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기이치

미야자와 기이치

[ Kiichi Miyazawa , 宮沢喜一(궁택희일) ]

요약 일본의 정치가. 1942년 대장성(大蔵省) 관리로 시작하여 1953년 정계에 입문한 뒤 참의원과 중의원으로 49년간 활동하면서 경제기획청 장관, 통상산업 장관, 외무 장관, 관방 장관, 대장성 및 재무성 장관, 부총리 등을 역임하였다. 1991년 11월 제78대 총리로 지명되어 1993년 8월까지 재임하였다.
원어명 みやざわ きいち
출생-사망 1919.10.8 ~ 2007.6.28
국적 일본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일본 도쿄

1919년 10월 일본 에서 부유한 정치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인 오가와 헤이키치[小川平吉]는 사법 장관(지금의 법무부 장관)과 철도 장관을 지냈으며, 아버지인 미야자와 유타카(宮澤裕)는 중의원을, 동생인 히로시(弘)는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구제(舊制) 무사시고등학교(武蔵高等学校)를 거쳐 도쿄제국대학(지금의 )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하였으며, 재학중이던 1939년 미·일학생회의에 일본 대표단으로 참가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42년 대장성(大藏省)에 들어가 관료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치 활동

종전 무렵에 대장성 본청에서 전쟁보험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1949년 대장성 장관 의 비서관이 되어 1951년 을 체결할 때 수행원으로 활동하였다. 1952년 통상산업 장관 이케다가 중소기업과 관련한 설화(舌禍)로 사임할 때 함께 비서관직에서 물러난 뒤 1953년 히로시마 현에서 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1967년 양원제의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 선거로 전환하여 당선된 뒤 2003년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49년간 참의원을 포함하여 총 12선 의원을 지냈다.

1962년 이케다 하야토 총리의 내각에서 경제기획청 장관(1962.7~1964.7)으로 처음 입각한 뒤 통상산업 장관(1970.1~1971.7), 외무 장관(1974.12~1976.9), 경제기획청 장관(1977.11~1978.12), 관방 장관(1980.7~1982.11), 자민당 총무회장(1984~1986), 대장성 장관(1986.7~1988.12), 부총리(1987.11~1988.12) 등을 역임하였다. 각료로 등용된 뒤부터 텔레비전의 정치 토론회 등에 적극적으로 출연하여 자민당의 신보수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젊은 정치인으로 주목을 끌었으며, 1980년대에는 총리 내각에서 , 와 함께 '뉴 리더' 그룹으로 칭해졌다.

제78대 총리

1988년 대장성 장관 겸 부총리로 재임할 때 이른바 ''에 연루되어 사임하였으나, 1991년 11월 자민당의 제15대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78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재임시에 PKO(유엔평화유지활동) 협력법안 통과와 자위대의 파견 등이 이루어졌다. 1993년 리크루트스캔들 이후 정치개혁 지연에 불만을 품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등이 자민당을 탈당하면서 내각 불신임안이 가결되어 같은 해 8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38년간의 자민당 1당 지배체제가 무너지고 비(非)자민당 연립내각이 출범하였고, 미야자와는 의 마지막 제15대 쇼군인 에 빗대어 '자민당의 도쿠가와 요시노부'라 불렸다.

정계 은퇴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1998년 8월 내각에서 총리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다시 대장성 장관을 맡아 2001년 4월 내각의 재무성(대장성의 후신) 장관까지 연임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를 진두 지휘하는 등 경제 회복에 힘썼다. 2003년 자민당의 '세대 교체' 방침에 따라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였으나, 이후로도 방송 출연 활동을 활발하게 하다가 2007년 6월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평가

두뇌가 명석한 수재로서 능통한 영어회화 실력을 바탕으로 미국통으로 활약하였으며, 경제 분야의 전문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총리 재임시에 PKO 협력법안이 통과되기는 하였지만, 일본 헌법 9조(전쟁 포기)를 수호하는 입장을 견지한 호헌파이자 평화노선을 추구해온 전후(戰後) 비둘기파의 상징적 존재였다. 1992년 총리 취임 후에 첫 해외 방문으로 한국을 찾아 양국 간 정상회담을 하였고, 한국 국회 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죄의 뜻을 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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