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

건원

[ 建元 ]

요약 중국 5호16국시대 전진의 부견이 사용한 연호(365〜385년).

중국 5호16국시대에 저족(氐族)이 세운 왕조인 전진(前秦)의 제3대 황제 부견(苻堅, 재위 357〜385) 때의 세 번째 연호이다. 365년 음력 1월부터 385년 음력 8월까지 21년 동안 사용되었다.

부견은 364년( 6) 음력 9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북방으로 출정하였고, 이듬해인 365년 음력 1월에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감로(甘露)’에서 ‘건원(建元)’으로 바꾸었다. 365년(건원 1) 부견은 흉노(匈奴) 철불부(鐵弗部)의 수장인 유위진(劉衞辰)을 공격해 복속시켰다. 367년(건원 3) 음력 10월 선대 황제 (苻生)의 형제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부견은 368년(건원 4) 음력 1월 양성세(楊成世)・모숭(毛嵩)・등강(鄧羌)・왕맹(王猛)・장자(張蚝)가 이끄는 토벌군을 각지로 보내 그 해 말까지 반란을 모두 진압했다.

건원 연간에 전진은 (前燕)・(前涼)・대국(代國) 등을 잇달아 멸망시키며 화북 지역을 통일했다. 370년(건원 6)에는 업성(鄴城)을 함락시켜 전연을 멸망시켰고, 376년(건원 12)에는 고장(姑臧)을 점령해 전량을 병합했으며, 선비 탁발부(拓跋部)가 세운 대나라도 멸망시켰다. 화북 지역의 통일을 완성한 부견은 남하에 나서 378년(건원 14) 양양(襄陽)을 공격해 점령했다. 그리고 383년(건원 19) 대군을 이끌고 직접 출정하여 동진(東晉)을 공격했으나, 비수대전(淝水大戰)에서 동진의 사현(謝玄)에게 크게 패했다. 그 뒤 전진에 복속해 있던 (鮮卑族)・강족(羌族)・정령족(丁零族)이 각지에서 자립하여 (後燕)・(後秦)・(西秦)・(西燕) 등을 잇달아 건국하면서 화북 지역은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부견은 385년(건원 21) 서연의 군대가 장안을 공격해오자 오장산(五將山)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음력 7월에 후진의 장수인 오충(吳忠)에게 붙잡혀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빈저우[彬州]인 신평(新平)으로 압송되어 유폐되었다. 그러자 장안에 남아 있던 태자 부굉(苻宏)은 동진에 투항했다.

부견의 서장자 (苻丕)는 385년 음력 8월에 진양(晋陽, 지금의 산시성 타이위안)에서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太安)’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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