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 Agalmatolite Reliquary from the Stone Seated Vairocana Buddha from Seongnamamsa Temple Site, Sancheong ,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

요약 경상남도 지리산에 있던 석남암(石南巖) 터에서 발견된 곱돌로 만든 항아리이다. 1986년 10월 15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지정종목 국보
지정일 1986년 10월 15일
소장 부산시립박물관
관리단체 부산시립박물관
소재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부산시립박물관
시대 통일신라
종류/분류 유물 / 불교공예 / 사리장치
크기 전체 높이(뚜껑 포함) 14.5㎝, 항아리 높이(뚜껑 제외) 12.2㎝, 입지름 9㎝, 배지름 12.3㎝, 밑지름 8.4㎝

경상남도 지리산 해발 902m 고지에 있던 암자 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납석(蠟石)으로 만들어진 항아리이다. 발견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1981년에 현재 소장처인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입수되었다. 크기는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입구 지름 9㎝, 밑지름 8㎝이다.

양식적 특징

항아리 몸체에 별다른 문양은 없다. 그러나 항아리 입구의 하단과 몸체의 중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두 줄의 가로선을 음각으로 새겼다. 뚜껑 윗부분에도 두 줄로 원을 그렸으며 안쪽 가운데에는 연화 문양을 새겼다. 항아리 표면에는 비로자나불 좌상의 조성 내력이 이두 문자로 15행 136자가 음각되어 있다. 항아리의 바닥에도 4행 23자의 명문이 남아 있다. 서체는 행서체가 대부분이고 초서 및 반초서가 섞여 있다. 명문에는 ‘영태 2년 신라 혜공왕 2년’이라는 기년이 있어 이것이 766년에 봉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새겨진 글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며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판독이 가능한데 그에 따르면 승려 법승(法勝)과 법연(法緣)이 죽은 두온애랑(豆溫哀郞)을 위하여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였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함께 봉안하였다고 한다.

처음 이 항아리를 발견한 사람에 따르면 본래 이 속에는 금동으로 만든 장방형 상자가 들어 있었고 그 안에 산화되어 재가 된 종이 뭉치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종이 뭉치는 발견 직후에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항아리 몸체의 명문과 바닥의 명문에 보이는 서체가 달라서 두 개의 명문은 각기 다른 시기에 새겼을 가능성이 있다. 본 유물처럼 불상 대좌의 중대석에 사리를 봉안한 것은 흔한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통일신라 때의 복장(腹臟) 전통일 가능성이 있다.

국가유산 지정 연혁

본래 본 유물은 ‘전(傳) 산청 석남암지 납석사리호’라는 이름으로 198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이후 이 항아리가 경상남도 산청의 내원사에 소재한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의 복장 유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불상과 사리호가 따로 분리되어 국보로 지정될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이에 따라 2016년 산청에 있는 불상은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본 유물은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라는 명칭으로 분리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다.

가치 및 의의

본 유물과 함께 발견된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비로자나불상이다. 이는 적어도 8세기 중엽에 비로자나불상이 출현하였음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다. 특히 본 유물에 보이는 명문을 통하여 비로자나 불상이 766년에 봉안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유물의 가치도 높다. 또한 곱돌 혹은 납석(蠟石)이라 불리는 재질을 사용한 사리장엄구로서도 매우 드문 작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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