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

요약 라켓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사용되었던 겹리드 관악기이다. 원통형의 짧고 굵은 관(pipe) 안에 길고 가느다란 보어(bore)가 여러 겹으로 겹쳐 들어간 구조로 되어있다. 겉에서 보기에는 짧아 보이지만 내부에 있는 관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낮은 소리를 낸다.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했던 라켓은 피루에트(pirouette)가 달렸으며 바로크 시대에 사용했던 라켓은 구부러진 모양의 크룩(crook)이 달려있다.

피루에트가 달린 알토/테너 라켓

분류	관악기 > 겹리드 악기
호른보스텔-작스 분류	공기울림악기(Aerophone, 氣鳴樂器)
최초 제작시기	16세기경
주요 사용 지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주요 사용 명칭	Racket, Rackett, Rankett, Wurstfagott, Stockfagott(독일어), Cervelas(프랑스어)
관련 악기	(조르둔), (뮈제트), (둘시안), (바순), Crumhorn(크룸호른)

1. 라켓

라켓(Racket)은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사용되었던 겹 목관악기이다. 큰 관(pipe) 안에 원통형으로 된 작은 보어(bore, 관)가 여러 겹으로 겹쳐 있다. 즉 관 안에는 아홉 개의 보어가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연결되어 있다.

라켓은 겉에서 보기에는 짧지만 안에 있는 보어의 총 길이가 길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낮은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레이트 베이스(great bass, gross bass, contrabass) 라켓의 경우, 안에 있는 관을 펼치면 약274cm길이가 된다. 일반적으로 폐관(stopped pipe)일 경우 개관(open pipe)보다 한 옥타브 낮은 을 낸다. 라켓은 폐관 구조로 된 원기둥 모양의 보어가 있기 때문에 매우 낮은 음역의 연주가 가능하다.

짧고 굵은 관 안에 가늘고 긴 관이 여러 겹으로 겹쳐 놓인 라켓의 구조는 의 과도 유사하다. 라켓이 좀 더 진보하여 뮈제트의 드론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뮈제트의 드론관

2. 라켓의 어원

라켓은 ‘란켓‘(rankett’)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원래 (organ stop)의 하나인데 라켓이 처음에는 오르간의 음색을 관악기에서 모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음악학자 작스(Curt Sachs, 1881~ 1959)는 란켓이 중세의 인 ‘ranc’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스에 따르면 이 단어는 ‘앞뒤로’(to and fro) 혹은 ‘구부러진’(crooked)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이들(H. Seidl)은 라켓과 란켓이 원래 다른 의미로 쓰여 왔으나 1800년 이후에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라켓’이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의 ‘rochetta’에서 왔는데 이는 ‘바위’, ‘실패’(distaff, 실을 감아 놓은 실패)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초기 형태는 ‘ragget’, ‘rogetten’, ‘Raketpfeiffen’, ‘Racquetten’ 등의 단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베인스(Anthony Baines)는 ‘Raketpfeiffen’, ‘Racquette’이 로켓(rocket)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라켓을 ‘세르블라‘(cervelat)라고 불렀고 이 단어는 후에 ‘cervelas’로 바뀌었다. 메르센(Marin Mersenne, 1588~1648)은 1636~1637년에 라켓을 ‘cervelat à musique’라고 지칭했다. ‘cervelat’는 ‘cerebellum’ 혹은 ‘작은 뇌’(little brain)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cervellato’인데 이는 옛 이탈리아어로 ‘작은 소시지’를 의미한다. 메르센이 라켓을 가리켜 ‘cervelat à musique’ 즉 ‘음악적인 소시지’(musical sausage)라고 한 것은 아마도 라켓의 내부에 좁고 긴 관이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소시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라켓의 별칭인 ‘소시지 바순’(sausage bassoon)이 유래했다. 이에 해당하는 독일어 명칭은 ‘Wurstfagott’이다.

라켓이 등장한 초기에는 이외에도 ‘cortalli’나 ‘cortaldi’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짧은’이라는 뜻의 라틴어 ‘curtus’를 어원으로 한다. 독일어 명칭으로 ‘Stockfagott’과 ‘Faustfagott’도 쓰인다.

3. 르네상스 라켓과 바로크 라켓

라켓은 보통 르네상스 시대에 쓰이던 르네상스 라켓을 가리킨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에 르네상스라켓을 개량한 바로크 라켓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역시 르네상스 라켓과 구분하여 알아둘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 라켓에는 피루에트(pirouette)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피루에트가 있는 르네상스 라켓은 16세기와 17세기 중반까지 중부유럽에서 쓰였다.

르네상스 라켓을 개량한 라켓을 바로크 라켓(Baroque racket), 혹은 바순 라켓(bassoon racket)이라고 한다. 바로크 라켓을 처음 만든 사람은 요한 크리스토프 데너(Johann Christoph Denner, 1655~1707)로 알려져 있다. 1730년 도펠마이어(Doppelmayr)는 당시 유명한 목관악기 제작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데너가 개량된 ‘Rackettenfagotte’를 만들었다고 기록하였다. 바로크 라켓은 피루에트 대신 구부러진 모양의 크룩(crook)이 관과 연결되어 있고 크룩의 끝에 리드가 달려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지공을 여닫기 쉽게 하기 위해 짧게 돌출된 테티네(tetines)가 있다. 바로크 라켓은 현재까지 비교적 많은 수가 남아있다.

르네상스 라켓(왼쪽)과 바로크 라켓(오른쪽)

4. 라켓 콘소트

라켓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1571~1621)의 『음악대전』(Syntagma Musicum)에서 볼 수 있다. 프레토리우스는 이 책에서 각기 다른 크기의 라켓 콘소트(consort: 같은 종류의 악기가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어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것)를 설명하였다. 그가 설명한 라켓 콘소트는 디스칸트(discant) 라켓, 알토/테너(alto/tenor) 라켓, 베이스(bass) 라켓, 그레이트 베이스(great bass)의 구성이다.

구체적인 콘소트의 구성은 길이 12cm인 두 대의 디스칸트 라켓, 25cm의 알토/테너 라켓 세 대, 18cm의 베이스 라켓 한 대, 35cm의 그로스 베이스 라켓 한 대이다.

『음악대전』에 실린 라켓의 도해

아래의 사진은 르네상스 시대의 그레이트 베이스 라켓과 베이스 라켓을 복원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쓰이던 라켓은 상아로 만들었으나 복원한 악기는 나무로 제작되었다.

그레이트 베이스 라켓(왼쪽)과 베이스 라켓(오른쪽)

아래는 『음악대전』 중 라켓에 대한 설명이 있는 부분이다.

프레토리우스는 라켓의 음색을 “빗(comb)을 통해 나오는 바람처럼 조용한 소리를 낸다”고 묘사하였다. 그는 크기가 다른 여러 종류의 라켓만으로 구성된 라켓 콘소트의 소리는 다소 품위가 없지만, 라켓 콘소트가 (gamba)와 함께 연주되거나 혹은 라켓 한 대가 다른 목관악기와 현악기와 함께 연주될 경우 라켓의 음색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특히 라켓은 베이스 음을 연주할 때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