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우스 리차드 자야와르데네

주니우스 리차드 자야와르데네

[ Junius Richard Jayewardene ]

요약 스리랑카에서 법률가이자 공직자로 활동한 정치인이다. 제2대 스리랑카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출생-사망 1906.9.17 ~ 1996.11.1
국적 스리랑카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영국령 실론 콜롬보
시대 20세기

주니우스 리차드 자야와데네는 1906년 영국령 실론 콜롬보에서 대법원 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 콜롬보 대학에 입학하여 영어, 라틴어, 논리학, 경제학 등을 공부하였고, 1932년 콜롬보의 실론 로스쿨을 졸업하고 1943년까지 법정 변호사로 활동했다. 젊은 시절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하였고, 실론의 민족주의 운동을 위한 조직인 CNC(Ceylon National Congress)에서 활동하였다. 

자야와데네는 1943년에 국회에 선출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47년 치러진 제1차 총선에서 CNC는 통일국민당(United National Party, UNP)으로 재결집하여 하원에서 최다 의석을 차지하였다. 1948년 2월 4일 스리랑카가 영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통일국민당이 구성한 독립 정부 하에서 D. S. 세나나야케(D.S. Senanayake) 초대 총리는 자야와데네를 재무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 후 D. S. 세나나야케의 아들인 뒤들리 세나야케(Dudley Senanayake) 정부 하에서 재무장관(1948–53, 1960), 식량농업장관(1953–56), 국무장관(1965–70) 등 정부 고위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973년 젊은 세나나야케가 사망하면서 자야와데네는 통일국민당을 이끌었고 1977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972년 스리랑카 헌법이 불교를 공식적으로 국교로 인정하면서, 타밀인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한편, 1977년 총리로 임명된 자야와데네는 타밀족 거주 지역에서는 타밀어를 ‘국어’로서 인정하였다. 또한, 총리로서 헌법을 개정하여 스리랑카 대통령의 집행 권한을 강화하였으며, 1978년 자신이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강화된 권력을 행사하였다. 대표적으로, 자야와데네는 스리랑카의 수도를 콜롬보에서 스리 자야와르데네푸라로 이전하였다. 또한 콜롬보 북쪽에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하고 민간부문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스리랑카가 사회주의로 회귀하는 흐름을 뒤집었다. 수출지향적 기업 육성을 촉진하고 수출품 처리지역을 관리하기 위하여 대콜롬보경제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경제개방 정책을 통해 국내외 투자 유치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쌀 배급제 등 무료 지원정책을 폐지하고 새로운 복지체계를 도입하였다. 또한, 민간이 주도하는 발전을 강조하기 위해 소규모 농업인과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 농촌신용계획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중장기 신용계획을 도입하였다.

자야와데네는 임기 동안 대규모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도 착수하였다. 도시와 농촌 지역의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광범위한 주택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대형수력발전 프로젝트와 트랜지스터 운하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도 시행되었다. 한편, 당시 스리랑카의 다수민족인 불교도 싱할라족과 소수인 힌두교 타밀족 사이의 갈등으로 1980년대 초 일부 타밀족 단체들의 게릴라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자야와데네는 타밀 분리주의 운동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반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과 군사력 동원에서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는다.

자야와데네는 1982년 재선에 성공하여 1989년까지 재임하였다. 1948년 영연방으로부터 독립한 후 30년 동안 스리랑카의 경제는 거의 성장하지 못했는데, 자야와데네의 경제개혁 이후 견고한 성장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좋은 평가받고 있다. 1996년 11월 1일, 콜롬보에서 90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