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 Bedřich Smetana ]

출생 - 사망 1824년 ~ 1884년
국적 체코
주요작품 교향시 (관현악곡)

체코 국민음악의 원조인 스메타나(체코)는 맥주 양조 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음악가가 되는 것을 아버지가 반대했기 때문에 단신으로 프라하에 나가 궁핍 속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다. 이 동안에 각지를 여행하고 지방의 풍속과 민요, 무도를 접하면서 후년의 창작에 대한 시사(示俊)를 받았다. 보헤미아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체코 독립 운동은 1848년(24세)의 혁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스메타나(체코)도 프라하의 민족 운동에 참가하고 학생 의용군을 위해 행진곡을 쓰기도 해서 당국으로부터 쫓겨, 스웨덴으로 달아나 약 5년간 지휘자로 활약한 바 있다.

1859년의 이탈리아 독립전쟁 후 정정(政情)은 일변하여 체코 국민 문화건설의 기운이 도래하고, 프라하에는 대망의 국민 극장이 건설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스메타나(체코)는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여 1861년(37세)에 귀국. 곧 문학 운동의 지도자들과 공동으로 국민 오페라 운동에 착수했다. 1863년(39세) 애국적인 오페라 「보헤미아에 있어서의 브란덴부르크가의 사람들 Braniboři v Čechách」을 완성하고 다시 1865년에는 명작 희가극 「팔려간 신부 Prodaná nevĕta」에 의해 체코 국민주의의 작풍을 확립하여 체코 최대의 음악가로서의 이름을 높였다. 이 무렵부터 가장 다망한 활동기에 들어가 작곡 · 지휘 · 평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1874년(50세)에는 이미 완전히 청각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 창작력은 불길처럼 「(관현악곡)」를 포함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Má vlast」(1874), (실내악곡) 「나의 생애에서 Z mého života」(1876) 외에 오페라와 피아노곡을 계속해서 쓰게 했다. 1882년(58세) 이후는 정신 착란에 빠져 정신 병원에서 60세의 생애를 마쳤다. 스메타나(체코)는 상당히 체코 민족색을 담고 있으면서도 서유럽의 수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음악가였다. 그가 체코의 국민음악에 준 이 유연한 가능성은 이윽고 (체코슬로바키아)나 노바크(Vítĕzslav Novák, 1870~1949) 등에게 계승되었으며, 체코 음악이 국제적으로 발전하는 기초가 되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