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화

함화

[ 咸和 ]

요약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 동진의 성제가 사용한 연호(326~334년).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동진(東晉)의 제3대 황제인 성제(成帝) 사마연(司馬衍, 재위 325~342) 때의 첫 번째 연호이다. 326년 음력 2월부터 334년 음력 12월까지 9년 동안 사용되었다.

성제 사마연은 325년( 3) 10월 18일(윤8월 25일)에 아버지 (明帝) 사마소(司馬紹)가 27세의 나이로 죽자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명제의 장례를 마친 성제는 이듬해인 326년(태녕 4) 음력 2월에 대사면을 실시하며,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태녕(太寧)’에서 ‘함화(咸和)’로 바꾸었다. 성제 사마연은 제위에 올랐을 때 나이가 5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태후(皇太后) 유씨(庾氏)가 이 되었고, 사도(司徒) 왕도(王導)와 중서령(中書令) 유량(庾亮)이 보정대신(輔政大臣)으로서 국정을 주도했다.

함화 연간인 327년(함화 2) 음력 11월 역양태수(歷陽太守) 소준(蘇峻)과 예주자사(豫州刺史) 조약(祖約)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음력 12월에는 팽성왕(彭城王) 사마웅(司馬雄)과 장무왕(章武王) 사마휴(司馬休)도 반란을 일으켰다. 동진 조정은 유량을 정토도독(征討都督)으로 삼아 토벌군을 보냈으나 반군에 잇달아 패했다. 그래서 328년(함화 3) 음력 2월 소준의 군대가 도성에 침입해 약탈을 저지르기도 했다. 소준은 그 해 음력 5월 성제를 석두성(石頭城)으로 보내 유폐시켰으나, 치감(郗鑒)과 도간(陶侃) 등이 이끄는 토벌군에 패해 죽었다.

성제는 335년 음력 1월에 대사면을 실시하며,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咸康)’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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