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

[ 天象列次分野之圖 ]

조선 태조 4년(1395) 음력 12월 석판에 새겨 만든 천문도(天文圖)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모습(天象)을 12차(12次; 동양의 별자리)와 분야(分野: 역대 왕조에 대응하는 땅의 영역)로 배열해 놓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이 천문도는 권근(1352∼1409)을 비롯한 천문학자 류방택(柳方澤 1320-1402)과 서운관 직원 등 모두 12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천문도에는 성도(星圖)와 함께 24절기에 따른 혼효중성(昏曉中星)과 28수의 설명과 해당 분야(分野) 그리고 해와 달, 동양의 우주구조론, 28수(宿) 거극도(去極度)와 천문도 제작 경위, 제작자에 관한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여기에서 혼효중성은 초저녁과 새벽에 남중하는 별(자리)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구성(숙종본 탁본: 규장각 소장), 성도 내부의 원은 각각 주극원(노랑), 적도(파랑), 황도(빨강)를 나타냄(출처: 디지털천상열차분야지도, 양홍진(2014))

목차

역사와 계승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우리나라 온 하늘에서 볼 수 있는 1,467개의 별이 돌에 새겨져 있다. 태조 때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 석판에는 양쪽에 천문도가 각각 새겨져 있는데 두 천문도의 내용은 같지만 배치 구성은 다르게 되어있다. 태조 석각본이 닳고 훼손되자 숙종대에 태조본을 본떠 천문도를 다시 돌에 새겼다. 숙종 복각본 천문도는 태조본 한쪽 면의 구성을 따랐다. 동아시아 전통 방법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석판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985년 국보 (태조본)와 보물 (숙종본)로 지정되었다. 조선의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247년 돌에 새겨 만든 중국의 소주천문도(蘇州天文圖)와 더불어 동양의 대표적 석각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석판본 외에도 목판 탁본과 석각 탁본 그리고 여러 필사본 등이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선조 4년(1571) 관상감에서 만든 천문도 120축을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목판본 탁본으로 여겨지는 천문도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과 일본의 텐리대학교(天理大學校)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또한 국내에는 여러 채색 탁본이 남아 있는데 검은색 바탕에 별과 28수 경계선은 노란색으로 은하수는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천문도 채색 탁본은 대부분 석각 숙종본을 모본으로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은 규장각, 성신여자대학교, 신라역사과학관, 숭실대 등에 남아 있다.

역사적-과학적 특징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역사와 과학적 측면에서 각각 중요한 특징이 있다. 석각 천문도가 조선 초에 만들어졌지만 성도(星圖)는 고구려 천문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유래와 역사 등을 기록한 설명을 보면 ‘이 천문도는 원래 평양성에 있던 것으로 전란으로 강에 빠뜨려 잃어버렸으나 그 인본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 조선에 이르러 다시 만들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천문도에 새겨진 별의 위치를 세차 계산으로 확인한 결과 14세기와 1세기의 별의 위치가 섞여 있음이 밝혀졌다. 천문도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중국의 천문도와 달리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을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새겨 놓은 점이다. 별의 밝기와 성도에 새겨진 별의 크기를 비교한 결과 크기가 밝기를 나타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별의 밝기를 크기로 표현한 과학적인 성도인 셈이다. 별의 크기를 다르게 표현한 별그림은 청동기 시대 고인돌 별그림과 고구려 무덤 벽화에도 남아 있다. 한편, 1247년에 만들어진 중국의 석각 천문도에는 별의 크기가 모두 같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 외에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천문도와 몇 가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천문도의 유래와 세차운동에 따른 별의 위치 수정에 관한 내용 그리고 은하수가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종대부(宗大夫)’ 별자리 등은 중국의 석각 천문도와 다른 대표적인 내용이다. 한편,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주극원과 적도, 지평선 그리고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계산하면 천문도에 새겨진 별들의 관측시점과 위치(위도)를 알 수 있다. 분석 결과, 이 천문도는 두 시기에 관측한 별자리가 섞여 있음이 알려졌다. 천문도의 중심에 해당하는 북극 주변은 14세기(조선 초기)의 별자리 위치와 일치하며 천문도의 바깥쪽은 1세기(고구려 초기)에 관측한 별들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고구려 천문도에서 유래했으며 조선 초에 고쳐 그렸다는 천문도의 설명문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가치와 의미

우리나라에는 오랜 천문역사 동안 다양하고 많은 천문 유물과 유산이 남아 있다.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에서 비롯된 우리의 별그림 역사는 25기의 넘는 고구려 무덤 벽화의 별그림에 이어져 조선시대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우리 전통 천문학에 있어 대표적 천문도일 뿐만 아니라, 이 천문도의 역사를 고구려까지 이어 주는 소중한 과학문화유산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 체계와 설명은 비록 중국에서 유래했지만 과학적인 별의 크기 표현과 위치 그리고 내용 구성은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1247)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의 천문도로 새롭게 태어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이후, 일본의 전통 천문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천문도인 천상열차지도(天象列次之圖, 1670)와 천문분야지도(天文分野之圖, 1677)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모본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 석각본(국보) 앞면. 天象列次分野之圖 太祖 石刻本(國寶 第228號) 前面┃1395년 / 가로 124cm, 세로 211cm, 두께 13cm / 청석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고구려에서 전해진 천문도 인본을 기초로 태조 4년(1395) 음력 12월 권근(權近)과 류방택(柳方澤) 등 12명이 돌에 새겨 만든 석각 천문도. 중앙의 성도에는 크고 작은 별 1,467개가 새겨져 있다. 태조본 석판의 앞뒤 면에는 천문도가 하나씩 새겨져 있는데, 제목이 성도의 중간 부분에 새겨진 면(앞면)이 바르게 세워져 있다. 앞면은 뒷면에 비해 마모가 덜해 서 별과 명문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출처: 디지털천상열차분야지도, 양홍진(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