼쳐져 있고,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는 조용히 물을 뿜고 있다. 현재의 광장이 있는 지역의 지면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지금보다 3미터 정도 낮았으며, 판테온 앞에는 직사각형의 길쭉한 회랑으로 된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즉 판테온으로 들어가려면 판테온 쪽으로 시야를 집중시키는 투시도적인 광장을 거쳐 계단을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일단 판테온 안에 들어서면, 속세로부터 갑자기 격리된 듯한 느낌이 든다. 골목길과 광장에서 들리던 소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폭풍우 지난 후의 바다와 같은 잔잔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판테온의 내부는 거대한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경우,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挻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라는 노자의 말을 음미하게 한다. 고대 이집트나 수메리아, 크레타와 미케네, 그리고 에트루리아와 그리스 등 로마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문명권에서는 판테온처럼 ‘비어 있는 내부 공간’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비어 있는 공간’ 안에서는 눈앞의 공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등 뒤의 공간도 느껴진다.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이러한 공간의 체험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판테온의 정면
판테온의 정면

모든 신에게 바쳐진 신전

‘신(神)’을 그리스어로 theos라고 한다. ‘판테온’은 Pan(모든)+theos(신)+on(건물, 장소를 나타내는 그리스식 접미사), 즉 ‘모든 신(神)들에게 바쳐진 신전’, ‘범신전’이란 뜻이다. 판테온은 지금도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대 로마의 건축물이다. 그리고 판테온은 현재 성당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고대 로마의 건축물 가운데 원래의 기능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경배의 대상이 ‘모든 신’에서 ‘유일신’으로 바뀌었지만……. 판테온은 역사적인 인물의 묘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을 비롯해 1520년 37세의 나이로 요절한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 라파엘로의 묘소도 있다.

판테온의 정면 윗부분에는 라틴어로 “M.AGRIPPA.L.COS. TERTIUM FECIT”이라고 쓰여 있다. ‘세 번째(TERTIUM) 집정관(COS=CONSUL) 루키우스의 아들(L) 마르쿠스 아그리파(M. AGRIPPA)가 했다(FECIT)’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아그리파가 집정관을 세 번째 지낼 때인 기원전 25년에 세웠다는 의미이다.

판테온은 원래 기원전 27년에서 25년 사이에 아그리파가 자신이 세운 공공목욕장 바로 옆에 ‘복수의 유피테르(Jupiter Ultor)’ 신에게 바치기 위해 세웠는데, 실제로는 아우구스투스에게 지어 바친 것이다. 이 신전은 당시 로마 시민들이 국가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기 위해 지은 상징적인 건축물로, 이곳에는 유피테르 신상을 비롯해 다른 여러 신들의 석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율리아 씨족의 수호신인 일곱 개 행성의 신들이 있었는데, 전쟁의 신 마르스와 베누스 신상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상신인임을 돋보이게 했다.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의 석상도 이곳에 안치할 계획이었으나 아우구스투스의 단호한 반대로 포기했다고 한다.

아그리파가 세운 판테온은 여러 번의 화재로 전소되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복원했지만, 서기 110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판테온을 아예 완전히 새로 지었다. 하드리아누스는 로마제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다른 민족의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건축에 매우 조예가 깊은 황제였다. 판테온을 황제 자신이 직접 설계했는지 아니면 다른 건축가가 설계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의 입김이 세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당대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던 아폴로도로스의 이름은 판테온의 건축가로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

판테온의 단면도와 평면도
판테온의 단면도와 평면도

한편, 콜로세움 바로 앞 벨리아 언덕 위에는 ‘베누스와 로마 신전’의 유적이 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직접 설계했다고 전해지는데, 문제는 이곳에 안치될 베누스 여신상의 높이가 지붕보다 더 컸다. 말하자면 설계를 잘못했다는 뜻이다. 이에 아폴로도로스가 황제에게 핀잔을 주자 비위가 상한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의 스승과 다름없는 노(老)건축가를 처형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드리아누스는 판테온을 본래 아그리파가 세웠다는 사실을 청동 글씨로 판테온 입구 윗부분에다가 그대로 붙이게 했다. 반면 건축가로서의 능력을 자만하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도 새겨 넣지 않았기 때문에 판테온의 건축가 또는 판테온을 세운 건축주로서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이름은 2000년 동안 완전히 잊혔다. 하지만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판테온을 완전히 다른 형태의 건축으로 복원했다. 아그리파가 세웠던 판테온은 원통형이 아닌 직사각형 평면의 신전으로 여겨지며, 입구는 현재와 달리 남쪽을 향해 있었다고 한다.

천체와 우주의 상징

간결하면서도 품위 있는 외형을 지닌 판테온은 신전 건축이란 면에서 보면 매우 파격적이다. 그 형태는 입구의 삼각지붕이 있는 부분과 내부의 원통형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신전의 입구를 신상 안치소(naos) 앞(pro)에 있다고 하여 그리스어로 프로나오스(pronaos)라고 한다. 판테온의 프로나오스는 16개의 거대한 이집트 산 화강암 통돌 기둥들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신전 건축에서 프로나오스 안쪽에는 기둥이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판테온에서는 이런 원칙이 무시되어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신상 안치소는 사제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인 데 반해, 판테온에서는 넓은 내부 공간 그 자체가 신상 안치소였으며, 사제뿐 아니라 누구나 안에 들어가 종교의식을 할 수 있었다.

판테온의 쿠폴라는 위로 갈수록 더 가벼운 재료를 사용했으며 쿠폴라가 밖으로 벌어지려고 하는 힘은 두꺼운 원통형 벽체 로툰다(rotunda)가 받아주고 있다. 이 로툰다를 지탱하는 기초는 깊이 4.5미터, 폭 7.5미터의 거대한 콩크리트 ‘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초공사 중 링 바깥부분이 더욱 보강되었는데, 이것은 이전 시대의 건축가 라비리우스가 세운 궁전 팔라티움의 기초가 가라앉는 것을 보고 놀랐기 때문에 취한 안전조치였다.

판테온의 기본 형태는 원통 위에 반구(半球) 모양의 쿠폴라를 얹힌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공간은 10로마식 피트를 기본단위로 하는 숫자와 기본도형으로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원통 외부 지름은 200로마식 피트이고, 원통 내부 지름은 3/4에 해당하는 150로마식 피트이다. 원통 내부의 지름과 바닥에서 반구 안쪽 정상까지의 높이는 똑같이 150로마식 피트(약 44미터)이다. 그렇다면 내부 공간에 지름 150로마식 피트의 구형(球刑)을 끼어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앞의 그림에서 보듯, 정점을 A라고 하고 바닥 평면에서 벽감이 세로벽과 교차하는 지점을 각각 B, C라고 하면, ABC는 정확하게 정삼각형을 이룬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수의 조화나 기본도형과 기본고형체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면체, 원통형, 피라미드와 원뿔형 등과 같은 도형이나 고형체는 모두 하나의 구형 속에 담을 수 있는데 이것은 우주의 형상이며 천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또 정상에 뚫린 지름 30로마식 피트(약 9미터)의 구멍은 행성의 중심인 태양을 상징했다. ‘눈’이란 뜻의 오쿨루스(oculus)라고 하는 이 구멍은 판테온의 내부를 밝히는 유일한 광원(光源)이며 제사 지낼 때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오쿨루스를 통해 위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햇빛은 내부를 구석구석 고르게 밝혀주는데, 마치 하늘이 판테온의 내부 공간 구석구석에 스며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비가 오면 안으로 그대로 떨어져 판테온의 내부 공간이 외부 공간과 완전히 격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당시, 지름이 30로마식 피트(약 9미터)나 되는 천장의 구멍을 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완전히 덮을 수 있는 기술은 없었다. 이 정도 규모의 쿠폴라에서는 아무리 가벼운 석재와 시멘트를 사용해도 자체의 무게 때문에 그대로 주저앉기 때문이다.

오쿨루스를 중심으로 천장의 격자는 다섯 열의 동심원을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우주가 다섯 개의 동심구(同心球)로 된 천구가 겹쳐져 있는 것으로 생각한 고대인들의 천체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또 각 열마다 있는 28개의 격자는 달의 공전주기, 즉 음력의 한 달인 28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각 격자마다 청동별들이 장식되어서 천장은 천구(天球)처럼 보였을 것이고, 지붕에는 금박을 입혔으니 판테온은 태양과 같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또 천구를 상징하는 쿠폴라를 받치는 원통 벽체에 있는 일곱 개의 벽감은 다섯 개의 행성과 해와 달을 상징했고, 동시에 벽체의 하중을 줄여주었다.

판테온의 바깥벽
판테온의 바깥벽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는 판테온은 로마제국 황제들을 위한 신전이며, 로마제국 제1인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하드리아누스는 이 거대한 빈 공간 안에 원로원과 시민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법을 공포할 때 단순한 황제가 아니라 우주의 법을 제정하는 신성한 황제로 각인되도록 연출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신전 건축의 원전

608년 동로마제국 황제 포카스가 판테온을 교황 보니파치우스 4세에게 기증한 이후, 로마 최고의 범신전은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ei Martiri)’으로 변모되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의 신전에서 기독교 성전으로 바뀐 것이다. 그 덕택에 판테온은 다른 고대 로마의 건축물과는 달리 ‘채석장’으로 전락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나마 제대로 잘 보존되어 내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테온도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판테온의 입구의 거대한 청동문
판테온의 입구의 거대한 청동문

1624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25세의 젊은 예술가 베르니니(1598~1680)에게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베드로의 묘소를 덮는 거대한 제단을 제작하기 위해 판테온에 있던 청동 구조물과 청동 장식물들을 모조리 뜯어오도록 했다. 우르바노 8세는 바르베리니(Barberini) 가문 출신인데, 당시 로마 시민들은 “바르바리(야만인)도 하지 않는 짓을 바르베리니가 했다(Quod non fecerunt barbari, fecerunt Barberini)”라고 빈정댔다. 다행스럽게도 판테온 입구의 거대한 청동문은 지금도 20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