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페미니즘
[ Lesbian Feminism ]
- 요약
레즈비언 연대를 통해 동성애혐오와 성차별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1960년대 말 미국과 유럽 중심의 페미니즘 문화 운동으로서 태동했다. 동성애인권운동과 여성해방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에서 소외되어온 여성 동성애자들이 주창하였다. 여성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인권운동에서는 '게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해방운동에서는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정체성이 동성애혐오(호모포비아)와 이성애주의, 가부장제와 같은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성애를 ‘자연스러운’ 것,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을 해체함으로써 이성애가 필연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여성 동성애자들의 권리 증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레즈비어니즘과 페미니즘의 정치적 연관성을 강조하여 페미니즘의 이론 발전을 꾀하였다.
특히 1970년대 미국 여성주의 단체에서 자행된 레즈비언 차별을 계기로 레즈비언 페미니즘 논의가 확산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여성해방운동단체였던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는 여성 해방 의제의 대중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전략적으로 레즈비언을 비가시화한다. 당시의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중산층 이성애자 백인 여성들'의 문제에 골몰하여 레즈비언의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로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판단에는 동성애공포가 한몫하였다. 당시 NOW에 의해 ‘라벤더 위협(Lavender Menace)’이라 조롱 받았던 레즈비언들은 여성이자 동성애자로서 레즈비언이 겪는 이러한 ‘이중 억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들의 정치적 입장이 선명히 드러나는 글 「여성과 동일시한 여성(Women-Identified Women)」은 레즈비언이 성적 지향의 분류라기 보다는 정치적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980년대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여성인 레즈비언이 남성인 게이보다 경제·문화적 특권에서 소외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성적 지향보다 젠더를 주요한 억압의 원인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게이 남성들을 동일하게 억압 받는 '동성애자 집단'이 아닌 '남성'으로서,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전복하고자 하는 사회 구조의 억압자로 위치시켰다.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는 1980년대 레즈비언 페미니즘의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강제적 이성애(Compulsory Heterosexuality)’, ‘레즈비언 연속체(Lesbian Continuum)’와 같은 이론을 창출한다.
한편,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 받았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내포하는 분리주의적인 측면이 성별에 대한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의거하여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혁 보다는 폐쇄적인 논쟁의 반복과 여성들의 고립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적 레즈비언’이라는 금욕적인 여성 연대로서, 레즈비언의 의미를 축소하는 일부 레즈비언 페미니즘의 조류가 여성을 성적으로 바라보는 레즈비언들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결국 동성애혐오적이라는 질타를 받는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의 여성 동성애에 대한 옹호가 보다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허나 동성애와 이성애,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퀴어 이론의 등장과 함께, 여성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확정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이에 기반을 둔 레즈비언 페미니즘이 가지는 이분법적 인식론이 다시금 비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퀴어 이론 역시 주류 운동에서의 이성애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젠더의 작동 방식을 의미화했다는 측면에서 레즈비언 페미니즘의 유산을 이어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