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역사

쿠알라룸푸르 역사

19세기 중엽까지 쿠알라룸푸르 지역은 밀림에 뒤덮여 있었으며 1857년 셀랑고르 왕가의 라자 압둘라(Raja Abdullah)가 주석광산을 개발하면서 건설되었다. 주석을 채굴하기 위하여 이주해온 87명의 중국인 노동자들과 현지 관리들이 탐험 끝에 암팡(Ampang) 근처에서 주석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주석광산에서 일하면서 클랑강(River Klang)을 따라 작은 취락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쿠알라룸푸르 도시의 기원이 되었다. 쿠알라룸푸르는 현지어로 '진흙탕물의 합류'라는 뜻이며 클랑강과 곰박강의 합류지점에서 생겨났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강물의 합류뿐만 아니라 산지와 저지(低地)의 접점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택에 쿠알라룸푸르는 상거래가 활발해졌고 점차 주석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1860년 세 번째 중국인 지도자(Captain China)로 선출된 얍아로이(Yap Ah Loy, 1837~1885)와 총독 프랭크 스웨테넘(Frank Swettenham, 1850~1946)이 도시 재건과 정비에 힘쓰면서 쿠알라룸푸르가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해 셀랑고르주의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하였다.

1880년 3월 영국은 행정중심지를 클랑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옮기면서 쿠알라룸푸르가 셀랑고르주(州)의 주도가 되었다. 1886년 클랑(Klang)과 쿠알라룸푸르를 잇는 철도가 건설되었고,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인구가 늘고 도시가 빠르게 발전하였다. 1884년 쿠알라룸푸르의 인구는 4,500명이었으나 1890년 20,000명으로 증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농촌지역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반란과 불안한 치안 때문에 도시지역으로의 이주도 증가하였다. 이러한 인구의 대도시 집중현상으로 쿠알라룸푸르는 과밀화와 슬럼화 등의 문제를 겪었다. 밀려드는 거주민들을 위한 주거단지 개발이 필요해면서 1950년대부터 수도 주변에 페탈링자야(Petaling Jaya), 샤알람(Shah Alam), 수방자야(subang Jaya) 등 신도시가 개발되었다. 계획에 따라 개발된 신도시들은 클랑 밸리(Klang Valley)라 불리며 쿠알라룸푸르를 둘러싸고 있고 육상교통과 전철로 도심과 연결되어 메가시티를 형성하게 되었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를 말레이 연합주(聯合州)의 수도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인구가 10만 정도였으나 말레이 연합주의 수도로 지정된 후 발전을 거듭하였고, 1972년 도시 지위를 획득하고 첫번째 시장이 임명되었다. 1974년 연방 정부 직할 지역으로 지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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