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1집

김민기 1집

김민기

요약 싱어송라이터 김민기가 1971년 출반한 유일한 정규 앨범이다. 대표곡 , 등 창작곡 외에, 외국 곡에 직접 가사를 붙인 을 함께 실었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대표적인 명반이자 한국 포크 음악의 진정한 시원으로 손꼽힌다.
친구 / 아하누가그렇게… / 바람과 나 / 저부는 바람 / 꽃피우는 아이 / 길 / 아침이슬 / 그날 / 종이연 / 눈길(경음악) 앨범 앞면

친구 / 아하누가그렇게… / 바람과 나 / 저부는 바람 / 꽃피우는 아이 / 길 / 아침이슬 / 그날 / 종이연 / 눈길(경음악) 앨범 앞면

앨범 부제 1집
발매일 1971년 10월21일
제작사 대도레코오드사
앨범유형 정규앨범
앨범번호 EU 716

초창기의 음악 활동

김민기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다니던 1969년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던 동창 김영세가 듀엣 활동을 제안하면서부터였다. 그와 김영세는 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의 듀엣 ‘도비두’를 결성하고 다방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들은 1970년 연말에 김인배의 음반 「김인배 크리스마스 캐롤집」에 참여해 <친구>, <세노야> 두 곡을 수록한다. <친구>는 김민기의 자작곡이었고, 이 음반은 김민기의 목소리가 담긴 첫 음반이었다.

김민기 1집 수록곡

친구 / 아하누가그렇게… / 바람과 나 / 저부는 바람 / 꽃피우는 아이 / 길 / 아침이슬 / 그날 / 종이연 / 눈길(경음악) 앨범 뒷면

친구 / 아하누가그렇게… / 바람과 나 / 저부는 바람 / 꽃피우는 아이 / 길 / 아침이슬 / 그날 / 종이연 / 눈길(경음악) 앨범 뒷면

1971년 8월, 청평 페스티벌에 솔로로 참가한 김민기는 먼저 양희은의 데뷔 앨범에 자신의 창작곡 <아침이슬>과 <그날>을 제공한 후, 그해 하반기에 자신의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자작곡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꽃 피우는 아이>, <길>, <아침이슬>, <그날>, <종이연>과 한대수가 쓴 <바람과 나>를 비롯한 10곡이 담겼다. 당시 포크 음악들은 대부분 번안곡이나 개사곡이었지만 이 앨범은 창작곡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김민기 1집의 의미

미성은 아니었지만, 김민기의 보컬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아우르는 진지한 성찰이 돋보인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한국 포크 음악은 창작곡을 통해 포크 음악 본연의 순수함과 삶의 고갱이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본격화한 그의 앨범은 지적이고 비판적인 고뇌와 사유를 높은 완성도의 음악으로 담아냈다.

김민기 1집은 한국 포크 음악과 대중음악의 중요한 분기점이자 당시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다.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정점을 보여준 이 음반은, 1970년대 후반 대학 노래패와 1980년대 노래운동을 비롯한 한국 대중음악의 강물 속으로 면면히 흘러갔다.

김민기 1집 디렉터 정성조

김민기 1집은 단지 통기타 음악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대표곡인 <아침이슬>은 클래시컬한 현악 편성의 반주로 편곡되었고, <종이연>에는 색소폰 연주가 가미되었다. 드럼, 베이스 기타, 오르간, 플루트 등의 악기도 함께 사용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편곡은 재즈 뮤지션 정성조가 디렉팅하면서 정성조 쿼텟이 반주를 맡았기 때문이다. 음반 출시 과정에서 경음악 평론가 최경식과 CBS 라디오 김진성 PD도 큰 도움을 주었다.

김민기 1집의 운명

음반이 출시된 이듬해인 1972년 봄, 김민기는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 초대받아 <꽃피우는 아이>,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해방가>를 불렀다. 이튿날 새벽 그는 동대문경찰서로 연행됐고 음반은 모두 압수됐으며 <꽃피우는 아이>는 방송 금지곡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쉽게 볼 수 없는 음악인이 되었고 이후에도 수차례 연행되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게 된 음반은 희귀반으로 고가에 거래되었다. 불법 복제 카세트테이프가 음성적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아침이슬>이 1975년 당시 예술문화윤리위원회에서 지정한 건전가요 리스트에 추천되었다가 한국방송윤리위원회에서 이미 금지한 곡이라는 것이 밝혀져 뒤늦게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1970년대의 김민기

그 후 김민기는 시인 김지하 등과 함께 폰트라(Pontra: Poem on trash, 쓰레기 위의 시)라는 토론 모임에 참여하고 노동자 야학을 운영하며 가톨릭 문화 운동에 함께했다. 그는 연극 「금관의 예수」와 소리굿 「아구」에 참여하면서 1970년대를 보냈다. 1978년 겨울, 노래굿 「공장의 불빛」 카세트테이프 제작을 기점으로 김민기는 노래극에 경도되기 시작했다. 김민기의 음악은 1987년 6월 항쟁과 6·29선언 이후 비로소 금지곡에서 해제되었다. 김민기가 감당해야 했던 역사의 시련만큼 이 음반 역시 다양한 버전이 혼재한다.

다양한 버전의 김민기 1집

이 음반은 초판부터 흰색과 갈색으로 재킷 색깔이 다른 두 버전이 있다. 판매 금지로 인해 빚어진 결과다. <꽃피우는 아이>와 도비두 활동 때 녹음한 <세노야>, 딥퍼플의 을 연주곡으로 실은 등의 노래가 수록되거나 제외되는 등 버전마다 수록곡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이 중 가장 구하기 힘든 버전은 <세노야>와 이 수록된 갈색 재킷이다. 대중음악 평론가 최규성은 “이 음반의 재킷에는 제작사가 대도로 인쇄되었지만 음반 라벨은 유니버샬인 것이 특이하다”며 “추측하건데 대도레코드 라벨로 발매된 음반이 초반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이후 1987년 9월과 1990년 1월 현대음반에서 두 차례 재발매되었는데, 1987년 반에는 <꽃피우는 아이>가 빠진 보라색 재킷으로 나왔고, 1990년 반에는 흰색 재킷으로 출시되었다. 모두 김민기에게 허락받지 않고 발매된 버전이다. 2004년에는 김민기가 1집의 커버 이미지를 넣어 6장짜리 박스 세트가 만들어졌다.

앨범 소개말

김민기 논

언젠가 방송국에서 민기에게 내가 「김민기 논」을 쓰겠다고 했더니 「김민기 놈」하고 그가 되물어 거기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던 일이 생각난다. 민기는 그렇게 나이가 어울리지 않게 씁쓸한 친구다. 그의 노래속엔 대체로 콧대 높고 줏대있는 「젊은 한국」이 도사리고 있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며 오래 기다려야 하는 스튜디오 밖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기타아로 조용히 클레식 소품을 연습해 보던 그의 모습이나, 어느날 오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함빡 비를 맞아 뼈속까지 젖었을 그가 맨발로 내사무실로 걸어 들어오던 일(그는 금붕어처럼 뻐끔하니 입을 벌린 구두를 한길가에 내버렸단다)이며 뭇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가면서도 국산품 노래를 외고집하던일 등등. 그러한 그의 일상 생활은 그의 음악속에 미화되거나 위장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소박하고 순수하게 구현돼있다.

이번 첫 디스크를 위해 특별히 음악적인 헌신을 보여준 정성조 쿼텟과 김광희양에게 고마움을 금치못한다. 한마디로 민기는 「복도 많은 놈」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다. 앞으로가 그의 가능성과 창조력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본격적인 「김민기 논」은 그 때 그날로 미루기로 하겠고 끝으로 이 디스크가 민기의 참 가치나 숨은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많은 분들에게 권한다.

경음악 평론가 최경식

수록곡

SIDE A

No.제목노래작사작곡편곡시간녹음번호네이버 뮤직

1

친구

김민기

김민기

김민기

 

 

 

2

아하 누가 그렇게…

김민기

김민기

김민기

 

 

 

3

바람과나

김민기

한대수

한대수

 

 

 

4

저부는 바람

김민기

미국동요

 

 

 

 

5

꽃피우는 아이

김민기

김민기

김민기

 

 

 

SIDE B

No.제목노래작사작곡편곡시간녹음번호네이버 뮤직

1

김민기

김민기

김민기

 

 

 

2

아침이슬

김민기

김민기

김민기

 

 

 

3

그날

김민기

김민기

김민기

 

 

 

4

종이연

김민기

김민기

김민기

 

 

 

5

눈길(경음악)

 

 

경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