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 개인회생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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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누가 ‘인생 끝’이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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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인파산', 잘만 하면 재기의 발판된다
  2. 면책결정 못 받으면 사회생활 불이익만 남아
  3. 파산이 부담스럽다면 개인회생이 있다
  4. "도덕 불감증" vs "성실하나 불운한 개인 구제"
사례
이순진(가명, 70세) 씨는 평생 살던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사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 씨는 고향 친구의 연대 보증을 서준 일이 있었다. 친구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데 보증인이 필요하다며 간곡히 부탁하여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그 정도가 대수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 그는 5,000만 원짜리 대출 서류에 도장을 찍어줬다. 하지만 그것이 불행의 서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몇 년 뒤 친구는 사업에 실패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자 은행의 빚 독촉은 이 씨를 향했고 결국 민사소송까지 당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이 씨는 퇴직금을 고스란히 은행에 갖다 바친 후에도 아파트 경비원 생활로 빚을 조금씩 갚아나갔다. 하지만 그사이 연체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채무는 2억 원을 훌쩍 넘어 있었다. 고령의 이 씨가 감당하기엔 애초에 불가능했다. 은행은 급기야 이 씨의 집을 법원의 경매로 넘겨버렸다.

그는 정든 집에서 쫓겨났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이 씨를 이미 신용불량자로 올려놓았던 은행은 경매낙찰가격이 채무에 미치지 못하자 남은 빚을 갚으라며 그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경제 활동을 할 능력도 없고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그에게는 아직도 1억 원 정도의 빚이 남아 있다.

이 씨가 남은 빚을 갚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빚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까? 이럴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바로 개인파산이다. 실제로 이 씨는 법원을 통해 6개월 만에 빚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산'이라고 하면 마치 모든 인생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파산이 재기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참고로 연대보증이란 주채무자(원래 돈을 빌린 사람)와 연대하여 채무를 부담하는 보증을 말한다. 연대보증은 말만 보증이지 빚쟁이와 다를 바 없다. 원래 보증인은 채권자가 돈을 갚으라고 하면 주채무자에게 먼저 빚 독촉을 해보라거나 주채무자의 재산을 먼저 강제집행하라는 항변을 할 권리(최고, 검색의 항변권)가 있다.

하지만 연대보증은 이런 권리가 없다. 채권자는 주채무자가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계없이 바로 연대보증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설사 채무자가 파산선고 등으로 채무를 면제받더라도 연대보증인의 책임은 그대로 남는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선 채권 확보에 더없이 유리한 제도이다. 금융기관이나 사채업자는 100% 연대보증을 요구한다. 따라서 연대보증을 섰다면 채무자 대신 갚을 각오를 해야 한다.

파산
파산

'개인파산', 잘만 하면 재기의 발판된다

개인파산은 개인이 자신의 재산으로 모든 채무를 갚을 수 없는 상태(지급 불능)에 빠진 경우에 채무를 정리하고자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이다. 채무의 종류는 은행대출, 사채, 카드 빚, 물품대금 등 상관이 없다. 신청 자격도 개인이라면 제한이 없다. 봉급생활자, 주부 등 소비활동을 원인으로 한 '소비자 파산'과 개인사업자가 사업실패로 부도를 내거나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된 '영업자 파산'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례
40대 후반의 채무자(가명) 씨는 아시아권의 어느 나라에서 30년간 로또 사업을 할 수 있는 사업권을 어렵게 따냈다. 그는 현지에 지사를 설립하고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는 등 몇 년간 공을 들였다. 하지만 현지 사정 때문에 로또 사업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 때문에 회사는 폐업 처리됐고 개인적으로는 수십억 원의 빚을 져야 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던 채 씨는 법원에 파산신청서를 냈고 법원은 파산 사유가 인정된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파산신청이 들어오면 채무자의 재산과 노동력으로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판단한다. 여기에 채무자의 연령, 직업, 기술, 건강, 재산상태 등을 고려하여 파산선고 여부를 결정한다. 파산이 선고되면 원래 남은 재산을 채권자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주는 절차(파산절차)를 갖게 되지만 개인파산의 경우 대부분 남은 재산이 없기 때문에 이 절차를 생략한다. 따라서 개인파산은 파산선고와 파산절차 폐지 결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기까지 볼 때 재산보다 빚이 많은 개인이 파산선고를 받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파산선고만으로는 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공무원, 변리사, 회계사 등의 직업을 가질 수 없고 금융기관 거래에 제약이 뒤따르는 등 사회생활의 불이익만 따르게 된다. 파산으로 진정한 구제를 받으려면 법원의 면책결정이 뒤따라야 한다.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개인파산 84,725 69,754 61,546 56,983 55,467
법인파산 253 312 396 461 540
개인회생 84,710 69,741 61,508 56,940 110,707
자료 : 대법원 (2015년 사법연감)
개인파산, 법인파산, 개인회생 접수 건수

면책결정 못 받으면 사회생활 불이익만 남아

면책이란 파산을 통해 변제하지 못하고 남은 채무를 면제시켜주는 제도이다. 개인파산은 자기 잘못이 아닌 자연재해나 경기 변동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성실하지만 불운한' 개인을 구제하여 사회생활에 복귀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면책은 필수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면책을 받아야 비로소 빚에서 자유로워진다. 즉 남아 있는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채무가 있는 금융기관에는 면책결정문을 직접 제출하여 면책 사실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산으로 받았던 신분상 불이익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 단 세금, 벌금 등의 책임은 면책결정을 받아도 여전히 남는다.

법원은 파산선고와 동시에 면책절차를 거치는데 채권자에게도 이 사실을 통지하고 한 달 정도의 이의신청 기간을 둔다. 이 기간동안 법원은 채권자의 이의신청서와 기록을 검토하고 사건에 따라서 채무자를 심문하는 등 다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비양심적이고 불성실한 채무자를 걸러내기 위해서다.

사례
강심장(가명, 45세) 씨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현재 아무런 재산이 없고 빚이 1억 원이 넘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제출한 신청서에는 수백만 원의 카드대금, 백화점 물건 값, 은행대출 자금 내역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일단 파산선고를 내린 법원은 몇 가지 의심스런 점을 발견했다. 우선 강 씨의 빚 대부분이 불과 1년 전에 생긴 것이었다. 강 씨는 여러 카드회사에서 동시로 현금 서비스를 받는 방법으로 수천만 원을 대출받아 아들의 유학비를 대고 생활비로 사용했다. 더구나 그 중 1,000만 원은 이미 이혼한 남편에게까지 송금됐다. 법원은 강 씨를 심문한 결과 2년 전부터 최근까지 다단계 사업을 하다가 2억 원 정도의 빚을 진 사실도 알아냈다. 판사는 최근에 카드 빚이 늘어나게 된 이유와 대출 자금의 사용 경위를 물었으나 강 씨는 뚜렷한 근거를 대지도 못했다. 결국 법원은 강 씨에게 면책불허가 결정을 내렸다.

강 씨처럼 파산선고만 받고 면책이 되지 않는 사례는 개인파산절차에서 최악의 경우이다. 파산에 따른 불이익은 그대로 받고 채무는 한 푼도 면제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자신의 채무를 모두 갚은 후 법원에 복권신청을 내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은 법에서 정하는 면책불허가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앞의 사례에서 대출금을 남편과 아들에게 송금한 행위, 파산 직전까지 다단계 사업으로 거액의 채무를 부담한 행위, 대출금의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은 행위 등은 모두 면책불허가 사유에 해당한다. 설사 부정한 행위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파산 직전에 집중적으로 채무를 부담했다면 일단 법원의 의심을 받게 된다.

채무자가 부정한 사실로 면책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나중에 형사처벌을 받거나 면책결정이 취소될 수도 있다. 2016년 농구스타 박 모 씨도 면책불허가 결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 법원은 박 씨가 파산신청을 하면서 소득의 일부를 누락했고, 차명계좌에서 생활비를 사용한 사실이 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파산이 부담스럽다면 개인회생이 있다

인생을 정리할 시점에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면 파산을 떠올려 볼만하다. 그런데 아직 한참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파산선고를 받는다면? 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을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 파산은 치명적이다. 금융거래에도 지장이 있다. 그렇다면 파산 말고 빚을 정리할 수 있는 제도는 없을까?

사례
결혼 10년차 나재기(가명·40세) 씨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혼 초부터 빚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갑내기 아내, 두 아들과 함께 250만 원의 월급으로 빠듯하지만 단란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내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마이너스 인생이 됐다. 다행히 아내는 2년 만에 완쾌됐지만 카드 돌려막기, 은행대출, 사채 등으로 병원비를 충당하는 바람에 빚은 1억 원을 넘었다. 월세를 살고 있는 나 씨는 현재 25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어서 이자를 감당하기도 벅차다. 로또가 당첨되어야 해결이 될까.

나 씨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작정 로또 당첨만 기다릴 수는 없다. 현실적인 방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개인회생이다. 개인회생은 직장이 있고 빚을 갚을 의지도 있으나 감당하기엔 벅찬 채무를 진 사람들을 위한 제도다. 5년간 원금의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는 법원이 면책을 해준다는 이점이 있다. 파산과 달리 공무원 신분이 박탈되거나 변호사, 세무사 등록이 취소되는 불이익도 없다.

개인회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계속적 수입이 있어야 하고 담보채무액각주1) 이 10억 원 이하거나 무담보채무가 5억 원 이하여야만 한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졌다면 채무자는 앞으로 받게 될 소득에서 생계비를 뺀 나머지 금액으로 변제하겠다는 계획을 법원에 밝히고, 계획대로 5년간 충실히 변제하면 남은 채무는 사라진다.

나 씨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자. 나 씨는 현재 다른 재산이 없이 25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 2명을 부양하고 있다면 4인 가족 생계비(170만~200만 원 정도)는 우선 보장받는다. 거기에 각종 세금, 건강보험료 등 제세공과금을 제외한다면 나 씨가 갚을 수 있는 여력은 5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나 씨가 매달 50만 원을 갚겠다고 변제계획안을 제출하고 법원이 인가해준다면 그때부터 실행에 옮기면 된다. 이렇게 되면 채권자들도 개별적으로 빚 독촉을 할 수 없게 된다. 나 씨가 5년간 꼬박꼬박 50만 원을 갚는다면 비로소 모든 채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도덕 불감증" vs "성실하나 불운한 개인 구제"

한 해에 개인파산, 개인회생으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개인파산, 개인회생 제도가 도덕 불감증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미 경제적으로 파탄난 사람을 무작정 방치하는 것도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결국 성실하게 살아왔으나 불가피하게 빚을 떠안은 채무자와 자신의 경제력과는 상관없이 무책임하게 흥청망청 살아온 비양심적인 채무자를 법원이 잘 걸러내는 일이 관건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특히나 파산은 아직 인생이 창창한 사람들에겐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제도이다.

참고

・ 이 책에 나오는 판례, 법령 등과 자료는 2017년 1월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법이 바뀌거나 판례가 변경되면 책을 증쇄할 때마다 곧바로 새로운 사항을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