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디란 전투

찰디란 전투

[ Battle of Chaldiran / Battle of Chaldoran ]

요약 1514년 8월 23일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 사파비 왕조 사이에서 발생한 전투.

1514년 8월 23일 과 사이에 발생한 전투로써 이후 41년간 반복되는 오스만-페르시아 전쟁의 첫 시작이었다. 양국간의 전쟁은 1532~55년 전쟁을 마지막으로 아마시야 조약(Treaty of Amasya)를 체결하면서 종료 되었다. 사료에 따라 수치에서 차이가 있으나, 전투 당시 양국의 병력은 오스만 제국은 6만~20만명 사이, 사파비 왕조는 1만 2천명~8만명 사이로 추정한다.

발생 배경은 왕권 계승 분쟁을 통하여 술탄직에 오른 오스만 제국의 가 사파비 왕조의 샤 의 대중적 인기에 위기감을 느끼고, 사파비조의 주 종교였던 이슬람을 이단으로 평가 절하하며 비판한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이에 분개한 샤 이스마일이 셀림 1세의 의견에 반발하였고, 셀림 1세가 군대를 정비하여 사파비조의 동쪽 지역으로 진군하였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를 대거 고용하면서 서구식 총기 및 화약 무기를 갖추고 있었던 반면, 사파비조의 경우 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식 무기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더불어 사파비조 군대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전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셀림 1세는 사파비조의 수도였던 를 장악하고 현지 주민을 강제 이산 시켰다. 이와 더불어 샤 이스마일을 구금하고, 두명의 왕비를 포로로 사로 잡아 오스만 제국으로 이송하였다. 이 후 이스마일은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 1524년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

전투 결과 오스만 제국은 사파비조가 장악하고 있었던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과 남부지역을 점령하고 다스렸으며, 일시적으로 이란 북동부 지역을 통치하기도 하였다. 또한 전투 이전까지 사파비조와 동맹 관계를 맺고 있던 이 사파비조와의 교류를 끊고, 오스만 제국과 새롭게 동맹 관계를 수립하였다. 사망한 이스마일의 아들인 샤 타흐마스프 1세(Shah Tahmasp I, 재위 1524~76)가 왕조의 왕위를 계승하면서 정치·사회·군사 전반에 걸쳐 개혁정책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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