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작도

호작도

다른 표기 언어 虎鵲圖 동의어 까치호랑이 그림의 기구한 운명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과 같이 양반이나 선비들이 즐기던 고급 문화가 서민들에게까지 전해져 유행하는 과정에서 민화가 그려졌다. 이런 현상 또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무렵에 일어났다. 이 시기는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적 여유가 생겨 문화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때다. 많은 사람이 판소리를 즐기고 소설책을 읽으면서 여가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도 늘어났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림으로 집안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정식 화원이나 문인 화가 외에도 그림을 그려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약간이라도 그림 그리기에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생업으로 삼았다. 이런 화가들은 거리의 직업 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머리를 짜내 새로운 작품을 그리거나 새로운 구상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이름난 그림을 베껴 그려 팔곤 했다. 거리의 이름 없는 직업 화가들이 베끼듯이 그린 그림을 '민화'라고 하는데 그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예전부터 궁중이나 양반 사회에서 감상되던 산수화나 화조화는 물론, 궁중에서 의식을 치를 때 치는 장식 병풍이나 모란 병풍까지 모두 그렸다.

〈까치호랑이〉 작자 미상, 19세기, 종이에 채색, 95.0x55.0cm, 개인 소장
〈까치호랑이〉 작자 미상, 19세기, 종이에 채색, 95.0x55.0cm, 개인 소장

이들이 그린 민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 바로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소나무 아래에 우스꽝스런 호랑이가 앉아 있고, 나뭇가지에는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게 일반적인 구도이다. 물론 호랑이 새끼가 등장하거나 여러 마리 까치가 등장하는 그림도 있다. 이런 그림들을 모두 한데 묶어 까치호랑이 그림이라고 한다. 한자어로 호랑이 호(虎)자와 까치 작(鵲)자를 써서 호작도(虎鵲圖)라고 하기도 한다. 까치호랑이 그림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화인 만큼, 내용면에서도 조선 시대 민화의 특징이 고루 담겨 있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연초에 인사를 하는 용도로 주고받았다. 이러한 용도로 쓰였던 그림을 세화(歲畵)라고 한다. 이런 세화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에 이르게 된다. 중국의 산동 지방에는 새해가 되면 소나무 아래에 호랑이를 그린 그림을 주고받으면서 "올해는 높은 관직에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덕담을 나누곤 했다. 호랑이는 맹수의 왕이므로 관리로 치면 1등급의 높은 관리에 비유되었다.

이러한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호랑이에 높은 관직을 상징하는 의미는 없었다. 호랑이는 신선을 따라다니는 동물로 주로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동물을 상징했고, 그 뜻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까치를 소나무 위에 그려 넣었다. 까치는 당시에도 전통적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조의 새로 알려져 있었다.

이렇듯이 중국의 호랑이 그림은 조선으로 전해지면서 까치호랑이 그림으로 변화해 정착했다. 유머러스할 뿐만 아니라 친근하고 다정스러운 인상의 호랑이의 모습은 변화 과정에서 탄생했는데, 거리의 민화 화가들이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다.

교과서에 나와서 더 유명해진 〈까치호랑이〉 그림은 유머러스한 요소가 가득하다. 소나무의 솔잎 몇 개만을 마치 꽃처럼 보이도록 그렸다. 고목 둥치에서 삐죽 나온 가지에 앉은 까치도 보통의 까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동그란 눈에 반쯤 입을 벌리고 있어 보기에 따라서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인다. 더욱 가관인 모습은 호랑이다. 호랑이의 얼룩무늬는 찾아볼 수 없고 지그재그 선으로 적당히 그려 색만 칠했다. 얼굴도 전혀 호랑이를 닮지 않았고 표정도 우스꽝스럽다. 얼굴만 보면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재미있는 모습 때문에 이 그림은 전시할 때에 관람객들로부터 '피카소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서 옆에서 본 모습과 앞에서 본 모습을 합쳐서 괴상하게 그린, 화가 피카소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까치호랑이 그림이 이렇게 흥미롭게 탄생했지만 실은 오랜 동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무명 화가가 연초에 그려서 문 앞에 붙이고 버리는 그림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이 그림의 가치를 먼저 인정해 주었다. 까치호랑이 그림에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머와 해학이 가득하고, 또 당시의 민중이 누렸던 생활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인정해 외국인들이 먼저 즐겨 보고 수집했다.

그런 점에서 옛 그림을 보고 즐긴다는 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런 만큼 그림을 보는 일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