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 원자가

혼합 원자가

[ mixed-valency ]

목차

개요

하나의 화합물 안에 서로 다른 산화수를 갖는 원소가 여러 개 있을 때 혼합 원자가(mixed-valency)라고 부른다. 산화수가 다른 원자 사이의 전자 교환 방식인 원자가 사이 전하 이동(inter-valence charge transfer, IVCT)으로 인해 가시광선과 근적외선 영역에서 강한 색을 띠며, 무한 네트워크 구조에서는 금속처럼 전기 전도성을 갖기도 한다. +5의 전하를 두 개의 루테늄 이온이 나눠 갖는 이핵 착화합물인 크로이츠-타우비(Creutz-Taube) 이온, 산화철(II, III)로 알려진 Fe3O4(= FeIIFeIII2O4), 프러시안 블루(FeIII4[FeII(CN)6]3)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생체 내에서 전자 전달에 참여하는 철-황 뭉치(iron-sulfur cluster) 보조 인자도 철(II)/철(III) 산화 상태가 뒤섞여 있는 마름모 또는 정육면체 모양의 혼합 원자가 다핵 착화합물이다.

혼합 원자가 전이금속 착화합물의 대표적 사례인 크로이츠-타우비 이온의 화학구조와 X-선 결정 구조(CCDC 코드: 1122590, 왼쪽), 생체 전자전달에 관여하는 4Fe-4S 뭉치의 화학구조와 X-선 결정 구조(PDB 코드: 1FCA, 오른쪽) (출처:대한화학회).

대표적 사례: 크로이츠-타우비 이온

피라진(pyridine)을 다리(bridging) 구성 리간드로 하고 두 개의 루테늄 이온이 마주 보고 있는 이핵 착화합물 [(H3N)5Ru(µ-C4H4N2)Ru(NH3)5]5+을 크로이츠-타우비 이온이라고 부른다. 이 분자를 처음 합성한 크로이츠(C. Creutz)와 지도교수였던 타우비(H. Taube)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암민(ammine, NH3)이나 피라진과 같은 베르너 형태(Werner-type)의 리간드는 산화-환원 활성이 없기에 전체 전하 +5를 두 개의 금속이 나눠 갖기 위해서는 한쪽은 루테늄(II), 다른 쪽은 루테늄(III)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다양한 분광학 방법으로 분석해 보니 두 개의 금속 중심이 똑같은 전자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합해서 +5의 전하를 갖는 두 개의 루테늄이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즉 동등한(equivalent) 배위 환경에 있으려면 각각 +2.5라는 다소 생소한 산화수를 가져야 한다. 크로이츠-타우비 이온을 비롯한 다양한 금속 착화합물을 이용해서 전자 전달 반응의 메커니즘과 구조-반응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평생에 걸쳐 연구한 타우비는 1983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1)

혼합 원자가의 분류법

혼합 원자가 화합물은 원자가의 편재(localization) 정도에 따라 로빈-데이(Robin-Day) 분류법을 이용해서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2) 원자가 전자가 항상 편재하기 때문에, 두 개의 산화-환원 중심이 갖는 서로 다른 산화수를 뚜렷이 구별할 수 있는 경우를 '클래스(class) I'이라고 부른다. 두 종류의 구리 이온(= Cu+; Cu2+)이 있는 [Cu(en)2][CuBr2]2나 두 종류의 코발트 이온(= Co2+; Co3+)이 있는 [Co(NH3)6]2[CoCl4]3와 같은 착화합물이 여기에 속한다(여기서 'en'은 두 자리 리간드 에틸렌다이아민(H2NCH2CH2NH2)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반면에 두 핵 사이에 전자가 완전히 비편재화(delocalization) 되기 때문에 산화수 면에서는 두 핵을 서로 구별할 수 없는 경우를 '클래스 III'이라고 부른다. 산화수의 합은 +5인 두 개의 루테늄 이온이 직접 금속-금속 결합은 하고 있지 않지만, 다리 구성 리간드를 통해 원자가 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산화수를 갖는 크로이츠-타우비 이온이 여기에 해당한다.

작은 활성화 에너지를 사이에 두고 전자가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는 비편재화된 클래스 III처럼 보이지만, 낮은 온도에서는 서로 다른 두 원자가를 구별할 수 있는 클래스 I처럼 거동하는 혼합 원자가를 '클래스 II'라고 부른다. 대표적 사례로 Fe4[Fe(CN)6]3·4H2O 착화합물이 있다.

혼합 원자가의 이론적 설명

혼합 원자가 화합물에서 산화-환원 활성이 있는 두 자리를 @@NAMATH_INLINE@@ \mathrm{A} @@NAMATH_INLINE@@와 @@NAMATH_INLINE@@ \mathrm{B} @@NAMATH_INLINE@@라고 놓고, 가령 산화 철을 예로 들면 높은 산화수(Fe3+)를 '+', 낮은 산화수(Fe2+)를 '-'로 표시하면, @@NAMATH_INLINE@@ \mathrm{A^+ B^-} @@NAMATH_INLINE@@ 또는 @@NAMATH_INLINE@@ \mathrm{A^- B^+} @@NAMATH_INLINE@@의 두 가지 구조가 가능하다.3) 만일 @@NAMATH_INLINE@@ \mathrm{A} @@NAMATH_INLINE@@ 자리와 @@NAMATH_INLINE@@ \mathrm{B} @@NAMATH_INLINE@@ 자리의 대칭성이 다르면 @@NAMATH_INLINE@@ \mathrm{A^+ B^-} @@NAMATH_INLINE@@와 @@NAMATH_INLINE@@ \mathrm{A^- B^+} @@NAMATH_INLINE@@의 상태를 표현하는 두 파동함수는 서로 섞이지 않고 별개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NAMATH_INLINE@@ \mathrm{A} @@NAMATH_INLINE@@ 자리가 낮은 산화수, @@NAMATH_INLINE@@ \mathrm{B} @@NAMATH_INLINE@@ 자리가 높은 산화수를 갖는 경우를 선호한다면, 바닥 상태의 파동함수는 @@NAMATH_INLINE@@ \phi_{\mathrm{A}}^- \phi_{\mathrm{B}}^+ @@NAMATH_INLINE@@로 표현할 수 있다. 만일 @@NAMATH_INLINE@@ \mathrm{A} @@NAMATH_INLINE@@ 자리에서 @@NAMATH_INLINE@@ \mathrm{B} @@NAMATH_INLINE@@ 자리로 전자가 하나 옮겨가게 되어 들뜬 상태로 전이할 수 있다면 들뜬 상태는 @@NAMATH_INLINE@@ \phi_{\mathrm{A}}^+ \phi_{\mathrm{B}}^- @@NAMATH_INLINE@@라는 파동함수로 나타낸다. 바닥 상태이든 들뜬 상태이든 두 자리가 갖는 산화수를 뚜렷이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클래스 I에 해당한다.

만일 @@NAMATH_INLINE@@ \mathrm{A} @@NAMATH_INLINE@@와 @@NAMATH_INLINE@@ \mathrm{B} @@NAMATH_INLINE@@ 자리의 대칭성이 같으면 @@NAMATH_INLINE@@ \phi_{\mathrm{A}}^- \phi_{\mathrm{B}}^+ @@NAMATH_INLINE@@와 @@NAMATH_INLINE@@ \phi_{\mathrm{A}}^+ \phi_{\mathrm{B}}^- @@NAMATH_INLINE@@ 파동함수는 서로 섞일 수 있고, 바닥 상태의 전자 구조는 이 둘 사이의 선형 결합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NAMATH_DISPLAY@@\sqrt{1 - \alpha^2} \left( \phi_{\mathrm{A}}^- \phi_{\mathrm{B}}^+ \right) + \alpha \left( \phi_{\mathrm{A}}^+ \phi_{\mathrm{B}}^- \right) @@NAMATH_DISPLAY@@

여기서 산화-환원에 관여하는 @@NAMATH_INLINE@@ \mathrm{A} @@NAMATH_INLINE@@와 @@NAMATH_INLINE@@ \mathrm{B} @@NAMATH_INLINE@@ 자리가 얼마나 비슷한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혼합 계수 @@NAMATH_INLINE@@ \alpha @@NAMATH_INLINE@@가 결정된다. 만일 유사성이 하나도 없다면 @@NAMATH_INLINE@@ \alpha = 0 @@NAMATH_INLINE@@인 클래스 I이 된다. 두 자리가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환경에 있다면 @@NAMATH_INLINE@@ \alpha @@NAMATH_INLINE@@가 작더라도 0이 아니기 때문에 클래스 II에 해당한다. @@NAMATH_INLINE@@ \alpha @@NAMATH_INLINE@@ 값이 @@NAMATH_INLINE@@ \frac{1}{\sqrt{2}} @@NAMATH_INLINE@@인 경우에는 @@NAMATH_INLINE@@ \mathrm{A} @@NAMATH_INLINE@@와 @@NAMATH_INLINE@@ \mathrm{B} @@NAMATH_INLINE@@ 자리를 구별할 수 없는 클래스 III이 된다.

전자 전달 반응으로 이해하는 혼합 원자가

혼합 원자가 화합물의 특성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결정한다. 하나는 산화-환원 활성이 있는 두 자리 사이의 전자적 상호작용(@@NAMATH_INLINE@@ H_{\mathrm{AB}} @@NAMATH_INLINE@@, electronic coupling matrix element)이며, 다른 하나는 전자 전달에 따르는 구조 변화에 관계된 재배열 에너지(reorganization energy, @@NAMATH_INLINE@@ \lambda @@NAMATH_INLINE@@)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클래스 I의 경우 @@NAMATH_INLINE@@ H_{\mathrm{AB}} @@NAMATH_INLINE@@ 값이 0이 되기 때문에 전자가 편재화되어 서로 다른 산화수를 뚜렷이 구별할 수 있다.4)

전자 전달 반응 좌표계로 표현한 혼합 원자가의 분류. 반응 좌표계에서 x = 0은 반응물 (예: @@NAMATH_INLINE@@ \phi_{\mathrm{A}}^- \phi_{\mathrm{B}}^+ @@NAMATH_INLINE@@), x = 1은 생성물(예: @@NAMATH_INLINE@@ \phi_{\mathrm{A}}^+ \phi_{\mathrm{B}}^- @@NAMATH_INLINE@@)에 각각 해당한다 (출처:대한화학회).

만일 @@NAMATH_INLINE@@ H_{\mathrm{AB}} @@NAMATH_INLINE@@ 값이 0이 아니면 두 파동함수가 서로 섞이게 되고(위의 설명 참조), 에너지 좌표계의 중간 점(x = 0.5)에 @@NAMATH_INLINE@@ 2H_{\mathrm{AB}} @@NAMATH_INLINE@@의 에너지 차이를 갖는 새로운 퍼텐셜 에너지 표면이 생긴다. 반응 좌표계와 위치 에너지의 그래프인 퍼텐셜 우물(potential well)에 두 개 (x = 0; x = 1)의 극소점은 그대로 존재하며, 클래스 II에 해당한다.

두 산화-환원 자리 사이의 상호작용(@@NAMATH_INLINE@@ H_{\mathrm{AB}} @@NAMATH_INLINE@@)이 아주 크면(@@NAMATH_INLINE@@ 2 H_{\mathrm{AB}} \geq \lambda @@NAMATH_INLINE@@), 퍼텐셜 우물에는 하나의 최소 점 (x = 0.5)만 존재하며 전자는 완전히 비편재화되기 때문에 클래스 III이 된다.

참고 자료

1.
2. Robin, M. B.; Day, P. Mixed Valence Chemicstry. Adv. Inorg. Chem. Radiochem. 1967, 10, 247–422.
3. Gispert, J. R., Coordination Chemistry. Wiley–VCH: Weinheim, 2008.
4. Hankache, J.; Wenger, O. S. Organic Mixed Valence. Chem. Rev. 2011, 111, 5138–5178.

동의어

혼합 원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