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

홍무

[ 洪武 ]

요약 중국 명나라의 초대 왕인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 때의 연호(1368~1398년).

중국 명나라의 제1대 황제인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 때의 연호이다. 1368년부터 1398년까지 31년 동안 사용되었다.

원나라 말기에 도(白蓮教徒)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홍건(紅巾)의 난(亂)’에 참여했던 주원장은 (郭子興)의 부대에서 활동하다가, 곽자흥이 죽자 그의 세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1356년에는 남경(南京)을 점령해서 세력을 크게 확대했다. 뒤이어 1363년에는 (陳友諒)의 세력에 승리했고, 1367년에는 (張士誠)의 세력에도 승리하여 강남 지역을 모두 평정했다. 그 뒤 그는 1368년 정월에 응천부(應天府)로 이름을 바꾼 남경에서 스스로 제위에 오르고, 국호를 대명(大明), 연호를 홍무(洪武)라고 하였다.

곧바로 북벌에 나선 명나라 주원장은 1368년(홍무 1) 8월에 원나라의 도읍이던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를 점령하고 그곳에 북평부(北平府)를 두었다. 그리고 1371년(홍무 4)에는 쓰촨[四川] 지역에 있던 대하국(大夏國)을 멸망시키고, 1381년(홍무 14)에는 윈난[雲南] 지역을 점령했다. 나아가 1388년(홍무 21)에는 (北元)도 실질적으로 멸망시켰다.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운 뒤에 맏아들인 (朱標)를 황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그가 1392년(홍무 25)에 죽자, 주표의 맏아들인 주윤문(朱允炆)을 황태손으로 봉해 후계자로 삼았다. 1398년(홍무 31) 6월 24일 주원장이 죽자, 그해 6월 30일에 황태손인 주윤문이 왕위에 올라 이듬해인 1399년부터 건문(建文)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주원장의 넷째아들 연왕(燕王) 주체(朱棣)가 1399년(건문 1)에 이른바 ‘(靖難之變)’을 일으켰다. 1402년(건문 4) 7월에 조카인 (建文帝) 주윤문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永樂帝) 주체는 건문제 때의 연호인 ‘건문’을 인정하지 않고, 1399년(건문 1)부터 1402년(건문 4)까지를 홍무 32년∼35년으로 부르게 했다. 하지만 명나라 제13대 황제인 (萬曆帝) 때인 1595년(만력 23)에 건문 연호는 다시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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