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흥

태흥

[ 太興 ]

요약 중국 5호16국시대 북연의 풍홍이 사용한 연호(431~436년).

중국 5호16국시대에 북연(北燕)의 제3대 황제인 소성제(昭成帝) 풍홍(馮弘, 재위 430~436) 때의 연호이다. 431년 음력 1월부터 436년 음력 5월까지 6년 동안 사용되었다.

풍홍은 430년( 22) 형인 문성제(文成帝) (馮跋)이 병이 들자, 풍발의 후궁인 송씨(宋氏) 부인과 풍수거(馮受居)의 모반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이끌고 궁으로 진입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풍발이 죽자, 태자인 풍익(馮翼)을 비롯한 풍발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천왕(天王)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즉위한 뒤에 431년 음력 1월 연호를 ‘태평(太平)’에서 ‘태흥(太興)’으로 바꾸고, 그 해를 원년으로 하였다.

태흥 연간인 432년(태흥 2)에 풍홍은 후연(後燕)의 황족 출신인 모용씨(慕容氏)를 천후(天后)로 삼았다. 그러자 폐출된 왕씨(王氏) 부인이 낳은 풍숭(馮崇)・풍랑(馮朗)・풍막(馮邈) 등이 (北魏)로 망명했고, 북위는 지배층의 내분을 이용해 북연 공격에 나섰다. 북위의 잇따른 공격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자 풍홍은 남조(南朝) 송(宋)나라에 사신을 보내 군신관계를 칭하며 지원을 청했으며, 이웃한 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내 436년(태흥 6) 음력 5월 풍홍은 북위의 공격을 피해 도성인 용성(龍城, 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을 포기하고 고구려로 망명했다. 이로써 북연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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