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서사

[ narrative , 敍事 ]

일반적으로 서사(敍事)는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글의 양식을 말한다. 서사는 인간 행위와 관련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언어적 재현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 외적인 영역에도 다양한 형태의 서사가 존재한다. 신문의 사건 기사와 취재 일지, 그리고 역사의 기록물들은 모두 서사에 속한다. 의사가 쓴 환자의 병상 기록이나 과학자의 실험 일지, 예술가의 공연 일지도 넓은 의미에서 모두 서사에 속한다. 이런 식으로 나열한다면 서사는 모든 인간 활동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양식으로서의 서사는 이러한 사실과 경험을 다루는 경험적(經驗的) 서사가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허구적(虛構的) 서사를 말한다. 허구적 서사는 서사를 구성하는 허구성의 원리 자체가 미적 형상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문학적 서사가 된다. 그러나 경험적 역사적 서사는 사건에 담겨지는 정보의 실재성 자체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미적 형상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문학적 서사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소설이다. 소설은 어떤 일련의 사건들을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화자(話者)가 청자(聽者)에게 말해주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러므로 소설에는 이야기를 말해주는 화자가 있고 화자에 의해 말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화자는 이야기를 실제의 사실처럼 말해주는 서술 행위의 책임을 맡는다. 소설의 화자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영역에 위치한다. 예컨대 소설이라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실재적인 화자는 작가이다. 작가는 이야기인 텍스트를 실재적인 독자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서사 내적인 상황에서 화자는 텍스트 내적 세계의 한 영역을 담당하는 허구적인 이야기꾼이다. 여기서 화자는 서사의 내용이 되는 이야기를 텍스트의 세계에 존재하는 허구적인 청자에게 전달한다. 작가/독자, 그리고 화자/청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통구조는 그러므로 텍스트 외적인 실재 공간과 텍스트 내적인 허구적 공간이라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공간에 자리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 관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마치 화자인 것처럼 이야기를 말하고 독자는 마치 자신이 청자인 것처럼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므로 서사에서 화자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에 참여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예컨대 이야기의 내용 속에 등장하는 작품 내적 화자와 이야기의 외부에서 이야기를 말해주는 작품 외적 화자가 있을 수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언제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때와 장소는 이야기의 구성과 그 진행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시간과 공간의 결합이 없이는 서사 자체의 성립이 불가능하다. 경험적인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서사에서 시간과 공간은 실재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 서사는 이미 일어난 것에 기초하여 그 사실의 실재성을 재현하고 전달한다. 그렇지만, 소설과 같은 허구적 서사는 이와 다르다. 허구적 서사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마치 일어났던 것처럼 꾸며내기 위해 인물을 만들어 어떤 행위를 꾸며내고 그 행위에 시간과 공간의 구체성을 부여한다. 허구적 서사의 시간과 공간은 실재의 때와 장소가 아니라 가공의 시간과 공간이다. 허구적 서사에서 이야기 내용에 실재성을 부여하기 위해 가공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고 실제의 일처럼 꾸며내는 행위, 이것이 바로 형상화이다. 이 형상화의 원리에 근거하여 소설은 허구적 서사로서 문학적 양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