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 역사
1769년 티모르섬을 점령했던 포르투갈이 식민수도를 리파우(Lifau)에서 딜리로 이전한 이래로 딜리는 주요 항구, 행정 및 경제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점령기(1975~1999) 동안 동티모르 영토 전체가 인도네시아의 25번째 주로 편입된 이래로, 주도로 기능하기 시작한 딜리에는 인도네시아의 집중적인 인프라 개발이 이루어졌다. 딜리는 동티모르의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2배 이상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는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 경제에 빠르게 편입시키기 위한 전략이었으나 내부 식민지로 인구 통제와 약탈 경제의 목적이 컸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 위기와 기후위기와 인재가 겹친 가뭄으로 극신한 경제적 혼란이 있었다. 동티모르 국민은 1999년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였으나, 친인도네시아 자치파 민병대와 인도네시아 군인들의 살상·방화·약탈로 인해 딜리의 정치와 경제는 보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하였다. 1999년 이후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동티므로의 평화재건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후에야 딜리의 상황은 안정될 수 있었다.
딜리의 재건에서 중핵을 담당한 것은 국제연합(UN) 차원의 개입이었는데, 이러한 재건 활동의 상당수가 수도 딜리에 집중되었다. 구체적으로 일자리의 65%, 평화구축 및 국가재건 사업에 따른 경제적 수익의 80%가 딜리에서 이루어졌다. 2006년의 국가경제 통계는 국가의 비석유부문 국내총생산(GDP) 절반을 딜리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독립 이후 경제성장과 재분배의 지역적 불균형이 심화되었음을 방증한다. 동티모르의 경제 회복은 원조 등의 외부 자원에 의존적이었고, 유엔동티모르통합임무단(UN Integrated Mission in Timor-Leste: UNMIT)이 2012년 12월 31일 임무 종결을 선언하고, 해체되면서 딜리 경제는 침체기를 겪었다.
경제활동이 딜리에 집중되면서 도시화가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농업국가이 속성이 강한 동티므로에서 지역의 농업발전은 오히려 쇠퇴하여 식량부족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소규모 자경농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농업경제 구조는 생산성이 낮았다. 또한 일자리를 찾아 수도 딜리로 인구가 몰리면서 농촌 인구가 감소하여 식량생산량은 더 낮아졌고, 그에 따라 수도 딜리에서마저 식량부족 문제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실업률 역시 높은 편인데 2016년 기준으로 딜리의 실업률은 16.1%로 농촌 7.4%에 비하여 두 배 이상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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