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

인가

[ 麟嘉 ]

요약 중국 5호16국시대 후량의 여광이 사용한 연호(389〜396년).

중국 5호16국시대 저족(氐族)이 세운 왕조인 후량(後涼)의 제1대 황제 의무제(懿武帝) 여광(呂光, 재위 386~399) 때의 두 번째 연호이다. 389년 음력 2월부터 396년 음력 6월까지 8년 동안 사용되었다.

여광은 389년( 4) 음력 2월 스스로 ‘삼하왕(三河王)’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태안(太安)’에서 ‘인가(麟嘉)’로 바꾸었다. 인가 연간인 395년(인가 7) 여광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걸복부(乞伏部) (鮮卑族)이 세운 (西秦)을 공격했다. 서진의 (乞伏乾歸)는 좌보장군(左輔將軍) 밀귀주(密貴周)의 건의로 아들인 걸복칙발(乞伏敕勃)을 인질로 보내며 후량에 군신관계로 복속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광이 군대를 철수시키자 걸복건귀는 밀귀주를 죽이고 다시 후량에 맞섰다.

여광은 396년(인가 8) 음력 6월 천왕(天王)의 칭호를 사용하며, 국호를 ‘대량(大凉)’으로 하였다. 아울러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龍飛)’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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