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흥

연흥

[ 延興 ]

요약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의 제7대 황제인 효문제 때 사용한 연호(471〜476년).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北魏)’나 ‘탁발위(拓跋魏)’라고 불리는 북조(北朝) 위(魏)나라의 제7대 황제인 효문제(孝文帝) 탁발굉(拓跋宏, 원굉, 재위 471〜499) 때의 첫 번째 연호이다. 471년 음력 8월부터 476년 음력 6월까지 6년 동안 사용되었다.

효문제는 471년( 5) 9월 20일(음력 8월 20일) 아버지 헌문제(献文帝) (拓跋弘)에게 양위를 받아서 5세의 어린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그는 즉위한 뒤에 대사면을 실시하며,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황흥(皇興)’에서 ‘연흥(延興)’으로 바꾸었다. 연흥 연간에 태상황제(太上皇帝)의 지위로 물러난 헌문제는 을 하던 태황태후(太皇太后) 풍씨(馮氏)과 조정의 실권을 놓고 대립하였다. 헌문제는 472년(연흥 2) 직접 원정에 나서 유연(柔然)을 물리치기도 했으나, 476년(연흥 6) 7월 20일(음력 6월 13일)에 23세의 나이로 죽었다.

헌문제가 죽자 효문제는 476년 음력 6월에 대사면을 실시하며,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承明)’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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