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역사: 조지아공화국의 복원

조지아의 역사: 조지아공화국의 복원

1991년 4월 소련이 붕괴되면서 '조지아 최고 소비에트(Supreme Council of Georgia)'는 독립을 선언하고, 한 달 뒤 선거를 통해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Zviad Gamsakhurdia)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991년 12월 국가경비대(National Guards)와 기사단(Mkhedrioni)이라 불리는 무장조직이 연합하여 쿠데타을 일으켜 이후 4년간 내전을 치렀다. 결국 1995년 조지아 출신으로 소련의 마지막 외무부장관을 지낸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대통령에 오르며 혼란이 수습되었다. 세바르나제 대통령은 취임 후 친미노선을 취하여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과 함께 많은 군사적 지원도 받았다. 그러나 세바르나제 측근의 부패와 2003년 선거에서 부정혐의를 받게 되면서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로 이른바 장미혁명(Rose Revolution)이 일어나 세바르나제는 하야하였다.

이후 2004년 장미혁명을 주도한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조지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군사력을 증강하였다. 남부의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은 전임 대통령 시절부터 중앙정부에 맞서 독자적인 노선을 취하다 결국 조지아와 무력충돌 위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아자리야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유화적 조치로 일단락되었다. 샤카슈빌리 대통령은 초기 개혁노선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재선 이후 권력남용과 부패로 국민의 신임을 잃어 2013년 3선에 실패하였고, 이후 우크라이나로 망명하여 오데사(Odessa)의 주지사를 역임하였다.

한편 조지아는 독립 후 아브하지아와 남오세티아 문제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며 정치적으로 큰 위기를 겪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조지아가 독립하였지만 북부의 아브하지아와 남오세티아는 소련의 자치구(oblasts) 지위를 유지하여 조지아와 분리되었다. 1991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Zviad Gamsakhurdia)는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취임 후 아브하지아와 남오세티아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본 지역과 긴장이 야기되었다. 결국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아브하지아와 남오세티아는 독립을 선언하면서 조지아인과 격렬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아브하지아에서는 1992∼1993년 기간 아브하지아 분리주의자와 체젠(Chechens)을 포함한 주변 캅카스 민족이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해 약 23만∼25만명의 조지아계 주민이 추방되었다. 같은 기간 남오세티아에서도 현지 주민과 조지아계간의 충돌로 약 2만 3천여 명의 조지아계 주민이 조지아로 피신하였고, 많은 오세티아인들도 전쟁을 피해 러시아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아브하지아와 남오세티아의 분리주의 운동 지원과 조지아의 친미정책으로 양국간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조지아내 모든 군사시설을 폐쇄하고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러시아와 조지아는 2008년 남오세티아 문제를 두고 전쟁을 벌여 조지아가 일방적으로 패퇴하였다.

조지아는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곧 빠르게 회복하여 2010년대 들어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안전한 치안을 내세워 관광국가로 대대적인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지아는 유럽대륙에서 보기 힘든 웅장한 산맥과 깨끗한 공기 그리고 풍부한 문화유산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신흥 관광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참조항목

아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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