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트 그리그

에드바르트 그리그

[ Edvard Hagerup Grieg ]

출생 - 사망 1843년 ~ 1907년
국적 노르웨이
주요작품 페르 권트 제1모음곡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음악적 교양이 높은 어머니에게 피아노의 기초 교육을 받고, 1858년(15세)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해서 4년간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 당시 라이프치히의 음악계에서는 (독일)과 (독일)의 음악이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리그(노르웨이)의 강렬한 개성이 이로써 상실되는 일은 없었다. 귀국 후는 코펜하겐(Copenhagen)에서 덴마크의 작곡가 가데(Gade Niels Wilhelm, 1817~1890)를 사사하여 공부를 계속하였지만, 가데의 여성적인 스칸디나비아주의도 또한 그의 진로를 결정짓게 하지는 못했다. 1866년(23세)부터는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필하모니 협회의 지휘자가 되고 교사로서의 활동도 개시되었다. 명작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그뒤 1868년에 작곡되었으며, 그 후에도 피아니스트로서의 그리그(노르웨이)의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었다.

1874년(31세) 정부로부터 종신 연금을 받게 되어, 이후는 지휘자와 교사로서의 활동을 그만두고 창작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이 해에 문호 입센으로부터 희곡 『페르 귄트』의 극중 음악을 의뢰받고 1876년에 상연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무렵부터 독일 각지와 런던, 파리 등지를 연주 여행하고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한 자작의 연주와 지휘를 했다. 또한 1867년에 결혼한 아내 니나(Nina)는 소프라노 가수로서 그의 많은 가곡은 그녀를 위해 썼으며, 그녀에 의해 세상에 소개된 바 있다. 니나는 종종 클라라 (독일)과 비교되는 예술상의 양처였다. 그리그(노르웨이)의 업적은 생전부터 높이 평가되어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은 것 외에 각지의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천되었으며, 베르겐(Bergen)에서 타계했을 때는 국장(國葬)의 예우를 받았다.

그리그(노르웨이)는 노르웨이가 낳은 최대의 작곡가였다. 독일 낭만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면서도 조국의 민요와 민속 춤곡의 요소를 도입했으며, 더욱이 우아한 예술미를 잃지 않은 예술적인 노르웨이 국민 음악은 그에 의해 비로소 수립되었다고 하겠다. 주요 작품으로는 상기한 것 외에 모음곡 「홀베어의 시대 Fra Holbergs Tid」Op. 40,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Op.45, 「(실내악곡)」 Op.2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