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1세

펠리페 1세

[ Felipe I ]

요약 중세 스페인에 있던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여왕인 후아나 1세의 남편으로 공동통치자의 지위에 있었다(재위 1504~1506).
출생-사망 1478 ~ 1506
국적/왕조 카스티야 연합왕국/합스부르크 왕가(House of Habsburg)
재위기간 1504년~1506년
별칭 미남왕(El Hermoso)
활동분야 정치

별칭은 ‘미남왕(El Hermoso)’이다. 부르고뉴 공작으로는 필리프 4세(Philippe IV)라고 하며, 카스티야의 군주로서는 펠리페 1세(Felipe I)라고 한다. (House of Habsburg)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카스티야 왕국을 통치한 인물이다.

펠리페 1세는 1478년 7월 22일 벨기에의 브뤼허(Brugge)에서 황제인 (Maximilian I)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생모는 부르고뉴 공녀 마리(Marie de Bourgogne)이다. 1482년 생모 마리가 죽은 뒤에 부르고뉴 공작의 지위를 계승했다. 그리고 1496년 10월 20일에 벨기에의 리르(Lier)에서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의 딸인 후아나 1세(Juana I)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프랑스의 (Louis XI)를 견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와 트라스타마라(Trastámara) 왕가가 동맹을 맺기 위해 이루어졌다. 후아나 1세는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의 세번째 자식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Manuel I)와 결혼했던 첫째 이사벨(Isabel de Aragón)이 1498년에 죽고, 둘째이자 외동아들이던 후안(Juan de Aragón)도 1497년에 죽었기 때문에 후아나 1세가 왕위 상속권자가 되었다. 그래서 1504년 이사벨 여왕이 죽자 후아나 1세가 뒤를 이어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에 올랐으며, 그녀의 남편이던 펠리페 1세도 섭정이자 공동 통치자의 지위에 올랐다. 펠리세1세는 후아나 1세와이 사이에서 레오노르(Leonor), 카를로스 1세(Carlos I, 신성로마제국의 ), 이사벨(Isabel), 페르난도(Fernando, 신성로마제국의 ), 마리아(María), 카타리나(Catalina) 등 2남 4녀를 두었다. 두 아들이 모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딸들도 모두 유럽의 주요 왕가의 왕들과 결혼했다.

1506년 펠리페 1세는 잉글랜드의 헨리 7세와 통상조약인 ‘중재 대조약(Intercursus Magnus)’을 체결했으며, 아라곤의 왕인 페르난도 2세와는 ‘비야파필라 조약(Concordia de Villafáfila)’을 맺었다. 하지만 그해 9월 25일에 부르고스(Burgos)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펠리페 1세는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Capilla Real de Granada)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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