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바야 역사

수라바야 역사

수라바야 역사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358년 트라울란(Trowulan) 비문에 수라바야가 등장하고 있으며, 1365년 하얌 우루크(Hayam Wuruk) 왕의 항해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고대왕국인 마자파힛 왕조는 수라바야와 인근 동부 자바(오늘날 자와티무르주)를 통치하였다. 수라바야에 대한 기록은 14세기 무렵 처음 등장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전에도 수라바야 지역에 왕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수라바야라는 이름은 14세기 우중 갈루(Ujung Galuh)의 통치자인 아르야 름부 소라(Arya Lembu Sora)에 의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15~16세기 수라바야는 마자파힛 왕국 아래에서 정치적, 군사적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5세기 무렵에는 수라바야 지역에 이슬람교가 빠르게 퍼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암펠(Ampel) 지역에 모스크와 이슬람 기숙학교가 세워졌으며, 1530년에는 수라바야가 데막(Demak)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상업항으로 발전했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수라바야는 지역 수도의 지위를 갖게 되었는데, 1905년에는 지자체의 지위를 받게 되었으며, 1926년 수라바야는 동부 자바의 주도로 지정되었다. 이후 1910년 탄중 페락 항구(Pelabuhan Tanjung Perak)가 건설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바타비아 다음으로 큰 현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1942년 인도네시아 지역이 일본에 침략받아 일본의 영향권 아래에 있게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 10월 25일 수라바야에 상륙한 영국군과 현지 주민과의 전투가 발생하면서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1947년 네덜란드군에 의해 재점령 당하였으며, 네덜란드군이 물러난 1949년 인도네시아에 편입되었다.

독립 이후 인구 증가와 급속한 도시화로 수라바야는 경제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1980년대 들어서면서 신산업의 성장과 함께 부동산 회사들의 주택 확산 등으로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고, 21세기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2020년 5월 수라바야에서 COVID-19 사례가 최초로 확인되면서, 수라바야는 인도네시아 팬더믹의 진원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