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가키야마성

이시가키야마성

[ Ishigakiyama Castle , 石垣山城(석원산성) ]

요약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오다와라 시[小田原市]에 있던 성으로, 현재 성터와 일부 유적이 남아 있다. 간토 지방 최초로 완전한 석축을 쌓은 성이다. 1959년에 국가지정사적이 되었다.
원어명 いしがきやまじょう

1590년 무장 [豐臣秀吉]가 [小田原城]에서 서쪽으로 3km에 있는 가사가케산[笠懸山] 정상에 세운 산성(山城)이다. 이시가키야마성을 짓고 난 후 산 이름을 이시가키산[石垣山]이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시가키야마성은 간토[関東] 지방 최초로 완전한 석축(石築)을 쌓은 성으로, 석공 기술자 집단인 아노슈[穴太衆]가 큰 자연석을 쌓고 작은 자갈 등으로 사이를 채우는 노즈라즈미[野面積み] 방식을 사용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규슈[九州]를 평정하고 일본 서부를 장악한 다음 사이에 전투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오다와라[小田原] 지역의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가 이를 어기고 1589년에 [名胡桃城]을 무단으로 탈취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호조 가문에 선전포고를 하고 15만 대군을 이끌고 오다와라 정벌에 나섰다. 이때 이시가키야마성을 축성하고 본진으로 삼았다.

이시가키야마성은 이시가키야마이치야성[石垣山一夜城(이시가키야마 하룻밤 성)]이라고도 불린다. 성을 지을 때 오다와라성 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무성한 숲 속에서 공사를 한 다음, 성이 완공된 후 성 주위 나무를 밤 사이에 베어내 성이 드러나도록 하였다. 오다와라성의 군사들은 하룻밤 만에 성이 완성된 것으로 알고 놀라서 사기를 잃었다고 한다. 실제 공사는 3~4만 명을 동원해 약 80일이 걸렸다고 한다.

성터는 1936년 2월 [富士箱根伊豆国立公園]으로 정비하였고, 1959년 5월 국가지정사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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