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묘 존경각

서울 문묘 존경각

[ Seoul Munmyo Jongyeonggak , -文廟尊經閣 ]

요약 서울 문묘(성균관)에서 장서들을 보관하던 건물.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제143호
지정일 1964년 11월 10일
소재지 서울 종로구 명륜3가 53번지
시대 조선
종류/분류 도서관
크기 정면 3칸·측면 2칸

서울 문묘(성균관)의 장서 보관처로, 성균관 유생들의 학문 연구를 지원하였던 일종의 대학 도서관이었다. 1475년(성종 6) 건립되었다. 등의 요청에 따라 짓기 시작하였고, 가뭄으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될 뻔하였으나 신정(申瀞, 1442∼1482)과 영의정 의 건의로 공사를 마쳤다.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는 장서각(藏書閣)이라 불렀지만 완성하였을 때는 존경각(尊經閣)이란 명칭을 붙였다. 창건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이 쓴 《존경각기》가 남아 있다.

1514년( 9) 불에 타 재건하였지만 때 다시 불에 타 없어졌다. 《》와 《》에는 1626년( 4)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에는 1621년( 13) 궐 안의 서적을 존경각으로 옮겨 놓을 것을 요청하는 건의가 있었다는 기록과 함께 난리를 겪은 후 존경각을 겨우 복원하였다는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다. 이로 보아 1621년 이전에 이미 중건된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1772년(영조 48)에는 건물이 낡아 개축하였다.

창건 당시 약 1만여 권의 서책을 하사받아 보관하였고 이후 장서 보유량이 수만 권에 달하였다고 전해지지만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모두 잃어버려 지금은 건물만 남아 있다.

구역(제향 구역_문묘)과 구역(강학 구역_성균관)으로 구분되는 서울 문묘(성균관)에서 명륜당 구역에 속해 있다. 서울 문묘의 대지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존경각은 명륜당 뒤편, 주변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육일각(활과 화살을 보관하는 건물)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로 기둥은 원형 기둥, 처마는 겹처마,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앞면 각 칸에는 분합문(네 쪽 문)을 달았고, 내부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서울 안에 있는 서울 문묘(성균관)의 여러 유적과 함께 사적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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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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